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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Jul 07. 2023

참 오지랖도 넓다

  오늘은 고향 친구, 사장을 11시 50분에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다. 장 사장은 국민은행에서 정년퇴직한 후, 지금은 창호 제조업체를 경영한다. 그래서 은행원이었던 나와 정서가 비슷하고 대화가 편안하여 자주 만나며 지낸다. 하늘은 푸르고, 가을바람에 해맑은 코스모스가 하늘거려서 가을이 왔다고 실감했다.

   약속 장소인 도로주차장에서 약 5분쯤 기다리니, 검은색 그랜저 승용차가 나타났다. 정확히 50분이었다.

   나는 차를 향해 먼저 수경례를 한 다음, 주차 안내를 시작했다. 전경 시절에 배웠던 교통 수신호를 절도 있게 하였으며, 정차할 위치에서는 주먹을 꽉 쥐고 웃으며 OK 사인을 멋지게 보냈다. 군(전경)에서 복무할 당시, 교통보조 근무를 서울 시내에서 여러 번 하였지만 지금처럼 세련되게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차에서 내리더니 웬일인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반대쪽으로 돌아 재빨리 걸어갔다.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아뿔싸! 차에서 내린 사람은 내 친구가 아니라 난생처음 본 얼굴이었다. 순간 친구의 외모가 갑자기 달라졌나? 하는 의심도 들었다. 시계를 보니, 큰 바늘이 정확하게 50분을 가리키고, 작은 바늘이 10시를 가리켰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하여 급히 인근에 있는 '늘벗근린공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얼마쯤 시간을 보내고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남이 주차하는데, 참 오지랖도 넓었구나 하는 생각은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자 검은색 그랜저 차량이 서서히 나타났다. 나는 거수경례는 물론, 주차 안내도 하지 않았다. 한 시간 전, 유별난 내 오지랖으로 기(氣)가 완전히 빠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차에서 내린 사람은 확실히 내 친구였다. 장 사장은 손을 흔들며 "별일 없지?"라고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한 시간 전에 있었던 사건(?)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이 공포에 질려서 빨리 도망간 것이 틀림없네!"라고 상황 판단을 정확하게 했다. 이어서 "미친 사람을 보고 얼마나 무서웠을까?"라고 말했다.

   나는 그간 살아오면서 선입견과 아집으로 적절하지 않은 처신을 여러 번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고희를 눈앞에 두고, 인생에서 넓은 오지랖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주차장 옆 은행나무에서 놀고 있던 까치 몇 마리가 내 모습을 지켜보았는지 키득키득 웃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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