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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Mar 13. 2024

간병일기 32

친구 부부

친구 부부


어제 오전에 내린 눈으로 거리가 온통 하얗게 뒤덮였다. 오늘 아침에는 안개까지 겹쳐 하늘도 땅도 온통 희끄무레하다. 어제 오후 2시쯤 김소영 부부가 집에 다녀갔다. 초행길에 눈이 내려서 길에 뿌린 시간이 머무는 시간의 세 곱은 되었다.

 

팔 년만의 재회다. 오랫동안 연락 없이 지낸 것에 대한 벌이라도 주는 것처럼 일기가 좋지 않았지만 날씨의 방해에도 우리의 만남은 이뤄졌다.


큰 아이가 유모차를 타고 다닐 때에는 서로가 사는 곳이 지척이어서 자주 만나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었고 영영 못 보고 살 줄 알았다. 다행히 전화 번호는 바뀌지 않아 연락이 닿아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 오랜 시간의 공백에도 우리는 자주 봐 온 사람처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고등학교 동창인 그녀를 남편과 같이 결혼 전부터 만나왔고, 결혼 후에는 부부끼리 서로 왕래도 하고 했기에 남편도 그들 부부를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남편이 친구 부부에 대해서는 기억이 제법 정확하다. 어색하지 않게 무난한 시간을 보냈다. 먼 데서 찾아온 사람이  반가운지 남편은 그들 부부가 식사를 하고 집을 나설 때까지 식탁에서 일어날 줄 몰랐다. 언제나 졸고 있던 남편이 눈을 뜨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아픈 사람같지 않았다. 모처럼 집안에 활기가 돌았다. 남편은 집에 사람들이 찾아오면 언제나 환대를 했는데 어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억과 무관하게 남편의 잠자기 전 습관은 여전하다. 그는 지금껏 죽 해 오던 대로 현관문에 놓인 식구들의 신발을 정리하고 문단속을 한다. 겉옷을 벗어서 차곡차곡 개어 소파에 얹어놓은 것을 잊지 않는다. 잘 정돈된 남편의 옷을 보면 또 새로운 아침이 시작될 것임을 알리고 있는 것 같다.(2010년 12월 28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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