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하나의 물줄기, 바다, 관계
*스포일러 있습니다*
이 책은 급류라는 이름에 상응하여 이야기의 전개도 시원하게 쭉 뻗어 흘러간다. 빠르게 흐르는 유속, 그 안에서 읽기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거세고 빠른 흐름과는 다르게, 시간은 주인공의 열입곱살부터 서른 살까지 긴 시간에 걸쳐, 통시적으로 흘러가게 된다.
17살 여름, 진평이라는 시골마을에서 도담은 물에 빠진 해솔을 구하게 되고, 그로부터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둘은 상호 호감을 느끼고 서로에게 다가가며 급격히 친해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도담의 아빠인 창석과, 해솔의 엄마인 미영도 서로에게 강력하게 끌린다.
18살 여름, 도담과 해솔은 창석과 미영의 관계를 알게 되고 벌을 주자는 도담의 말에 끌려 해솔은 도담과 함께 창석, 미영이 같이 있는 현장을 잡아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창석과 미영은 와류에 휩쓸려 떠내려가, 서로를 껴안은 상태로 사망한 채 발견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도담과 해솔은 자연스레 멀어지고 시간은 급류에 편승하여 빠르게 지나간다.
시간이 흘러 22살의 도담은 해솔과 우연히 재회하여 다시 뜨겁게 사랑하지만 그 사건은 자꾸 도담 안으로 파고들어 소용돌이치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이는 결국 가시가 되어 그녀의 몸에 돋아 해솔을 계속 찌른다. 해솔이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 안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그 가시는 날을 세워 해솔의 유약한 마음을 찌른다.
도담은 그 사건 이후 파행한다. 똑바로 걷지 못하고 자꾸 절뚝거리며 걷는다. 항상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는다. 비틀거리며, 절뚝거리며 걷는 것은 어딘가에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걷는 것이다. 자신을 벌주기 위해서. 도담은 잘못을 저지른 대상에게 항상 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자신이든, 타인이든. 도담은 그런 성정의 사람이다. 칭찬받을 일, 벌 받을 일을 본인의 기준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괴롭히며, 그 사건을 상기시키는 해솔의 존재를 잊고 싶어 한다. 그녀의 마음은 이안류가 되어 파도를 타고 그녀에게 다다르고 싶어 하는 해솔을 다시 바다 쪽으로 밀어냈다. 22살의 도담과 해솔은 다시 한번 이별을 맞이한다.
도담은 대학에 진학해서도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동아리만 전전하며 어느 한 곳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자신의 뿌리인 진평에서 사건을 계기로 내쳐졌다 생각하기 때문에 그 상처가 트라우마로까지 발전하여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는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다. 동시에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자기 자신도 용서치 않는다. 그녀는 자유롭고 행복했던 물 안 속에서 빠져나와 육지에만 머물며 자기 스스로에게 굴레를 씌운다.
후에 시간이 꽤 흘러 30살이 됐을 때는 감정이 풍화되어 무뎌진다. 그리고 해솔을 통해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해솔을 구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렇게 추모일에 아버지를 모신 바다로 가 아버지를 용서한다. 마지막에는 물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다이빙한다. 육지에서 물을 향해 자신을 해방시켜 준 것이다. 그때 바다 깊은 곳에서 그녀는 공포감과 생동감을 같이 느낀다. 기존에 그녀가 가지고 있던 회색빛 감정들이 천연색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아이를 구함과 동시에 자기 자신도 같이 구한 것이다. 아버지를 용서함과 동시에 그 사건의 굴레에서 자기 자신도 풀어준 것이다.
인생의 굴곡에 따라 그들은 양성부력으로 위로 뜬 시간보다는 음성부력으로 인해 침잠해 있던 시기가 더 많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자신들만의 중성부력을 찾았다. 그 중성부력 안의 무중력 상태에서 둘이 손을 맞잡아 자유로이 유영하는 모습이 눈앞에 선연히 보이는 것만 같다.
초반, 물 안에서 자유롭고 행복했던 도담. 그리고 그 물 안에서 죽을 뻔했던 해솔.
중반, 12년 동안 그런 물 근처도 가지 않고 육지에 묶여있던 도담. 그리고 한강에 다이빙하여 목숨을 구해낸 해솔.
후반, 12년 만에 물속으로 다시 들어가며 해방된 도담. 그리고 그 옆의 해솔. 다시 손을 맞잡으며 같이 자유롭게 헤엄치는 둘.
물은 둘 사이의 연쇄를 의미한다. 육지로 단절된 듯 보이지만 모든 바다는 거대한 하나의 물줄기로 연결되어 있듯이, 도담이 육지에 묶여있을 때조차 그들은 단절된 듯 보이지만 하나의 물줄기로 이어져있었던 것이다. 결국 둘의 관계는 물속에서 다시 연결되어졌다.
ps. 부디 정미도 양성 부력을 통해 깊은 심연에서 수면 위로 올라와 자신의 삶을 항해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