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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Oct 11. 2024

편지


1) 친아빠께


    언젠가 혹시나 길 가다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땐 내 손에 짚이는 건 뭐든 들고 한 대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마주쳐도 서로 못 알아볼 수도 있겠네요.


    세월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저는 지금 그때 당신의 나이정도 됐습니다. 그렇다는 건 지금 이 나이에, 이 젊은 날에 우리 엄마는 사랑도 못 받고 당신에게 그런 모진 대우를 받으며 살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과거 이야기를 더 해서 뭐 할까요. 왜 그랬냐고 묻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 안타까운 사실은 이 모든 일들이 제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부정적인 기억을 더 오래 남겨두니까요. 그래서 평생 잊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개명할 때 필요한 서류를 떼느라 오랜만에 당신 이름을 보게 됐습니다. 그날 우리 엄마는 왜 자기 밑에는 아무도 없냐며 많이 속상해했습니다. 종이 쪼가리가 원망스럽긴 처음이었습니다. 저한테 당신은 그런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당신 기억 속에는 우리가 어떤 사람들로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부디 지금 옆에 있는 가족에겐 좋은 남편, 좋은 아빠로 살아가주세요.








2) 우리 아빠에게


    ‘엄마한테 잘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아빠의 말을 내가 지금 잘 지키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이 무뚝뚝한 딸내미는 여전히 엄마랑 자주 싸워. 미안한 게 더 많은 쪽이 미련이 남는다는데 나는 아빠한테 미안한 게 참 많은가 봐. 아빠 생각만 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 1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세 가족은 오랜 시간 동안 아빠, 남편이라는 자리가 없다시피 살았어서 사실 아빠의 빈자리가 엄청나게 크진 않지만 우리 엄마는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 수록 혼자라는 게 마음이 너무 아파. 즐거움도 슬픔도 소소한 것들을 나눌 사람이 옆에 없잖아. 그래서 왜 이렇게 아빠를 일찍 데려가셨을까 가끔은 많이 원망스럽기도 해. 함께 했던 짧은 시간 동안 우리 엄마 많이 사랑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아빠 딸은 함께하는 동안 너무 못난 모습만 많이 보인 것 같아서 미안해.



    아빠 딸 결혼했어. 좋은 사람 만나서 사랑 듬뿍 받으면서 잘 살고 있어. 결혼식날 유독 아빠 생각이 많이 나더라. 나도 아빠 손을 잡고 입장을 했다면, 엄마와 아빠가 나란히 앉아서 우리의 결혼식을 봐줬다면, 그날 찍힌 많은 사진들 속에 아빠도 있었다면, 이 모든 순간을 아빠도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릴 때 우리 엄마 옆 자리만 텅 비어있는 게 그날따라 많이 아쉬웠어. 참으려고 했는데 못 참고 내가 울어버려서 엄마도 나 따라 울었어. 근데 사위 안을 땐 바로 함박웃음 짓더라.


    내년엔 동생이 결혼해. 얘도 나 따라서 일찍 결혼하고 싶나 봐. 예쁜 아기도 빨리 갖고 싶대. 일찌감치 시집 장가가는 딸 아들 덕에 엄마는 사위도 며느리도 일찍 보고 식구가 늘어서 좋대. 그런 날이면 늘 아빠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만, 괜찮아 아빠. 우리 잘 지내고 있어. 아빠가 떠나던 날엔 그 슬픔이 영원할 것 같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못 잡았었는데 아빠가 늘 당부했던 그 말만 잘 들어도 되겠다 싶어. 앞으로 더 잘 살아볼게.


아빠,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3) 동생에게


    사랑하는 동생아 알아서 앞가림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참 감사하다. 너 대학 안 가고 취업 고등학교 간다고 했을 때 엄마도 나도 많이 속상했어. 누나가 장문의 문자 보냈던 거 기억하려나 모르겠네. 멀리 떨어져서 기숙사 생활 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일찍 돈 벌고 싶다는 것도 그렇고. 같이 붙어 지내면서 대학도 다니고 하면 좋겠는데 싶었지. 너의 진짜 속마음은 뭐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너까지 돈 걱정을 하는 것 같아서, 나처럼 너도 뭔가를 포기하고 돈 생각만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좋진 않았다. 그래도 마음먹은 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지금은 직장 생활도 잘하고 있고 그때 너의 선택에 책임을 잘 지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아.


    언젠가 네가 대학생활이 조금은 궁금하다고 했을 때, 나는 그래도 1년 반이었지만 대학생활이라는 걸 조금은 해봤고 너는 아예 겪어보질 못했잖아. 그런 아쉬움이 있다는 게 좀 안쓰럽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들더라. 그냥 평범한 집안에 남들 사는 대로만 살았다면 너나 나나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후회 같은 건 아니고 그냥 생각만.


    너 친구들 중에 누나 있는 애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지만 너의 누나는 워낙에 무뚝뚝해서 그 이상은 어렵다. 네가 포기하는 게 빠를 거야(ㅋ) 7살이나 어린 남동생한테 용돈 한번 제대로 줘 본 적이 없는데 무뚝뚝하기까지 하고 내가 생각해도 그다지 괜찮은 누나는 아닌 것 같아. 어릴 때 계속 투닥거리기만 하다가 너 고등학생 되고부터 계속 떨어져 지내면서 가끔 보고. 그러다 내가 서른이 넘어가고 너도 20대 중반이 됐을 때쯤 그나마 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듯 해. 내 생각은 그래. 너는 또 다를 수도 있겠지만.


    네가 결혼까지 한다는 게 새삼 웃기네. 네가 30대가 되고 내가 40대가 돼도 여전히 너는 나에게 일곱 살 어린 동생이니까. 그래도 이제 한 가정의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될 텐데 너를 마냥 어린애로 보는 시선을 나도 좀 고쳐야겠지. 똑같이 우리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딸, 아들인데 너랑 나랑은 성격이 완전 반대여서 ‘저거는 도대체 언제 철들려고 저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 나도 썩 철든 사람은 아닌데 말이야.


    같이 철들어 가자. 너까지 결혼하고 나면 아무래도 7년 차이의 간격이 많이 좁혀질 거라 생각해. 그리고 지금 하는 것처럼 앞으로도 내 동생은 잘할 거라고 믿어.


    파이팅!







4) 우리 엄마에게


    뭐 하나 잘난 게 없어서 나는 항상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야. 그래서 괜히 더 무뚝뚝해지고 퉁퉁 대고 그러는가 봐. 엄마가 이해해 줘 (ㅋㅋ)


    엄마. 가끔 나는 그런 상상을 해봤어. 내가 예전에 뭣도 모르고 친아빠랑 같이 산다고 했으면 나는 지금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 엄마가 혼자 우리 둘 키우다가 힘들어서 우리를 버렸다면 동생이랑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좀 무서운 생각이지? 그러다 또 옛날생각을 쭉 하다 보면 엄마는 참 대단했구나 싶어. 솔직히 엄마도 사람인데 아무리 자식 보고 산다고 해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엄마의 젊은 날을 우리한테 다 바쳐서 살아온 게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고 정말로 대단했던 거구나.


    늘 기도하는 엄마 만나서 참 감사해. 그 힘든 터널들을 지나오면서 매일같이 눈물로 무릎으로 기도했던 엄마의 수고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어. 감사해요. 나랑 동생 이렇게 키워줘서. 포기하지 않아서.




    이런 글을 괜히 썼나, 쓰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들었어. 쓸데없이 내가 기억력이 좋아서 잊고 있던 일들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거 아닌가, 엄마가 또 속상해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더라고. 나는 그냥. 이 기억들이 하도 내 머릿속에서 헤엄치고 있길래 어딘가 기록하고 싶었어. 쓰면서 엄마 생각도 더 많이 했고 지난날들이 감사했어. 그래서 글 쓰는 게 오히려 나한테 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


    어렸을 땐 우리 집이 그냥 남들처럼 딸바보라고 하는 멀쩡한 아빠도 있고 평범한 집안에 화목한 가정으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원망스러움이 있었어. 집엔 왜 자꾸 곰팡이가 피고 화장실은 왜 이렇게 허름할까 우리 집은 왜 자꾸 힘들지? 이런 생각. 근데 지금은 아니야. 그냥 평범하게 자랐다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생각들을 못 가졌겠지. 그리고 감사하지 못했을 거야 나는. 그래서 지금은 전혀 원망스럽지 않아. 걱정하지 마.



    엄마, 내가 너무 일찍 결혼해서 속상한 적은 없었어? 난 가끔 내가 너무 일찍 엄마 곁을 떠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엄마는 혼자니까 퇴근하고 집에 가면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혼자 저녁을 챙겨 먹고 티비 보고 있을 엄마 생각하면 마음이 영 편하지가 않아. 그래서 나는 나중에 엄마를 무조건 내 옆집에 둘 생각이야. (언제쯤 일지는 모르겠지만) 귀찮더라도 참아 대신 잔소리는 줄일게. 근데 또 엄마랑 싸우면 마음이 좀 달라지기도 하는데 암튼. 보통은 그래. 웃기지.


    엄마랑 딸은 평생 싸우면서 지낸다잖아. 앞으로 더 많이 싸우고 더 많이 행복하자 엄마. 나는 다정다감한 딸이 못 되지만 그건 동생이 하니까 나는 다른 걸 할게. 엄마 생각. 내가 아무리 무뚝뚝해도 동생보다는 엄마 생각 더 많이 한다. 그건 확실해. 그래서 그만큼 잔소리도 많이 하는 거고! 그니까 먹지 말라는 건 먹지 말고 밥 잘 챙겨드세요. 엄마는 아프면 안 돼. 그니까 쭉 건강만 하자. 엄마가 우릴 위해 그랬던 것처럼 엄마 딸도 항상 기도할게.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요.












<저는 그냥 이렇게 살았었습니다>

끝.





“제 인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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