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주

질병

by 롤로로

인간이라는 숙주에게 모든 균이 다 유해한 것은 아니다. 유익한 균들도 있다. 유익균들은 소화를 돕고, 유해균과 싸우며,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반면에 유해균은 숙주를 감염시키고 질병을 일으켜 숙주를 병들게 한다.

감기에 걸려 유해균에 감염된 지금, 나는 지구라는 숙주에게, 같은 숙주라는 입장에서 연민을 느낀다. ‘아, 너도 나처럼 열이 나고 있는 거였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열이 나 보니 얼마나 괴로운지 십분 이해가 된다. 지구는 현재 인간이라는 균에 감염되어 지구온난화라는 발열 증상과 함께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문명이 너무 발달하여 이제는 원시로 회귀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지구에게 유해균일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에 잠식되어 숙주가 이겨내지 못하면, 종국에는 숙주도, 바이러스도 함께 파멸할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는 필연적으로 숙주에 기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공생일지 공멸일지는 우리의 선택이라고 믿고 싶지만, 이제는 공멸 쪽으로 무게추가 많이 기울었다고 한다. 다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의 차이만 있을 것이다.

지구라는 숙주가 이 이상으로 뜨거워지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예측할 수 없었던 자신만의 면역체계가 발현될 수도 있다. 그때 우리 인간은 지구의 백혈구와 같은 무언가에게 공격당하고, 일소당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이 든다.

감기에 걸린 상태에서 지구에게 연민을 느꼈다고 했지만, 감기가 낫게 되면 이 감정은 금세 사라질 것이다. 문명에서 살고 있는 한 명의 일원으로서 전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다시 플라스틱을 소비할 것이며, 여러 쓰레기를 만들게 될 것이다. 이런 자가당착을 느끼면서도, 나는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지구에게 유해균으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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