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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Jul 10. 2023

어느 시인의 묘비명

오늘은 일본 여행 . 나라시(市) 있는 동대사(東大寺)와 사슴공원을 구경한 ,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년)가 축성한 오사카성으로 했다.

오사카성 도착하여 그가 살았천수각으로 올라갔다. 천수각은 현재 오사카시립 박물관으로 사용하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생을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그가 쓴 시(詩)를 소개했다.


"이슬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살아온 한 세상이 봄날의 꿈만 같구나"


이 시는 16세기, 막강한 권력과 부를 축적한 후, 중국 명나라를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하여 많은 인명 피해와 고통을 안겨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묘비명이기도 하다.

묘비명이란 묘비에 새긴 고인을 기념하는 명문(銘文)이나 시문(詩文)을 한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것은 이집트의 미라를 넣은 관에 죽은 사람의 연령, 관직과 이름이 새겨졌다고 한다. 그리스 묘비명의 대부분은 단순히 이름과 고별의 뜻을 나타낸 것이 많지만 거기에 아름다운 시구(詩句)를 곁들인 것도 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극작가 겸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묘비명은 세상에 잘 알려졌다. 그는 94세까지 살았으며, 생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죽음을 앞두고 아쉽고 섭섭한 자신의 감정이 묘비명에 잘 나타났다.


내가 가끔씩 찾아가는 산소에는 다음과 같은 묘비명이 있다.


   비원(悲願)


이슬 같은 목숨이

오욕칠정에 시달리다 간다


마지막 소망은

사바 세상으로

다시 오지 않는 것


삶도

죽음도 없고


부활도

윤회도 없는


절대 적멸 속으로

미련 없이

스러져가는 것


김상기 시인은 이 시를 쓰고 자식들에게 묘비명으로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는 부인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고, 몇 년 후, 병마로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나는 시인의 산소를 찾아가 이 묘비명을 볼 때마다 가슴이 시리고 삶이 허무하다고 느낀다. 김상기 시인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 본격적으로 시를 썼으며 '아내의 묘비명'이란 시집을 출간하여 사랑의 실천이 내일의 일이 아닌 바로 오늘의 일임을 말해주 비슷한 슬픔과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웃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기도 한다.


'아내의 묘비명' 시집은 2011년 12월에 출간하였는데, 어느 일간지는 이렇게 소개했다.

'4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는 애절한 마음과 깊은 부부애를 그려낸 시집이 출간됐다. 김상기 시인의 '아내의 묘비명'이다. 사별한 아내를 향한 진솔함을 그려낸 시편들을 담고 있다.' ( 출처 : 문화일보, 2011, 12, 12 )


시인 산소의 묘비, 앞면에는 김상기 시인이 쓴 아내의 묘비명 '연가'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연가



목숨이

백 년은 푸르를 줄 알았다


사랑은

천 년도 을 것만 같았다


차운 비 한 서슬에

놀라 깨니 적막한 꿈


꽃향기 새소리도

無明으로 쓸려간다


깊은 강 건너

잊혀진 내 무덤가


그리운 그대 음성

바람결에 뒤채인다



시인은 MBC 보도국장을 거쳐 대전 MBC 사장을 역임했다. 직장일은 물론, 항상 어려운 이웃을 솔선하여 도왔으며,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 노후생활자금으로 모았던 일억 원을 그의 모교인 대전고등학교에 전액 기부했다. 그의 두 아들은 바르게 성장하여 현재 변호사와 의사로 활동한다.


나는 시인과 동서지간으로 친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다. 오래전, 동서 부부와 함께 내 고향을 방문하여 내가 어릴 시절, 자랐던 동네와 신비한 환선굴을 구경하고 경포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어린이처럼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지금도 양재천을 산책하면서 시인이 살았던 아파트를 멍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인생은 이슬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허무한 것인가? 성경에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말씀이 있고 불교의 영가 법문에는 '공수래공수거'라는 시구(詩句)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봄날에 꿈처럼 살았던 오사카성을 나설 때, 무심(無心)한 까마귀 몇 마리가 천수각 지붕 위에서 뛰어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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