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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Mar 07. 2024

간병일기 26

마음의 병

마음의 병


딸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았다. 목도 아프고,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하면서 일일이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아픈 것을 강조했다. 아픈 데가 많아 도저히 학교에 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목소리에 기운이 없어 정말로 속을 뻔했는데 알고 보니 꾀병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오늘 각 반의 10번 20번 30번 아이들의 독서 노트와 한자, 영어 문제집을 검사한다고 했다는데 반 번호가 20번인 녀석은 그 때문에 학교 가기가 죽도록 싫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 앞에서 공책을 내밀고 검사를 받을 생각만 해도 뱃속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울렁거린다나 뭐라나.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보낼 수는 없고, 가기 싫은 학교를 가서 앉아있을 것도 고역일 것 같아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더니 얼굴빛이 밝아졌다. 언제 아팠냐는 듯 목소리에 생기가 돈다. 그러면서 녀석이 하는 말이 자기 병은 꾀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라고 객쩍은 소리를 한다. 나는 그저 웃고 말았다.


아이들이 있다. 힘을 내야지. 엄마니까 달라야할 것이다. 아빠가 아프면 엄마라도 기운찬 모습을 보여야 아이들이 덜 불안해하지 않겠는가. 아이들을 봐서라도 힘을 내서 살아야지. 어두운 표정은 짓지 말아야지.  

 

남편은 아침 11시 넘어 일어났다. 남편의 기상 시간이 늦어지면서 한 집에 살면서도 얼굴 보는 일이 쉽지 않다. 남편은 잠자리에 일어나서는 화장실로 직행하여 반시간 이상을 잡아먹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소파에 앉기가 무섭게 꾸벅꾸벅 존다. 그렇게 남편의 시간은 흘러간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조금 생기가 돌지만 컴퓨터 앞에서 일어설 줄 모른다. 나는 그런 남편을 그저 멍 때리고 지켜보는 수밖에. 


집안 공기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졸고 있는 남편에게 얇은 이불을 갖다 덮어줬다. 소파에서 그대로 누워 잘 줄 알았더니 피곤하다고 안방에 들어가 누웠다. 또 잠이다. 잠으로 시간을 때울 모양이다. 누워있는 시간은 늘어가는데 피로는 쌓여가는 것 같다. 아니,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서 피곤한지도 모르겠다. 피로는 그의 몸만 덮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집안 곳곳을 점령하고 있는 것 같다. (2010년 12월 16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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