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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Apr 15. 2023

하늘나라와 주고받은 편지

   

오랜만에 친구들과 교대역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아침부터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온종일 날씨가 음산하여 기분이 그리 산뜻하지는 않았다.

한동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만나지 못해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성 대표가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다른 두 친구는 직장에서 이미 은퇴를 했으며, 현재 취미활동을 하거나 손주들을 돌보고 지내고 있다.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일상생활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대화의 주제는 주로 건강과 취미활동이었다. 한 친구는 은퇴한 지 근 2년이 되어가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대하던 해외여행을 할 수 없다고 신세한탄을 했다. 그는 직장에 재직할 때 일 년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냈지만 가족들과 즐겁고 편하게 여행할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는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느껴서 하느님을 신실하게 믿는 친구가 가장 부럽다고 속마음을 토로했다.

  

성 대표는 대학생 때 활동했던 향영회(경영학과 연합 동아리) 회원들과 '세노향 합창단'을 조직하고 수시로 노래 연습과 합창 공연을 하는데, 아주 재미있고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프로 남성합창단 '벨리시모' 단장을 맡아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한 경력이 있으며 나도 초대를 받아 관람한 기억이 다. 성 대표는 합창단에서 유명한 곡의 가사를 외우고 노래를 하나씩 익히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고 한다. 우리에게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주변의 합창단에 가입해  것을 적극 권했다.      

세노향 합창단 정기공연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옛 시절의 추억과 그리운 친구들 이야기로 흘러갔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가 머리에 떠오르고 보고 싶었다. 그 친구도 이민 가기 전, 향영회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었다. 그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결국 상당한 원고만 남긴 채, 5년 전 하늘나라로 떠났다. 가족들은 장례를 현지 샌디에이고(San Diego)에서 치렀고 대학 친구들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동창회 노 회장이 주도하여 서울 북한산 자락에 있는 도선사(道詵寺)에서 49재를 지냈고, 여러 친구들이 부인과 함께 참석하여 고인을 추모하였다. 고인의 아내, 정 여사도 귀국하여 함께 49재를 치렀다.


정 여사는 49재를 치른 다음날, 고인과 친하게 지냈던 국문학과 김 교수를 찾아갔다. 고인이 생전에 쓴 원고를 보여주며 수필집을 발간하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김 교수는 그 글을 읽어보니 감동적이고 훌륭한 글이라고 느껴서 본인이 직접, 교정 후기를 썼다. 정 여사는 남편을 기리는 뜻에서 '가끔 수취인 없는 편지 쓴다(저자 정재진)'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발간하여 남편과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이 책을 타계 첫 주기를 맞아 우리 가족이 가장 사랑했던 남편 정재진 씨의 영전에 바칩니다. 나는 항상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재진 씨를 존경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면 아름다운 인연이 되어 나는 또 정재진의 아내가 될 것입니다. 당신 곁으로 가는 그날까지 좋은 추억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당신을 보듬으면서 하루하루를 시작하렵니다.   

                                      정경희 드림'


하늘나라에 있는 친구 이야기를 하자 마음이 숙연하고 침울한 분위기가 엄습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벌써 돈, 권력과 명예가 껍데기로 보이는 나이가 되었어. 이제는 나의 건강과 가정의 화목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런데 사실 이것보다 더 절실한 건 죽을 때까지 재미있고 즐겁게 사는 거야. 나는 합창 모임을 즐겁게 하는 성 사장이 참 부럽다.“     

이 말을 한 친구는 몇 년 전, 딸이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딸의 시아버지 즉, 자신의 사돈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방문한 조문객들에게 고인이 생전에 썼다는 감사편지를 유족들이 나누어 주었고 나도 특별한 그 편지를 읽은 기억이 났다. 고인의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녕하십니까?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여러분들께 받은 사랑과 위로 덕분에 건강할 때는 물론 긴 투병 기간에도 행복했습니다. 이제야 저희 장례식을 통해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죽음은 많은 분들이 이미 간 길이고 또 모두 갈 길이기 때문에 삶을 당연하게 여기 듯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익숙한 일상과 영원히 헤어진다 생각하면 아득한 느낌인 것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과의 소중한 인연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제게 주어진 가장으로서의 소임은 부족한 데로 마무리를 졌습니다. 많은 분들의 축복 속에 아들의 혼사를 치렀습니다.


가장 슬퍼할 제 처와 사랑스러운 딸은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리라 맡기고 나니 홀가분해졌습니다. 제가 없더라도 두 사람을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남 ㅇㅇ 드림'     


오늘 친구들과 진솔한 대화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다. 행복하게 살려면 건강이 중요하지만 죽는 날까지 재미있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실감했다. 그리고 저세상으로 떠날 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 남기면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늘나라에서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정재진 친구와 친구 사돈이 주님의 곁에서 평안하시길 재차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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