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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May 27. 2023

  설거지

"여러분은 설거지할 때, 오로지 설거지를 위한 설거지를 해야 합니다."


이 말은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 낫한 스님이 남긴 명언이다. 즉, 설거지할 때, 오로지 설거지에만 마음이 머물러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끝났을 때의 깨끗함이나 해방감만을 생각하면서 설거지를 하게 되면 마치 성가신 일을 처리하듯 서둘러서 그릇을 씻게 고 지금, 여기에 충실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인생이란 지금(now), 여기(here)에 충실히 살아야 행복하다는 인생 가르침이다.


몇 년 전부터 우연한 계기로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옛적에는 남자가 설거지를 하는 것이 어색하고 민망히 여겼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도(道)를 닦는 심정으로 열심히 설거지를 한다.


내가 설거지를 시작한 사연은 이렇다.

2020년 12월 어느 날, 아내가 의자 위에서 신발장을 청소하다가 현관 바닥으로 넘어져 손목이 부러졌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하여 손목을 수술받고 4일 후, 깁스한 상태로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부득이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도 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설거지에 별다른 관심을 둔 적이 없다. 설거지란 사전적 의미는 음식을 먹고 더러운 그릇을 깨끗하게 씻는 것을 일컫는다.


설거지하면서 설거지가 식사 준비보다도 번거롭고 힘든 일이라고 새삼 느꼈다. 그리고 설거지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는 설거지는 하찮은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깨달았다.


첫째, 설거지는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다.

더러워진 그릇을 씻는 동안 그 음식을 준비한 사람과 음식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준다. 또한 이 음식을 수확한 농부와 어부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종교를 믿는 신자라면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느님에게도 감사를 드릴 것이다. 감사 기도는 음식을 먹기 전후 하지만 설거지하는 동안에도 한번 더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둘째, 설거지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결혼 후, 수십 년 동안 아내가 설거지를 하는 수고에 대해 감사하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더욱이 식당에서 외식할 때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설거지를 하는 종업원에게 고맙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행복하고 즐거운 식사 시간도 설거지라는 과정을 통해 가능하다는 사실 알게 되었다. 즉,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실을 일깨워준 것이다.


셋째, 설거지는 구도자의 수행과 비슷하다.

설거지란 더러운 그릇을 깨끗하게 닦는 행위다. 따라서 수행하는 자세로 나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새 출발을 하는 계기가 된다. 더러움은 눈에 보이는 물질과 보이지 않은 말과 생각이 있을 수 있다. 더러운 물질은 깨끗한 물로 씻으면 쉽게 해결된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쌓인 분노나 탐욕은 쉽게 씻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철저히 겸손하고 상대를 존중할 때만 가능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종교는 하루에 기도를 여러 번 한다. 설거지도 여러 번 함으로써 더러운 그릇은 물론 내 마음속의  때를 함께 씻는 마음 자세로 설거지를 하고 있다.


넷째, 식사를 간단히 하면 설거지도 간단해진다.

현대 생활은 영양실조라는 말은 거의 사라졌다. 간결하고 소박한 식단은 설거지도 간편하고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단순하게 살아야 자유롭고 자유를 느끼면 행복해진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우리 집 부엌은 북창이 나 있다. 틱낫한 스님의 말씀처럼 설거지를 하면서 끝났을 때의 해방감만을 기대하면서 그릇을 씻지는 않는다. 하지만 북창을 통해 아파트 정원을 내려다보며 사계절의 변화를 찬찬히 감상하면서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봄에는 활짝 핀 목련화를 바라보면서 천상에 계실 어머니의 은혜를 기리고, 보라색 라일락의 향기를 맡으며 풋풋한 청춘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가을에는 노란색 단풍으로 물든 은행잎을 보고 지나온 내 인생을 반추하고, 앞으로 남은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나 자신에게 냉정하게 물어본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완전한 존재는 아니다. 불교와 기독교는 오욕칠정과 원죄 때문에 믿음과 수행을 해야 한다고 설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미약한 존재, 인간은 종교를 통해 영원히 행복해지기를 갈구한다.


설거지를 위한 설거지를 해야 한다고 중생을 가르친 틱낫한 스님은 2021년 12월에 열반하셨다. 이 스님은 어떤 연유로 설거지하는 법을 설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설거지는 수행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다. 아무튼 설거지는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설거지를 위한 설거지를 하면서 지금(now) 그리고 여기(here)에서 더욱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장자는 "행복은 새털보다 가볍다."라고 했으며, 미국의 전 대통령 링컨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라고 했다.


오늘도 설거지를 끝내고 어김없이 북창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봄꽃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앙상하던 가지에 푸른 생명의 잎사귀가 무성하다. 오월은 앵두의 달이고 장미가 만발하는 계절의 여왕이며 신록의 달이다.


오늘은 부처님이 오신 날. 부처님은 이미 오래전, "중생은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꿈꾸지 말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행복하다."라는 진리의 말씀을 하셨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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