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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May 04. 2023

친구와 주고받은 인생편지


청옥 선생!

요즘 친한 옛 직장 동료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허허로운 마음이 청옥을 지배하는 것 같아서 내가 평소 생각하는 몇 가지를 적어 보냅니다.

나는 평생 과학도로 살아왔기 때문에 인생을 보는 관점이 청옥과 다를  있지요. 작가는 인생을 구름, 이슬, 먼지에 비유하고 삶의 덧없음과 허무를 논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수명이 있고, 긴 수명을 가진 동물 중에서 그나마 인간은 더 긴 수명을 유전자로 갖고 태어나지요. 유한한 생명체인 인간을 바위, 산, 지구, 우주 같은 무한 나이의 무생물체와 비교하며 인생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봅니다.


50~100년의 수명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행복한 인생을 논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억울하게 기아로 죽거나 어린 나이에 사고로 떨어지는 꽃봉오리는 애달프겠지만.

물리적으로도 50~100년이라는 세월이 이슬처럼 짧은 시간인가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가 길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인생을 시간으로 구분해 보면 태어나 30년은 배우고, 30년을 사회에 활용하며, 10~20여 년은 쉬다가 유명을 달리합니다. 이 기간에 사랑, 우정, 희로애락을 겪으며 저승으로 떠나가는 것이지요. 영특한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아 종교를 낳고, 인간의 탐욕은 전쟁과 기아를 낳기도 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70년의 인생을 본인이 보람 있게 살았다고 생각하면 멋진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보람인가요? 우리 조상들이 인간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길렀듯이, 나도 결혼하여 자식이 다음 세대의 인간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결혼시키는 단계를 잘 이끌어 주는 것이 첫 번째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여 내 역할이 사회 시스템 발전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면 멋진 인생을 살았다고 봅니다. 나머지 20여 년은 삶의 마무리로 그동안 못다 한 일과 취미생활을 하면서 소박한 행복을 느끼는 하루하루라면 멋진 인생이지요.


이 십여 년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인생의 마지막 모습이 아닐런지요? 지난날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은 아무 소용이 없지요. 그런 면에서 청옥이나 나는 인생을 나름 멋지게 살아온 것이 분명합니다. 먼저 간 직장 친구와의 옛정을 생각하면 아쉬움과 애잔함이 있겠지만 길게 보면 조금 일찍 떠난 것에 불과합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


2022. 9. 5


경 ㅇㅇ 배상


경 교수!

우선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진솔한 글을 보내주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경 교수는 과학자 다운 관점에서 인생을 관조하고 어느 정도, 도(道)를 깨달은 현자(賢者)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육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영혼도 함께 따라오지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육신을 지배하는 것이 영혼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문명이 발전하면서 문화도 함께 꽃을 피워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생명이란 과학적으로 유한하듯이 성경에도 인간은 원죄 때문에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는 말씀이 있지요. 종교를 떠나서도 인간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오욕칠정 때문에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고 봅니다.


종교나 예술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지요. 누구나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아마도 종교는 이 세상에 설자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종교에 귀의하는 것은 죽음을 슬픔과 동시에 두려움으로 인식하기 때문이지요. 이별은 나이에 불문하고 슬픈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더욱이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익숙한 일상과의 영원한 이별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평안한 사후세계를 누가 보장할 수 있습니까?


각자 자신의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사상을 피력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각자의 생각과 철학은 타인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깔이 있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닐런지요?

과학자 중에 철학과 종교에 심취한 인물도 있고, 철학자 중에도 종교를 비판한 자(者)가 있습니다. 독일의 시인이자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고, 중국의 사상가, 노자(老子)는 부인이 죽자, 덩실덩실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던 도인(道人)입니다.


경 교수의 글을 읽고,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수행자들이 고통을 감내하며 종교에 귀의하는 목적은 해탈에 있다고 보지요. 즉,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또는 사후에 천국으로 가는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종교적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이나 종교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오래되었고, 과학 역시 인류에 지대한 기여를 해왔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인간을 다스리는 것은 사상이나 종교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영혼의 양식은 무엇인가요?

인간은 배가 고프면 이성적으로 빵을 찾지만 기본 욕구가 충족된 후에는 타고난 욕망 때문에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반세기 넘게 친구로 살아오며 경 교수의 사상을 처음 글로 접하고 참다운 과학자로서의 인생관을 알게 되어 기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어느덧 매미 소리가 멈추고 가을 풀벌레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파란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떠가고 길옆에 수줍게 핀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하늘거립니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 멋진 추억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2022. 9. 6


청옥 홍만식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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