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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Mar 05. 2024

간병일기 24

다시 항암제 복용

다시 항암제 복용


목요일에 남편과 서울대 병원에 갔다. 한 달 전처럼 채혈을 하고 혈액 종양학과 허대석 교수 진료를 받았다. 항암제 복용이 둘째 달로 접어들었다. 병원이나 가야 집 밖 구경을 하는 남편에게 세상은 더없이 낯선 곳이 되어가고 있다. 기억력 저하 정도가 더 심각해졌는지 문이 닳도록 다녔던 서울대 병원은 처음이라고 했다. 서울행 전철을 타기 위해 승차한 집 근처의 버스도 처음 타 본다고 했다. 동행하는 내가 그의 팔을 잡아끌며 길을 안내하니 어찌 그리 이것저것을 잘 아느냐고, 참 똑똑하다고 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분간이 안 됐다.


기억을 잃어가는 남편에게 그에 대한 불안과 우울감이 동반되지 않은 사실에 차라리 감사했다. 뇌의 기능이 상실되면서 암흑으로 묻혀가고 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자. 나처럼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존재를 좀먹는 것보다 나으니 말이다.


남편은 나와 달리, 건강할 때에도 살고 죽는 문제에 그리 연연해하지 않았다. 존재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인간의 숙명적인 한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고 자라고 병들고 죽는 뭇 생명이 가지는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줄 알았다. 인간의 존재를 그리 유난스럽게 대하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픈 사람 특유의 짜증과 자책을 하지 않은 점도 고마울 따름이다.

 

목요일 밤부터 남편은 항암 테모달 캡슐 260mg을 복용했다. 이번에는 진토제를 처방받아 먹어서 그런지 지난 달처럼 토해대지는 않았다. 하지만 속을 메스꺼워하며 음식은 삼키지 못했다. 괴로워하는 그에게 더는 음식을 권할 수가 없었다. 하루 세 번 먹어야 하는 진토제로 자는 사람을 깨워 약을 내미는 것이 그저 미안했다. 식사는 못하고 약만 먹어대니 속을 다 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었다. 이번에는 유달리 기운이 없고 지쳐 보인다. 항암제 복용 둘째 날은 내리 잠만 잤다.(2010년 12월 1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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