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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Mar 06. 2024

간병일기 25

어지럼

어지럼


아침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증이 났다. 걸음이 비틀거리고 사물이 흔들려 고꾸라질 뻔 했다. 어제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더니 잠은 오지 않고 그 틈을 타서 남편에 대한 우울한 상념들이 머릿속을 차고 넘치더니 몸이 견뎌내질 못했나 보다. 남편은 새벽 3시가 가깝도록 컴퓨터 앞에서 노래를 듣는다고 앉아 안방으로 들어올 줄 몰랐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해서 식탁과 부엌 상판을 붙잡고 겨우 아침을 차렸다. 식탁에 오른 것은 미역국에 만 밥이 전부. 배곯지나 않게 한두 술 뜨고 가게 했다. 아들 녀석을 유치원까지 데려다 줄 수가 없어 누나를 따라가게 했다. 엄마가 아픈 것을 알고 녀석도 고집을 피우지 않고 누나 손을 잡고 현관문을 나섰다.


두 아이가 집을 나서자마자 모든 집안일을 스톱하고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가서 자는 남편 옆에 누웠다. 천장과 바닥이 빙글빙글 돌았다. 삶에 멀미가 난 것일까. 몸이 통째 날아갈 것 같아 몸을 바닥에 바짝 대고 엎드렸다. 뱃속이 메스꺼워왔다. 어지럼증이 사라질 때까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더니 증상이 약해져 견딜 만해졌다.


마음 깊은 어디에 구멍이 뚫려 시린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시린 바람에 몸이 무게중심을 잃고 뒤집힌 것일까. 인적없는 허허벌판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이란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쓸쓸하고 고통스럽고 어지러운 일. 끊임없이 사유의 늪에서 자맥질을 하다가 조용히 하직하는 일. 끝까지 갈 수 있지만 본인은 자신의 끝을 정작 볼 수 없다는 것. 조금 모자라게 살 것.(2010년 12월 13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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