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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Jun 18. 2023

소크라테스의 독설


"아테네인이여, 나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에게 복종합니다.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진리를 사랑할 것이며 여러분에게 충언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광장에 나가 젊은이들과 이야기하는 일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들은 위대하고 지혜롭고 씩씩한 나라, 아테네의 시민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렇게 나라를 세웠고 일구었으며 그런 자랑스러운 나라를 우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정신 상태는 어떻습니까? 장사꾼처럼 온통 돈벌이에만 눈이 멀어 있지 않습니까? 참된 명예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그리고 고매한 영혼에 대해서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약 2,400여 년 전, 소크라테스는 한 아고라 법정의 배심원 앞에서 자신의 독설을 퍼붓고 있었다. 70세 노인의 충언은 논리가 완벽하고 화려했다.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사람은 멜레토스, 리콘, 아니토스로 이들은 아테네 유력한 지도층 인사였다. 이들이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죄목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신을 믿지 않는 불경죄요, 다른 하나는 청소년의 정신을 타락시킨다는 죄였다.


아테네 법정은 1차 재판에서 유죄와 무죄를 가리고 유죄가 인정될 경우 형량을 결정하는 2차 재판을 연다. 소크라테스는 무죄 판결을 애걸하지 않았다. 재판관의 동정을 사기 위해 눈물을 흘리고 빌고 탄원하는 것은 철학자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1차 재판의 결과는 유죄 280표, 무죄 220표로 유죄가 확정되었다. 그리고 2차 재판에서 유력한 정치인 아니토스는 멜레토스를 앞세워 사형에 처할 것을 주장하였다. 철학하는 짓만 그만두면 무죄 방면 해주겠다는 제안을 소크라테스는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이다. 2차 재판에서 사형 제의에 동의한 표가 360표로 사형이 확정되었다. 날이 저물어가고 재판을 마감하기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아이들이 성년이 되어 훌륭한 인격을 추구하지 않고 재물이나 그 밖의 속물적인 것에 빠져 산다면 내가 그동안 여러분을 괴롭혔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아이들을 괴롭혀 주십시오. 이제는 떠날 시간입니다. 나는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행복한 나라로 가게 될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누구인가?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아테네에 살면서 많은 제자들을 교육시켰는데 플라톤도 그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 활동은 아테네 법에 위배된다 하여 사형을 당했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 제도가 쇠퇴하면서 사회적 황폐가 확대되는 상황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그 당시의 지배계급인 귀족계급을 대변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신흥계급의 출현으로 반민주주의적인 귀족계급이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종래 그리스의 유물론적인 자연철학의 대립하여 그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기초로 하여 영혼에 대해 깊게 생각하면서 삶에 온당한 방법을 아는 것을 지식의 목적이라 하고 이로써 도덕적 행위를 고양시키는 것을 지향하였다.

영혼을 주제로 한 그의 학설은 정신주의적이고 관념론적인 것으로 이것이 그의 제자인 플라톤에게 계승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저작은 없으나 그의 사상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텔레스의 저작에 나타난다. (출처 : 철학사전)


소크라테스는 2,400여 년 전에 세상을 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고대 격언을 자주 인용하여 이 말이 더욱 유명해졌다. 문답법을 통한 깨달음, 무지에 대한 자각, 덕과 앎의 이치를 중요시했다.


그는 조각가인 아버지와 산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얼굴은 크고 둥근 데다 이마는 벗어지고 눈은 툭 불거졌으며 코는 뭉툭하고 입술은 두툼한 데다가 키는 땅딸막했다. 게다가 배가 불룩하여 걸을 때는 오리처럼 뒤뚱거렸다.


지금도 전 세계가 소크라테스를 존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소크라테스는 현명한 철학자이자 세 번이나 전쟁에 참가하여 자신의 나라에 충성한 애국자다.

둘째, 가난하여 누추한 옷차림으로 생활하였으나 보수를 받지 않고 제자를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했다. 당시 많은 보수를 받고 가르친 소피스트와 달리 양심적인 철학자다.

셋째, 자신의 목숨을 걸고 철학과 양심을 지킨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인물이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세상을 떠난 지 2,400년이 흘렀지만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 볼 때 소크라테스를 존경할 수밖에 없다. 즉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철학자, 나라를 지킨 용감한 애국자,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정한 교육자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스 신전의 양쪽 기둥 밑에 새겨져 있는 비명(), "너 자신을 알라!"를 평소 외치고 다녔던 소크라테스의 지식은 죽어 있는 지식이 아니라 행동하는 살아있는 지식이었다.

요즈음,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일부 사회지도자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의 의미를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유일한 은 앎이요, 유일한 은 무지다."라는 말도 소크라테스가 남긴 인생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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