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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Oct 08. 2024

아빠의 부재

    아빠의 발인일. 아침 일찍 장례 버스에 올라 타 화장터로 향했다. 맨 앞자리에 엄마랑 나란히 앉았다. 가는 내내 주변 지인들로부터 위로의 연락이 계속 왔었다. 도착할 때까지 버스 안에서는 적막이 흘렀고 그날 날씨는 눈이 부시게 화창했다. 화장터로 도착해 아빠의 관을 옮기는 도중 엄마는 아빠의 관을 부여잡고 ‘여보 나도 같이 가’ 하며 엉엉 울었다. 이곳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그렇게라도, 잠깐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것 같다.


    활활 타는 불구덩이 안으로 아빠의 관이 들어갔고 이제 정말 보내줘야 하는 순간임을 깨달았을 땐 주체가 안 될 정도로 눈물이 났다. 엄마는 이미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였다. 허망하다고 해야 할까 갑자기 어딘가에 크게 빈 구멍이 생겨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죽을 날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해도 내 가족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불에 태워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다는 것이. 참 허망하다는 말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빠의 납골함을 받았다. 화장터에 들렀다가 다시 버스에 탔을 때 내 품에 안겨진 것은 이 작디작은 납골함이 전부였다. 멍하니 그 납골함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우리는 또 적막이 흐르는 버스를 타고 납골당으로 향했다.


    아빠의 납골함을 관리자분께 건네어드린 후 지정 자리에 안치해 드리는 과정까지 가족들과 함께 지켜본다. 관리자분께서 고인을 대하는 태도와 유가족을 대하는 조심스러운 모습에서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마음이 더 슬퍼졌었다. 이제 이곳 납골당으로 와야 아빠를 만날 수 있구나. 처음 아빠의 사망소식부터 장례식, 납골당까지의 모든 시간들이 다 가짜 같고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슬퍼하는 것도 잠깐이고 우리는 또 살던 대로 살아가겠지. 그때는 이 슬픔이 끝이 없을 것 같은 그저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상주복을 갈아입고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 아빠의 짐을 정리했다. 채워 넣은 지 얼마나 됐을까 집에 와서도 역시나 믿기지 않는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아직 아빠의 온기가 남아있는 옷들과 칫솔, 숟가락, 신발 등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빠가 쓰던 물건들이 하루아침에 주인을 잃었고 이 집엔 또 세 가족의 짐만 덩그러니 남았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 참으면서 정리했었다.


    집에 있는 아빠의 짐을 정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땅에 아빠 이름으로 남아있는 모든 흔적들을 지워나갔다. 먼저 동사무소에 가서 사망신고를 한 후 신분증 말소, 신용카드, 휴대폰 등 아빠가 살아있을 때 같이 작동되었던 모든 것들을 하나씩 삭제했다. 엄마랑 같이 동사무소, 은행, 대리점을 모두 방문해서 아빠의 부재를 알렸다. 그리고 아빠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곳으로 갔다. 여기는 엄마가 나한테 꼭 같이 가자고 했었다. 티는 안 냈지만 왠지 조금 겁이 나는 듯 보였었다.




    회사로 도착해 사무실로 올라갔다. 장례식장에서 엄마가 멱살을 잡고 울며불며 매달렸던 그 아저씨가 있었다. 그 사무실 한쪽에는 큰 창이 있었는데 그 창 아래로 공장기계들이 보였고 오른편에 아빠가 일했던 곳. 사고가 났던 지점을 짚어주셨다. 그러고 나서 한 서류를 엄마에게 넘겨주셨는데 그 종이 말단에 적힌 금액 90,000,000원. 아, 이것 때문에 이 회사에 왔었던 거구나.


    그때 알았다. 근무자가 일터에서 근무 중에 사망한 경우 회사는 남은 유가족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그것을 유족급여라고 한다. 돈이 뭘까 싶었다. 엄마는 사무실에서 울었다. 아빠의 목숨값이구나 생각했을 땐 그냥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냥 엄마 한 번 그 아저씨 한 번 번갈아가면서 보는 게 전부였다.


    아빠에 대한 모든 일은 ‘자, 이제 이걸로 끝.’이라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누군들 이런 상황에서 의연할 수 있을까? 그때 어떻게 정리돼서 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후에 엄마는 몇 차례 손해사정사 아저씨를 만나 상담을 했었고 그때 아빠의 남동생도 몇 번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 그리고 아빠가 생전에 엄마한테 내 여동생이랑은 돈거래하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는데 왜 아빠가 그런 말을 했는지 우리는 아빠가 떠난 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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