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만식 Mar 31. 2024

연잎과 새우젓

  꽃이 만발한 어느 해 봄날, 강남구 양재동에서 고향 친구들과 모임을 했다. 그날은 웬일인지 무릎 건강이 좋지 않은 철수도 오랜만에 참석했다. 철수는 표정이 무척 밝아졌건강하게 보였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무릎 통증이 완쾌되고 적당한 운동을 꾸준히 하였더니 몸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네."

  친구들은 놀라운 표정을 짓고 치료 경과를 물어보았더니 민간요법으로 완치했다는 기적 같은 말을 했다. 사실, 철수 동생이 S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이지만 양의 치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자신의 생각을 토로했다.


  철수고향에서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 문호 만났던 인연이 무릎 치료를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문호 친구 농촌지도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민간요법에 해박한 지식이 있고 경험도 풍부해 친구들이 신뢰하는 편이다.

  철수문호에게 무릎 통증을 호소하고 치료요법을 부탁했는데 문호는 송진가루에 들기름을 섞어서 무릎 부위에 꾸준히 바르면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따라 하니 상태가 아주 좋아졌고 지금은 거의 완치되었다고 자신 있게 했다.


  우리는  철수가 완치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으며 문호를 의사 이상으로 신뢰하게 되었고 민간요법도 때로 효험이 있구나 하고 믿게되었다.

  나는 철수에게 "다른 민간요법 얘기는 없었어?"라고 말하자 뱃살을 빼는 비법을 직접 들었다는 이야기를 힘주어 대답다. 즉, 새우 젓갈을 연잎에 싸서 배 위에 올려놓고 하룻밤만 자면 즉시 효과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아내가 뱃살이 , 신경을 쓰던 때라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기막힌 정보를 얻어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철수가 오늘 모임에 참석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임이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달려가 오늘 들은 얘기를 아내에게 자세히 했다. 아내도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그게 가능할까요?"라고 반문하였지만 나는 철수가 무릎 통증을 완치하였고 고향 친구들은 허튼소리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한번 해보자고 아내가 동의하였고, 내심으로는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는 듯했다.


  다음날 아침, 낚싯대를 자동차에 싣고 아내와 함께 많은 양수리 세미원 부근으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이 가득한 연못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바로 이 연잎으로 아내의 뱃살이 쉽게 빠지겠다는 생각절로 들었다. 혹시 누가  지켜보는다소 불안했지 연잎 여러 장을 낚싯대를 용하여 재빠르게 따고 급히 가락시장으로 향했다. 가락시장에 도착한  품질이 가장 좋다는 광천 새우젓충분히 구입하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아내와 나는 큰 일을 거의 마무리했다는 성취감에 약간 흥분했. 연잎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그 위에 새우 젓갈을 고르게 편 다음, 청테이프로 정성스럽게 붙였다. 내일이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오늘 하루의 피로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나는 아내의 배 위에 조심스레 새우젓이 들어있는 연잎을 올렸다. 아내의 눈빛도 고마워서 그랬는지 부드러워 보였다. 우리는 곧 잠이 들었고 한참을 잤다. 그런데 새벽녘에 갑자기 아내가 나를 깨웠다.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니 아주 울상이 되어 있었다.

  "아뿔싸!" 새우젓을 담은 연잎이 터져 아내의 몸은 물론 이불 전체가 새우젓으로 온통 범벅이 되었다. 나도 당황했지만 용기를 내고 "뱃살이 빠진 기분이 들어요?"고 은근히 물어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아내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도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후회하는 것 같았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친구말을 너무 믿었나?' 하는 생각이 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사건은 이미 흘러 과거가 되었고, 우선은 심한 냄새 때문에 이른 새벽부터 열심히 청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우리 집 식탁엔 한동안 새우이 올라오지 않았고,  나는 고향 친구 덕분(?)에 아내에게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새우젓이나 연잎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영혼의 무지개를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