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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Jul 12. 2023

두둥이와 세 마리 구피


   지난 8월 어느 날, 손주를 만나기 위해 SRT 수서역 플랫폼에서 대구에서 오는 열차를 기다렸다. 손주를 만나는 은 언제나 마음이 들뜨고 설렌다. 대구에 살고 있는 손자, 두둥이가 서울로 올 때마다 마중가는 SRT 수서역은 만나는 기쁨이 있고 헤어지는 슬픔도 다.

   4년 전, 딸네 가족은 서울에서 대구로 이사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딸이 낯선 대구로 이사할 때 마음이 허전하고 더욱이 손주를 자주 볼 수 없게 된다는 실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사위는 서울에 있는 모 대기업에서 근무하였지만, 대구에서 중소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아버지 사업을 돕기 위해 대구로 내려가게 되었다.


   기다리던 열차가 경적을 울리며 플랫폼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두둥이는 열차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두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할아버지!"하고 외치며 달려와 나에게 덥석 안겼다. 나도 두둥이를 반갑게 꼭 껴안아주었다.

   두둥이의 해맑은 미소를 볼 때마다 어린이는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라는 생각이 다. 두둥이는 현재 초등학교 1학년으로 난생처음 여름 방학을 맞이하였다.


   집에 도착하여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연어구이를 다 함께 먹었다. 그리고 두둥이와 양재동 꽃시장으로 , 열대어 구피 세 마리를 샀다. 딸이 어렸을 때도 열대어 구피를 길렀던 추억이 있다.

두둥이는 집으로 돌아올 때 구피 때문에 표정이 더욱 밝아졌고 구피 세 마리가 놀고 있는 어항을 한참 동안 쳐다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구피는 난태생 송사리과의 민물고기로 몸길이는 암컷 약 6cm, 수컷 약 3cm이다. 몸은 가늘고 길며 송사리를 닮았다. 구피는 관상용으로 널리 사육되는데, 우리가 사 온 구피는 수컷으로 송사리와 거의 비슷했다.

   저녁 식사를 할 때 두둥이가 "할아버지! 잉어가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양재천은 손주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즐겨 찾던 놀이터 겸 학습체험장이다. 신록의 계절, 봄에는 개나리와 벚꽃이 만발하고,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에는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하늘이 새파란 가을에는 단풍이 붉은 빛깔로 곱게 물들고, 보랏빛의 핑크뮬리는 환상적이다. 손주는 유아 때부터 양재천 잉어에 관심이 많았다. 다리 밑에 사는 잉어는 팔뚝만 하고 수십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서 사람이 던져주는 먹이를 덥석덥석 잘 받아먹는다.

   어두운 밤, 두둥이 손을 잡고 양재천으로 향했다. 잉어가 살고 있는 다리에 도착하여 밑을 내려다보니 잉어 입이 뚜렷하게 보이고 잉어들은 먹이를 줄 거라고 생각했는지 수십 마리가 몰려들어 오랜만에 나타난 두둥이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튿날 아침, 손자는 깨어나자마자 구피에게 달려가 신기한 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세 마리 구피는 쉬지 않고 활발하게 움직였다.

   딸과 사위는 모처럼의 기회라 준원이를 데리고 한강시민공원과 용인에버랜드 등을 찾아 휴가를 즐기면서 며칠을 보냈다. 두둥이가 대구로 돌아가는 날, 구피를 집으로 데리고 갈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구피야, 다음에 다시 만나자!"라고 작별 인사를 했다.

   손자가 대구로 떠난 빈자리는 언제나 허전했다. 구피를 보면서 그 빈자리를 메우려고 했지만 두둥이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그런데 구피들이 노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니 구피 두 마리가 한 마리를 따라다니며 계속 괴롭혔다. 쫓기는 구피의 지느러미는 웬일인지 일부분이 잘려나가고 보기에도 흉측했다.

   그다음 날 어항을 들여다보니 쫓겨 다니던 구피는 결국 죽었다. 하루 전에만 격리했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어항 속에는 두 마리 구피만 남았다. 남은 두 마리 구피도 서로 싸우면서 놀고 있었다.

   먼저 죽은 구피 생각이 떠올라, 두 개의 어항에 한 마리씩 따로 격리했다. 이제 어항 안에는 한 마리 구피만 있어서 서로 싸울 일도 없게 되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며칠 후, 어항 물을 갈아줄 때 구피가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구피를 집어서 어항으로 다시 집어넣었지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 그 구피가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동작이 느릿느릿했다. 아마도 바닥에 떨어질 때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이 구피도 죽었다. 이제 남은 구피는 다른 구피를 공격하던 가장 활발한 녀석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한 마리씩 격리한 이후부터 이 구피도 예전과 같이 활발하지 않고 어딘가 행동이 둔해 보였다.

   이 구피도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만일 이 구피마저 죽으면 나중에 준원이에게 설명하기가 난처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나는 아내에게 남은 구피 한 마리를 양재천에 풀어주면 좋겠다제안하자 적극 찬성했다. 아내는 만약에 남은 한 마리 구피 마저 죽는 것을 보면 마음이 너무나 괴로울 것이라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나는 아내와 한밤 중에 구피를 양재천에 풀어주었다. 우리는 마지막 구피를 양재천에 떠나보내고 마음이 심란하여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올 때 두둥이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금이라도 내게 전화를 걸어서 "할아버지 구피 잘 있어요?"라고 말할  같았다.

   마지막 구피가 떠난 양재천에는 귀여운 상현달이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울고 있는 듯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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