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만발한 어느 해 봄날, 고향 친구들과 양재동에서 모임을 가졌다. 무릎 건강이 좋지 않은 철수도 오랜만에 참석하였는데 얼굴이 비교적 건강하게 보였다. 친구들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철수에게 무릎이 나아졌는지 물어보니, 철수는 "민간요법으로 무릎이 완치되었어."라고 말했다. 사실, 철수 동생이 S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이지만 양의 치료는 자기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철수는 몇 년 전, 고향에서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 문호를 만난 인연이 무릎 치료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단다. 문호는 농촌지도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민간요법에 해박한 지식이 있고, 경험도 풍부하여 친구들이 제법 신뢰하는 편이다.
철수는 문호에게 무릎 통증을 호소한 후, 치료요법을 부탁하자 송진가루에 들기름을 섞어서 무릎에 꾸준히 바르면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그대로 따라 하니 완치되었다고 했다.
철수의 무릎이 완치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호를 의사 이상으로 신뢰하게 되었으며 민간요법도 때로는 효험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나는 철수에게 "다른 얘기는 없었어?"라고 말하자 뱃살 빼는 비법을 직접 들었다는 이야기를 자신 있게 말했다. 즉, 새우 젓갈을 연잎에 싸서 배 위에 올려놓고 하룻밤만 자면 즉시 효과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아내가 뱃살로 신경을 쓰던 때라, 이 말이 내 귀에 쏙 들어왔다. 기막힌 정보를 얻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철수가 오늘 모임에 참석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임이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달려가, 오늘 들은 얘기를 아내에게 자세히 전했다. 아내도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그게 가능할까요?"라고 반문하였지만 나는 철수가 무릎 통증을 완치하였고 내 고향 친구들은 허튼소리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잠시 아내가 머뭇거리다가 그렇다면 한번 해보자고 동의하였으며, 내심으로는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는 듯했다.
다음날 아침, 낚싯대를 자동차에 싣고 아내와 함께 연이 많은 양수리 세미원 쪽으로 향했다. 경치가 좋은 양수리 부근 목적지에 도착하여 연이 가득한 연못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 연잎으로 아내의 뱃살이 쉽게 빠지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혹시 누군가가 지켜보는지 불안하여 낚싯대로 재빠르게 연잎을 따고 급히 가락시장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품질이 가장 좋다는 '광천새우젓'을 구입한 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큰 일을 거의 마무리했다는 성취감에 도취하여 약간 흥분했다. 연잎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그 위에 새우 젓갈을 고르게 편 다음, 청테이프로 정성스럽게 붙였다. 내일이면 효과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오늘 하루의 피로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어두운 밤이 되자 아내의 배 위에 새우젓이 들어있는 연잎을 조심스레 올렸다. 아내의 눈빛도 고마워서 그랬는지 오늘따라 부드러워 보였다.
우리는 곧 잠이 들었고 한참을 잤다. 그런데 새벽녘에 갑자기 아내가 나를 깨웠다.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니 아주 울상이 되어 있었다.
"아뿔싸!" 새우젓을 담은 연잎이 터져, 아내의 몸은 물론 이불 전체가 온통 새우젓으로 범벅이 되었다. 나도 순간 당황했지만 용기를 내고 "뱃살이 빠진 기분이 들어요?"라고 슬며시 물어보았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내는 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 순간 나도 친구말을 너무 믿었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미 흘러간 과거가 되었으며 당장은 심한 냄새 때문에 우리 부부는 이른 새벽부터 열심히 청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우리 집 식탁엔 새우젓이 올라오지 않았고, 나는 고향 친구 덕분(?)에 아내에게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새우젓이나 연잎 이야기는 입밖에도 꺼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