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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Jul 07. 2023

법정 스님과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믿는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2008년에 발간한 법정 스님의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에 수록된 글이다. 이 책은 종속된 삶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자유인의 삶을 사는 법, 또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발견하고 순수와 본질의 세계를 회복하는 일에 대한 영적 지침서라고 한다.

2007년 육체적인 병으로 삶과 죽음이 경계를 넘나든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관한 생각을 기록한 것인데, 스님은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고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는 순간들에 대해서는 그대로 열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도 다.


법정 스님은 이 책을 발간하고 1년 4개월이 지난, 2010년 3월 11일에 입적하셨다. 입적하기 일 년 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은 저승으로 갈 때, 몸뚱어리는 물론 돈, 명예, 직위 등도 남기지 못하지만 오직 덕(德)은 남긴다고 말했다.


나는 샘터사가 1983년에 출판한 '산방한담(山房閑談)' 수필집부터 스님의 책을 즐겨 읽었으며, 무소유 철학과 삶의 지혜를 배우려고 노력했다. 스님의 글을 읽으면 복잡한 세상일이 쉽게 풀리는 느낌이 들고 욕심 없이 만족할 수 있는 행복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마무리' 수필집은 외환은행 본점 영업부장으로 재직할 때, 부하 직원이 선물로 주었는데, 이 책을 받고 몇 년 후에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법정 스님의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으면 미국의 대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다음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란 시가 생각난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로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현대 미국 시인 중 가장 순수한 고전적 시인으로 손꼽히는 로버트 프로스트가 쓴 시로, 소박한 전원의 정서를 인생의 문제로 승화시킨 서정시다. 제재는 숲 속에 난 두 갈래 길이고, 주제는 삶에 대한 희구(希求)와 인생행로에 대한 회고다.

시인은 어느 가을, 숲 속에서 두 갈래의 길을 만나 망설이다가, 그중 사람이 적게 다니는 길을 선택하고, 자신이 선택한 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회상하는 내용으로 시상을 전개한다. 특히, 시의 원제가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인 것을 보면 자신이 걸어온 길보다는 걷지 않았던 길에 대한 미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지 않은 길'은 프로스트가 실의에 빠졌던 20대 중반에 썼다고 한다.

인간은 살면서 늘 선택을 해야 한다.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길에도 때로는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다. 만일 다른 길을 갔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선택은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고 어떤 경우에는 본인이 처한 운명 때문에 선택할 여지가 없는 경우도 있다.

법정 스님은 자신이 걸어온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최선을 다해 본인이 선택한 길을 걸어왔기에 아무런 아쉬움도 없고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본인이 선택한 길이 최선이 아니었다는 아쉬움이 시에 묻어난다.


가끔 내가 걸어온 길을 회상해 본다. 어느 때는 다른 길을 가보려고 욕심을 부린 적이 있고, 일이 순조롭지 않을 때는 남을 탓하기도 다. 그러나 운명때문인지 용기가 부족했든지 내가 걷고 있는 길을 바꿀  없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길이 옳고 저 길은 옳지 않다는 생각은 선입견일 수도 있다. 꽃길만이 행복을 보장할 것이란 생각도 착각에 불과하다. 모든 길에는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도 있듯이 세상사도 '고진감래(苦盡甘來) 흥진비래(興盡悲來)'다.

죽음을 앞둔 한 남자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충실한 인생을 살았다고 회상하는 노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My Way)'를 들으며 앞으로 어느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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