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상파 Mar 19. 2024

간병일기 36

새해 아침

새해 아침


언제 어느 순간에 쓰러질지 모르는 사람과 산다는 것은 그 사람으로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위태위태하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몸의 반란. 당사자는 그것을 인지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한다. 남은 것은 외상과 몸의 통증. 


발작의 순간은 얼마나 가혹하고 참담한 것이냐! 살아있되, 죽음의 바닥까지 내려가야 하는 상황. 빛은 사라지고 암흑뿐이니 그것은 기억될 성질의 것이 못된다. 그 시각 그는 이 지상에서의 목숨을 잠시 거둬 저 세상으로 외유하고 돌아온 것이리라. 육신을 남겨둔 채 영혼이 떠나는 여행. 저 세상 염탐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하면 구천을 떠도는 불귀의 몸이 되리라.


남편에게 발작이 언제 어떻게 올지 알 수 없는 일.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남편의 표정과 행동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소파에 앉아 있어도, 식탁에 앉아 밥을 먹어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에도 내 신경은 온통 남편에게 가 있다. 그의 눈과 귀로 살 정도다. 잠자리에 누워 있으면 그나마 덜 걱정스럽다. 발작이 어떻게 일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외상은 입지 않을 것 같아서. 식탁과 컴퓨터 책상에서 발작을 한 이후 발작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졌다.


발작한 남편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막 눈앞에서 일어난 일처럼 너무 생생하게 그려진다. 아이들 있을 때 발작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 험한 꼴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고통으로 신음하는 아빠를 기억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남편도 그런 아빠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을 텐데. 그건 내 바람일뿐이고 발작이 언제 들고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새해 아침이다. 나와 아이들은 9시 넘어 아침을 한 술씩 뜨고 남편은 열시 넘어서도 취침중이다. 식구들 각자 자신의 공간에서 자기 세계에 몰두해 있다. 아들 녀석은 거실에서 레고 놀이를, 딸아이는 제 방에서 독서를, 남편은 안방에서 수면을. 나는 식탁에 앉아 가눌 길 없는 마음의 파편을 긁어모아 집을 짓느라 열심히 모나미 검정 볼펜을 혹사시킨다.(2011년 1월 1일 금요일)

작가의 이전글 간병일기 3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