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일
근자에는 짜증이 나려고 할 때마다, 부러 웃는 연습을 한다. 신기하게도 그 웃음은 짜증에 대한 방파제 역할을 해 주어, 마음의 파도를 가라앉게 해 준다. 일견 짜증이란 게 감정의 파도 정도로만 생각되지만, 그 파도는 차차 높아지다 결국 쓰나미라는 분노로 변모한다. 물론 모든 파도가 쓰나미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쓰나미에 의한 파도를 우리가 구분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짜증'이란 파도는 '웃음'이란 방파제로 막을 수 있지만, '분노'라는 쓰나미가 한번 생성되면, 그 쓰나미는 내 감정의 마을을 덮쳐 산산조각 낸다. 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그저 허망하게 쳐다보며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쓰나미가 덮친 후, 쑥대밭이 되어버린 내 감정의 마을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냥 걷는다. 걸으며 사색한다. 그곳에서 무너졌던 마을을 다시 재건한다. 기반을 다지고, 기둥을 세워 대들보를 올린다. 이번엔 좀 더 튼튼하게 지어 보려 끙끙대며 노력해 본다.
그런데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방어법은 없는 걸까? '분노'라는 쓰나미는 실제의 것과는 다르게, 우리가 집중하지 않으면 그 기세와 파고가 현저히 낮아진다. 여러 방어 기제를 활용해 보자. 나는 그중 '채널 돌리기'라는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 쓰나미가 방영되는 화면에서 다른 채널로 변경한다. 부정적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내 감정을 컨트롤하는 리모컨을 찾아보자. 내 마음속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보면 손에 반드시 잡힐 것이다.
당연히 이런 방법들이 언제나, 모든 상황에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시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