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상파 Mar 09. 2024

간병일기 28

꿈과 감사

꿈과 감사


밤에 잠자리에 누워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온갖 잡념들이 머릿속을 들쑤시고 다닌다. 병세가 악화된 남편에 관한 것들이다. 시간은 어쨌든 흘러 받아들일 수밖게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다. 사는 게  아니라 죽음에 붙들려 있다. 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다. 되는 대로도 아니고 그렇다고 계획적으로 사는 것도 아닌, 무심하고 무방비의 나날들이다. 넘쳐나는 감정에 휘둘리며 살아내고 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자맥질하는 남편. 어둠 속에서 무슨 생각이 떠오르기는 할까? 채워졌던 것은 상실하고 더 이상 각인시키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칠년 가까이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먹어온 항경련제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먹고도 먹은 사실을 이내 잊어버린다. 다시 약을 찾으며 먹으러 드니 지켜보지 않으면 위험하게 됐다.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에 모처럼 일어난 사람이 아이들이 현관문을 나서며 인사하는 것을 함께 보았으면서도 뒤돌아서서는 딴얘기를 한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자 어디 갔냐고 묻는다. 방금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선 것을 보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뗀다. 가버린 아이들을 다시 불러와 확인시킬 수도 없는 일. 확인시키면 또 무엇하랴. 이미 잊어버린 일인데.


오늘은 느닷없이 내게 “꿈이 뭐냐?”는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내게도 꿈이 있었던가? 하고 반문해 본다. 그 단어를 잊고 살았다. 생경하게 다가선다. 지금은 꿈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인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편을 옆에서 돌본다고 하지만 남편의 질환에 어떤 도움도 돼 주지 못하고 있다. 좌절과 자괴감이 커 간다. 절박하게 다가오는 것은 남편의 건강이다. 당신이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남편은 다시 내게 꿈이 뭐냐고 묻는다. 그것을 정말 알고 싶다는 듯. 하지만 대답을 바라는 질문은 아니었다. 자기가 물었다는 사실을 이미 까먹고 있다. 아무 말 없이 남편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넋나간 사람처럼 무심한 표정이다. 


어제 저녁 7시쯤 남편의 고등학교 친구가 왔다. 결혼식 때 보고 처음이니 20여년 만이다. 남편은 올 여름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그를 봤다고 했다. 만년 청년일 줄 알았더니 세월도 그의 얼굴을 피해가지 못한 것 같다. 어느 회사의 공장장이라고 하더니 세파에 찌든 얼굴에 주름이 자르르했다.

 

남편은 이십여 년 전의 기억을 제법 떠올린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남편이 그 언저리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기쁘다. 그가 남편을 보러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부터 오기로 약속을 했는데 오기 전까지 아무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저녁 한 때를 남편을 위해 시간을 내 준 그가 정말 고맙다. 남편도 찾아준 옛 친구에게 자꾸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2010년 12월 22일 수요일)

작가의 이전글 간병일기 2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