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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Apr 01. 2024

제주를 살린 빛, 김만덕

어제는 제주시에 있는 김만덕 기념관을 다녀왔다. 김만덕 기념관은 대한민국 최초의 나눔 문화 전시관으로 김만덕(1739~1812)의 나눔과 봉사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나눔 공간이다. 제주를 살린 빛, 김만덕 정신을 주제로 한 상설전시관과 김만덕의 정신을 마음에 담고 김만덕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상을 바꾸는 나눔을 알아가는 나눔 실천관, 나눔 문화가 퍼지는 열림 나눔 문화공간인 나눔 문화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역사소설에서 김만덕의 빛나는 선행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기념관에 방문하여 그의 일생을 더욱 자세히 알게 되었다.

   김만덕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 12살에 부모님이 모두 사망해 기생의 몸종으로 의탁하였는데, 다시 기생의 수양딸이 되어 가무를 익혀 제주도에서 한때 가장 유명한 기생으로 살았다. 가난한 집안 출신에다 전직 기생이었던 독신녀를, 여성에게 엄중했던 유학을 익힌 사대부들이 앞다투어 칭송하며 전국적인 화제 인물이 된 것은 만덕이 객주를 운영하면서 제주도 물품과 육지 물품을 교역하는 유통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이뤘고, 그 부를 계속되는 기근에 시달리는 제주도민을 살려내는데 쾌척하였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조시대 제주도민들이 계속되는 재해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조정에서 보낸 구휼미가 풍랑에 침몰하는 불상사까지 겹쳐 아사 위기에 처하자 만덕은 유통업으로 모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육지에서 쌀을 구입하여 제주 백성살려냈다. 당시 만덕의 인기는 남성들만 활기 치는 세상에서 여자가 홀로 많은 재산을 형성하는 비상한 재주를 가졌던 것과 어떤 남성보다 많은 양의 곡식(500 섬)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쾌척한 것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다. 뛰어난 업가이자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그의 덕행은 오늘날 우리가 충분히 만덕을 기릴 만하다. 그러나 만덕을 오늘날 다시 생각하는 것은 엄중한 유교 규범이 여성을 옥죄고 있던 시대와 불화하지 않고 당시 여성에게 지워진 한계를 거침없이 뛰어넘었던 용기를 만덕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고 기생으로 성공했으나 가족의 명성을 더럽힌다는 질책에 기적에서 빠져나왔으며 가족을 원망하지 않고 은혜찬 가족을 구함으로써 가족과 화해하였다. 또한 여성 사업가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갔던 창의적인 개척가였다.

   나는 1970년대 초 친구 2명과 한라산을 등반한 적이 있다. 목포에서 제주로 가는 여객선을 타려고 했지만 풍랑 때문에 배가 출항하지 못해 부둣가에서 이틀을 기다려서 여객선 '가야호'를 타고 제주로 갔다.


장맛비를 맞으며 개미등을 거쳐 힘들게 한라산 정상에 올랐으며 그곳에 텐트를 치고 비바람 속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날 성판악 코스로 하산하였고 서귀포 관광지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나는 태풍이 불면 제주도로 가는 길이 막히고 날씨와 더불어 운명적으로 살아야 하는 제주도 주민들의 애환이 많다는 것을 그 당시에 실감했었다. 등반을 마치고 부산으로 갈 때도 역시 태풍으로 제주항 근처에서 이틀을 기다렸다가 여객선 '제주 2호'를 타고 부산으로 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추억은 평생을 잊을 수 없다.


   조선시대는 물론 교통과 관광이 발달하기 전까지 제주도 주민은 농업과 수산업에 의존하여 삶을 살았는데 특히, 농경지가 부족하고 그나마 비옥한 땅은 아니므로 해산물을 채취하여 생계를 꾸려나갔다. 조선시대 여성은 한번 제주도에서 태어났으면 법으로 육지에 갈 수도 없었다고 한다. 평생을 바다에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힘든 해녀생활을 숙명적으로 해야 하는 운명이 애잔하기만 하다. 어머니로서 가족들을 돌보는 바닷속의 해녀 생활은 고통과 원망이 있었겠지만 오직 한가닥 희망은 자식들의 성공이었다. 김만덕 역시 척박한 땅 제주에서 여성으로 태어났고 조선시대 천민 중 최하위 계층기생이었던 그가 힘든 역경을 극복하고 유통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여성기업인으로 성공하였다.

   그리고 흉년이 들었던 힘든 시기(1795년)에 이웃인 제주도민을 살리기 위해 피눈물 나게 축적한 전재산을 흔쾌히 쾌척한 사실은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었고 우리는 아직도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천한 것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귀하고 천한 것이 결정된다고 말씀하였다. 따라서 아무리 지위가 높고 부자라 할지라도 행동이 반듯하지 못하면 천한 것이고 천하게 태어나도 행동이 반듯하면 이는 귀한 것이다. 누가 천하고 누가 귀한 것인가를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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