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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Jul 12. 2023

설날 아침의 대모산

밤새 하얀 눈이 소리 없이 내렸다. 나뭇가지에도 소복이 쌓이고, 멀리 바라보이는 대모산도 눈이 덮여 아름다운 자태를 보였다.

오늘이 설날이라, 서설(瑞雪)이 내렸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떡국을 먹고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졌다.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고 눈이 또 한바탕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다. 오랜만에 나 혼자 대모산에 가보고 싶었다. 눈꽃이 만발한 겨울산은 세상에서 가장 큰 눈송이라고 한다. 대모산은 1990년대부터 내가 즐겨 찾던 으로, 한때 하루에 두 번씩이나 오르내렸던  이다.

대모산 입구에 도착하여 눈 내린 산자락을 찬찬히 둘러보니 옛적, 대모산을 함께 올랐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한 친구는 7년 전, 하늘나라로 떠났고, 또 한 친구는 분당으로 이사했다. 새하얀 눈 위에 또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일원동 불국사로 향했다.


대모산은 강남구 개포동과 일원동 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높이는 약 293m이다. 대모산이라는 명칭은 산의 모양이 늙은 할머니를 닮았다고 하여 할미산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과 그의 빈 원경왕후 민 씨 묘인 헌릉이 대모산 남쪽에 조성되면서 왕명에 의해 대모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서쪽에 있는 구룡산과 함께 봉우리가 여자의 젖가슴을 닮아, 대모산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어느덧, 불국사 입구에 다다랐다. 불국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스님의 우렁찬 독경 소리와 바라 소리가 대모산 자락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내 귀에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소리만 또렷하게 들렸다. 오늘이 설날이라 절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 같았다.

불국사에 도착하여 석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는 약사보전(藥師寶殿)을 살펴보니 차례를 막 끝내고, 음식을 철상하는 중이었다. 불국사를 둘러보고 나올 때, 한 보살님이 고맙게도 떡과 과일을 담은 봉지를 주었다.

국사 옆에 자리 잡은 '유아 숲 체험장'으로 갔다. 이곳에는 어린이 체력 단련장과 자연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새 둥지와 나이테가 전시되어 있다. 아들이 다섯 살 때부터 함께 자주 들렀던 곳인데, 벌써 25년의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최근에 조성된 대모산 '사색의 길'에 시인 기형도의 '빈집'이란 시가 전시되어 있다.


  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30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기형도의  애틋하게 가슴에 와닿는다. 대모산 정상으로 가는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니 대모산과 구룡산이 갈라지는 교차로에 '대모산'이라는 시를 적은 시판(詩板)이 보였다. 박정진 시인이 대모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시로 예찬했다. 자연을 보호하여 후손들에게 잘 물려주자는 내용을 담은 시다.


대모산은 크지 않아도 유난히 약수터가 많다. 내가 자주 다니던 임록천 약수터를 찾아갔다. 이 약수터는 오늘도 여전히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주변 바닥에 흰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나는 막대기로 "수수문학 건강 제일!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글을 써서 수수문학 문인회 작가들에게 새해 인사를 보냈다.


눈길이 미끄러워서 대모산 정상엔 오르지 않고 길을 되돌아서 내려왔다. 눈 내린 대모산을 산책하였더니 기분이 상쾌하고 새해의 시작이 산뜻하다고 느꼈다. 앞으로도 자주 대모산을 찾아 시를 읽고 사색하며 힐링할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대모산을 내려올 때, 까치 몇 마리가 오늘이 설날이라 즐겁게 장난을 치며 뛰어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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