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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Jun 21. 2023

감자바위를 아시나요?


내 고향 강원도 예로부터 감자를 많이 재배했다. 름날 저녁, 가끔 온 가족이 집마당에 있는 평상에 오손도손 둘러앉아 감자를 호박잎과 함께 소금이나 된장을 찍어 먹었다. 그때, 달려드는 모기는 마른 쑥을 태워서 연기로 쫓아버렸.


고향 농촌마을에는 집집마다 감자를 큰 독에 넣어 썩히고, 녹말을 추출하여 감자떡을 만들었다.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감자전을 만들고 간식으로 맛있게 먹기도 했다. 할머니가 계시던 삼척군 북평읍(현 동해시) 송정리 마을은 감자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며칠 전, 서울이 고향인 아내가 강원도 사람을 왜 '감자바위'라고 하는지 물어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사실, 나도 정확한 뜻을 몰랐는데 최근 우연히 읽은 문예지 '강릉 가는 길'을 읽고 감자바위 뜻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강원도는 옛날부터 산세가 웅장하고 살림이 울창하였으며 사람들도 믿음직하고 신뢰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려 시대에는 강원도 남자들을 '바위님' 또는 '바우님'이라고 했다. 조선 후기에 감자가 우리나라에 전파되었으며, 강원도 남자들의 호칭 '바위님'은 감자가 많이 나는 특징이 붙여져 '감자바위'로 바뀌게 된 것이다.

두타산 무릉계곡

감자는 남아메리카 토착민 사이에서 오랫동안 재배되었다. 1,532년경에 에스파냐 탐험가 피사로(F. Pizzaro)에 의하여 항해 중의 식량으로 처음 사용되었고, 이어서 에스파냐, 아일랜드 등지에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824~1825년 사이에 함경도 명천부에 살던 김 모(某)라는 관상쟁이가 북쪽에서 가져왔다는 설과, 삼을 캐는 청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몰래 들어와 심어 먹던 감자가 땅에 그대로 남아 있어 전파되었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감자바위의 본래 뜻은 믿음직한 강원도 남자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호칭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강원도 남자들의 기질 중 긍정적인 면은 신뢰를 꼽을 수 있다. 문예지에 수필을 쓴 작가는 젊은 시절, 수도권에서 전세를 구할 때, 본인은 강원도 출신이고 직업이 교사라고 하면 집주인이 신뢰하였으며 별다른 애로사항은 없었다고 다.


사람 사는 세상이 대체로 비슷하겠으나 강원도 사람의 기질은 솔직 담백한 편이다. 그 원인을 굳이 찾아보자면 성장기에 사람들한테 덜 시달리고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두타산 배틀바위

강원도 사람들은 풍부한 상상력과 담백한 기질이 있기에 저명한 문인이 많았다고 한다. 고려시대, 민족의 대서사시 '제왕운기'를 저술한 이승휴를 비롯하여 조선 시대에는 이율곡, 신사임당, 허균 및 허난설헌 등 천재적인 문인도 배출하였다. 근현대에도 김유정, 이효석, 박인환 등 유명한 작가들이 있는데, 아마도 강원도의 다양한 자연환경이 글쓰기 재로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지방도 산업화로 나날이 변해가고 있다. 독특한 맛과 향이 풍기던 옛 모습이 점점 사라져 아쉽다. 기회가 되면 고향을 찾아가 옛 추억을 회상하며 감자와 호박잎을 소금에 찍어서 먹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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