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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Mar 10. 2024

간병일기 29

잠들지 못한

잠들지 못한


잠을 못 이루고 아침을 맞았다. 아침을 준비하러가기가 힘들었다. 일어나야하는데 마음만큼 행동이 따라주지 않았다. 일어나기 전초 작업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런 나를 곁눈으로 슬쩍 보던 남편이 누워서 한마디 했다. 

“고민을 털어버리고 유쾌한 시간을 가지시라.” 

기억을 잃어가면서 도사다운 이 발언은 무엇인가. 나는 마음의 노트에 얼른 받아적었다. 꿇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마음이 부스스 깨어났다. 

“그래야겠지요, 여보?” 

얼른 되받았다. 남편의 이어진 말은 자기를 너무 걱정 말란다. 오늘은 자기 몸상태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다는 눈치다. 아직 괜찮으니 너무 걱정말라고 한다. 아무 것도 모른 것 같아도 느낌이라는 것이 있나 보다. 이럴 땐 집안에 어린 어두운 그늘을 다 알고 있었단 말투다. 코끝이 시큰해졌다.


잠을 불러들일 수가 없다. 아주 뜬눈은 아니고 잠깐잠간 잠이 들었다가 금방 눈이 떠진다. 어두운 생각에 파묻혀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것의 시작에도 남편이 있고 끝에도 남편이 있다. 남편이 지금보다 더 나빠져 병원 행을 택해야하는 상황부터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모든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죽음으로 향한 여정을 되짚고 죽음 이후에 맞이할 허망함으로 갈무리되는 이 예행연습이 머릿속에서 지겹게도 반복된다. 친정아버지의 사별을 이미 겪은 바 있어 그때의 경험들이 다시 남편의 장례 절차로 그대로 옮겨간다. 특히, 남편의 입관이 왜 이리 생생하게 머릿속을 헤집는지, 괴롭다. 그는 나에 상상속에서 이미 죽은 몸이다. 이 끔찍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그가 옆에 있어도 그는 이미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마치 내가 남편을 죽인 것 같다. 


남편 없는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세상에 혼자 남아 무얼 갈구하며 살아가야 할까. 죽음은 잊힌다는 것, 잃어간다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죽음도 괜찮은 것 아닌가. 괜찮을 것이다. 더는 욕망하지도 않아도 되고 더는 소유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자유 아닌가. 그런데 무엇이 두려워 나는 이토록 불안에 떠는가. 나를 잃은 것이 아니라 남편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병적으로 죽음에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잠을 자야하는데 자고 일어나면 이런 생각들이 씻은듯이 사라질 것 같은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2010년 12월 23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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