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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Mar 11. 2024

간병일기 30

꿈과 식탐

꿈과 식탐


어제 형님 내외가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왔다. 부모가 하지 못하는 산타 노릇을 톡톡히 하고 가셨다. 날이 차가운데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쇼핑을 하고 오셨는지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가 넘었다. 


남편은 형님 내외가 사온 스타워즈 레고 장난감을 보고 누가 샀냐고 물어보더니 뒤이어 다른 말을 했다. 며칠 전에 그걸 구입하느라 아주 힘들었노라고. 오후가 되니 벌써 정신이 오락가락이었다. 형님 내외에게 점심 드셨냐고 몇 번씩 묻고 점심 먹었냐는 아주버니 말에는 안 먹었다고 대답했다. 형님 내외가 도착하기 직전에 점심으로 김밥을 맛나게 먹어놓고는 벌써 잊어버린 것이다.


어젯밤 흉측한 꿈을 꿨다. 남편이 요위에서 쓰러졌다. 그나마 있던 생기마저 사라진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다. 꿈의 잔상 때문인지 아침 내내 기분이 뒤숭숭했다. 언제나 되풀이 되는 불길한 생각이 끝을 모르고 계속 됐다.


어제 저녁 어머님이 전화를 하셔서 그놈(남편) 사람 구실하긴 다 틀렸다고, 속 썩이지 말고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내게 당부 아닌 당부를 하셨다. 당신이 지은 죄가 많아서 그렇다며 '에미야 미안하다. 미안하다'하시며 수화기를 붙잡고 내내 통곡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어떻게 달랠 길을 모르겠다. 같이 울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하다.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닌데 그 장단에 맞춰 내 생각과 감정에 반하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통화를 끝내고 어머니의 말에 꽂혀 울적하고 화난 마음을 다스리질 못했다. 그런 개운치 않은 마음이 꿈속에까지 따라 붙은 모양이다.


남편은 요즘 갑작스럽게 식탐이 많아졌다. 떡 중에는 가래떡과 꿀떡 외에는 잘 먹지 않은데 오늘은 영양 떡을 보고 덥석 먹어치웠다. 식탁이나 부엌에 먹을 것이 보이면 보이는 족족 먹으려 들어서 걱정이다. 배가 부르면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손을 대지 않던 사람인데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다. 그렇게까지 먹고 탈이 안 날까 걱정스러운데 먹는 사람은 배가 고프다며 계속 먹어댄다. 안 먹으면 안 먹어서 걱정, 먹으면 너무 먹어서 걱정, 온통 걱정에 산다. 


남편과 마주한 식탁에서 나의 불길한 생각은 멈출 줄 모른다. 저토록 달라진 모습으로 음식에 욕심을 내는 것이 꼭 살음이 아니라 죽음을 앞당기는 일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왜 이토록 잔인한 생각을 할까. 왜 이토록 끔찍한 생각에 매달릴까. 사고의 노예다!(2010년 12월 25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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