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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Mar 03. 2024

간병일기 21

인생이란

인생이란


남편이 요 며칠 총기가 있어 보였는데 오늘은 상태가 좋지 않다. 요일, 날짜를 알지 못한다. 무엇보다 잠자리에서 일어날 줄 모른다. 잠에 취하기보다는 잠 귀신에 붙들려 버린 것 같다. 깨어있어도 졸고 있는 시간이 많으니 남편의 시간은 잠으로 더 짧아지고 있다. 아픈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남편이 누워있는 안방과  내가 있는 거실 사이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천리나 되는 양 아득하다. 우리는 존재하되 서로에게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 같다.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처럼.


거실 유리문을 통해 멀리 포구쪽으로 배가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달리는 배를 봐도 배 그 자체를 온전히 보지 못한다. 생각이 끼어든다. 온통 남편 생각뿐이다. 풍경에 얹어가는 것은 남편에게 일어날지 모를 온갖 흉한 일들이다. 그것들은 통통거리는 배의 속도로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임종과 죽음과 장례식과 화장과 납골함과 그 이후 찾아드는 온갖 상실감과 무기력함이 밀려든다.

 

부처의 고뇌가 아니어도 인간의 생로병사는 참으로 애통하다. 어찌 태어나서 또 어찌 두 생명을 이 지상으로 내밀었는가. 인생이란 답 없는 물음표를 평생 안고 살아왔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함께 살던 사람을 먼저 보내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가슴을 치며 후회할 일도 아니고 후회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 인생이다.

 

지금의 남편이 꼭 허깨비 같다. 어찌 사람이 그리 허할 수 있을까! 그런데 느닷없이 도사 같은 말을 불쑥 내뱉어서 순간 멈칫했다. 차려놓은 저녁을 먹으러 올 기미가 없어 잠깐 일기장을 펼쳐놓고 뭔가를 끼적거리고 있었는데 그런 나를 보고


"사람은 기록을 통해 생명을 연장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불쌍한 존재야'


하며 내 의중을 꿰뚫는 듯한 말을 했다. 따져보면 나의 쓰는 행위는 기록을 통해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자 하는 몸부림일지 모른다.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하고. 그런 행위가 부질없다는 듯 그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없는 듯이 왔다가 없는 듯이 가는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의 시선이 불편해 일기장을 덮었다.(2011년 11월 26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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