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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Feb 28. 2024

간병일기 20

노래에 취하다

노래에 취하다


공기는 차나 아직 난방을 하고 있지 않아 집안이 썰렁하다. 점심을 먹은 남편이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에 편하게 자라고 이불을 갖다 줬다. 그랬더니 꿈에서 노래라도 부르고 있었는지 누운 상태로 대중가요, 민중가요를 가리지 않고 불러댄다. 음정, 박자를 무시한 게 거의 자작 수준이다. 그런 아빠가 못마땅한지 딸아이는 인상을 쓴다. 한창 예민할 나이의  딸아이에게 아빠의 그런 모습은 보는 사람이 없어도 창피하게 여겨지리라. 아픈 아빠를 이해하기보다는 바보같은 게 싫을 수 있겠다. 딸바보 남편이 딸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듣기 전에 나서서 제지해야 할 것 같았다.  

시끄럽기라도하다는 듯 “여보, 노래 좀 그만 불러요.”했더니 대꾸는 없고 계속 불러댄다. 더 말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 아이에게 이해해달라는 눈짓을 보내고 말았다.

 

밤이 되면 남편은 인터넷을 뒤져 노래를 찾아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최근 들어 생긴 변화라 할 것이다. 무슨 노래를 듣고 있나 궁금해서 이어폰 한 쪽을 뺏어 들어 보면 조용필의 노래에서 팝송에 이르기까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들이다. 같이 듣고 있자니 가슴을 후벼 판다. 좋다고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한 번 더 듣자고 끝난 곡을 다시 틀며 함께 가사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노래를 듣고 흥얼거리는 것이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노래가 아침 잠자리에서도 시작되더니, 오늘은 낮에 졸다가도 시작되었다. 내가 노래에 소질이 있으면 날마다 육성으로 들려주련만 음치 중에도 상음치라 노래를 불러줄 처지가 못됐다. 연애 초기에 남편은 나를 노래 잘 하는 사람으로 알았다가 노래를 못 하는 걸 알고 속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노래를 못해 상대만은 노래 잘하길 바랐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은 그런 걸 따지지 않고 제 잘 난 맛에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 노래에 빠지는 것은 좋다. 그런데 밤에 잠자는 것까지 잊고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 문제다. 노래도 좋지만 아픈 사람을 잠자리로 보내는 것이 또 아내의 일이라 “여보, 이제 내일 듣고 잠 좀 잡시다.”하면 간섭받고 싶지 않다는 듯 알았다며 컴퓨터를 금방이라도 끌 것처럼 나온다. 끌 때까지 계속 주시하고 있기도 못할 짓이라 믿고 끄겠거니 하고 먼저 들어가 자겠다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밤이면 이런 일과가  되풀이된다.


며칠 잠을 설쳐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그러다가 잠결에 옆자리를 더듬어 보니 사람이 없다. 거실로 나와 보니 아직도 컴퓨터 앞에서 노래를 듣고 있다. 잠이 덜 깬 상태의 내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있다. 기어코 끄는 것을 보겠다는 심사로 옆에서 자리를 지킨다. 남편이 약을 찾는다. 약을 먹고 자는 것은 아는지 부엌에서 부스럭댄다. 저녁 먹고선 이미 먹었던 약을 또 찾는다. 계속 자고 말았으면 먹은 약을 또 먹었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2010년 11월 25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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