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순수의 부등가교환

by 롤로로

길을 지나다, 우연히 어린이들의 대화를 듣는다. 조경 때문에 뽑혀있는 나무를 일컬으며, 이야기한다. "와 누가 나무 뽑았다, 힘 짱 세다, 내 친구 00이도 뽑을 수 있겠지, 걔 힘세잖아."

어린이들의 화법이 너무 귀엽다고 느껴졌다. 어른들의 것과는 다르게, 그 말에 순수함이 묻어있어서다. 나도 저렇게 때 묻지 않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을까? 난 왜 저런 사고를 할 수 없게 됐지,라고 생각하다 사회의 교육 때문이라는 판단으로 귀착된다. 우리는 성장하며 사회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하여 '순수'라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사회는 우리에게 융통성이라는 덕목의 함양을 위시하며, 규칙과 규율, 질서에 대한 순응과 적응을 강요한다. 상대의 비위를 잘 맞추며 살아가면 그제서야 성숙한 어른으로, 동료로 인정한다. 동시에 자신만의 창의성을 발산하라 말하지만, 막상 개성을 보이면 부적응자로 매도한다. 생각해 보자. 개성과 창의성이 그렇게나 다른 것일까? 창의성은 개성에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 우리는 다양한 매체 및 정보를 접하며, 저마다의 개성은 다원화됐지만, 사회 및 회사가 바라는 모습은 일원화됐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꽃이 지는 것은 성숙이라는 열매를 향한 필연'이라는 대사가 있다. 이 어구에 적용하자면, 우리는 '순수'라는 꽃을 잃지만, '성숙'이라는 열매를 얻는 것이다. 허나 나는 왜인지 꽃도, 열매도 다 뺏겨버린다는 느낌을 거둘 수가 없다. 성숙은 없고, 융통성을 가장한 순응과 순종만 남는 것 같다.

난 아직도 온전히 영글지 못했다. 난 지금 어른이 되어있는 걸까, 아직 어린이에 머물러 있는 걸까? 아니다, 난 어른도 어린이도 아니다. 난 '어른이'로서 살고 있다. 사회가 말하는 성숙이 그저 적응과 순응이라면, 난 미숙한 상태로 남을 것이다. 나만의 방법으로 성숙해지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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