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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Oct 05. 2024

아빠의 마지막 모습

    이틀 차 아빠의 입관일. 눈을 뜨자마자 내가 있는 곳이 장례식장이라는 게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더 확실하게 상기시켜 주는 듯했다. 엄마랑 아침 일찍부터 상주 자리에 멍하니 앉아서 아빠 얘기를 하다 부둥켜안고 엉엉 울기도 했다. 점심시간 이후 직계가족과 가까운 지인이 함께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난생처음 겪는 상황에 조금 무섭기도 했고 믿기지가 않았다. 너무나 평안한 얼굴로 누워있는 고인이 된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는 이 상황이 그냥 어안이 벙벙했다. 장의사분들이 말하길, 사고 당시 갈비뼈 부분 손상이 심해 복부 쪽은 붕대로 모두 감아 놓았다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심했으면 배가 저렇게 홀쭉해졌을까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까 생각만 할 수 있을 뿐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입관을 하기 전 고인의 주변을 돌며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다. 그 공간에흐르는 공기, 움직이는 사람들, 오가는 모든 말들이 낯설었고 꿈속에 있는 듯 눈앞이 뿌옇고 퍼런 느낌이었다. 고인의 몸을 깨끗이 닦고 정성스레 수의를 입히고 입관을 한다. 아빠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아빠가 다니던 공장 직원 분들이 장례식장에 왔다. 5~6명 오셨었나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중에 기억나는 한 사람이 있다. 직급이 제일 높은 분이었는데 엄마가 그분을 보자마자 울며불며 그분 옷깃을 양손으로 붙잡고 도대체 우리 남편한테 왜 그랬냐며 소리를 쳤었다. 그분은 그런 상황을 겪을 걸 알고 온 사람처럼 엄마의 울부짖음에 그저 묵묵부답으로 고개를 숙인 채 서있었다.


    나중에 엄마가 얘기하기를 아빠가 그 회사에 다닐 동안 그 아저씨가 계속해서 아빠를 조롱했다고 한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밥 먹기 전 기도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비웃고, 동남아 어디에서 왔냐며 외국말로 놀리듯이 말 걸고 비꼬고. 아빠는 그런 조롱을 꾹 참고 다녔었다. 살기 더러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그냥 막 들었다. 엄마가 뺨이라도 내려치지 않은 게 신기했다.




    그리고 어쩌면 아빠를 죽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그날 아빠와 함께 있던 동료분도 뒤늦게 혼자 오셨었다. 나는 그분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했다. 선뜻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오진 못하고 바깥쪽에서 우리를 만나길 기다리셨지만 엄마는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도, 그냥 영원히 서로 얼굴을 모르는 채 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곳에 오기까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고민을 하셨을까? 그분은 ‘죄송합니다.’ 한마디를 남기고 되돌아가셨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열흘 간 출근을 못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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