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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Mar 02. 2024

오늘의 운세 26

한 번에 좌절하지 않도록 한다

한 번에 좌절하지 않도록 한다


마음을 다잡을 수 없는 여러 날이 지났다. 정신도 온전치 못한 어머니를 간병인에게 맡기고 집에 들어앉아 있으니 마음이 그지없이 심란했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은 어머니의 상태만 위중해 가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이제 어머니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가. 저렇게 병원에 누워계시다가 요양원으로 가시는 수순을 밟으실 것인가. 고관절 환자의 10-20%가 6개월 안에 돌아가신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꼭 어머니에게 해당되는 것만 같아 좌불안석이었다.


머릿속을 떠도는 온갖 불길한 생각을 떨쳐내려면 직접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를 돌보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아 몸이 고달픈 쪽을 택했다. 어머니 입원 5일차에 간병에 돌입했다. 집을 비우는 동안 혼자 있을 아들 녀석 식사를 위해 반찬 몇 가지를 만들고 병원에서 때울 끼니 음식도 마련했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자전거로 움직일 수 있는 거리여서 자전거를 타고 갔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도 마음은 집과 병원을 오가느라 심란스러웠다. 다 큰 자식이 눈에 밟히고 아픈 어머니를 언제까지 돌봐야하는지 기약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다.


어머니를 간병한 예순일곱의 조선족 아줌마는 20년 가까이 병원에서 간병 일을 해 왔다고 한다. 간병에는 도가 텄다고 하는데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100세 시대라 하지만 예순일곱이 적은 나이가 아니었고 병원에서 먹고 자며 환자를 돌보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리라. 간병비 일당은 14만원. 10여 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올랐다. 병원비보다 간병비에 허리가 휜다는 말은 예전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주머니는 다른 병원으로 또 일을 하러 가야한다며 간병비가 입금된 것을 확인하고 급히 떠났다.


어머니의 기억은 더 쪼그라들어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셨다. 당신의 이름마저도. 평소 섬망증이 있으셨는데 수술 후 더 심해진 것 같았다. 혼자서 내리 중얼거리는 시간이 많으셨다. 대개는 예전의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특히 추수 끝나고 마을에서 지내던 시제가 실시간으로 어머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지 착각과 환각을 보이셨다. 간이침대에 누워 일어설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을 독촉하여 어서 멧밥을 큰집에 갖다주라고 언성을 높이셨다.


간병을 시작한 첫날부터 힘에 부쳤다. 간병인 아줌마가 떠나고 얼마 안 있어 어머니가 대변을 보셔서 그것을 처리하느라 진땀을 뺐다. 집에서 돌봐드렸던 것과 차원이 다른 일들이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머니 수술 부위의 뼈가 아물고 앉고 서고 걷기를 해야 이 병원에서 탈출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워낙 입이 짧은 어머니가 병원에서 누워만 계셔서 그런지 입맛을 잃어 거의 드시지를 못했다. 기운 없이 누워서 헛소리와 앓은 소리를 하는 어머니를 지켜보고 있으니 퇴원은 아득하기만 했다. 병원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병원에서 달아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좌절하지 말고 어머니의 상태가 호전되길 바라는 수밖에.(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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