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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Oct 10. 2024

아빠가 떠나고 바뀐 것들

    지옥 같던 22살의 여름이 지나고 그 해 가을 우리 세 가족은 처음으로 반지하를 벗어나 바로 옆에 새로 들어온다던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우리 엄마 이름으로 첫 집이 생겼다. 이 집은 곰팡이도 없고 쥐도 안 나오고 콩벌레도 없고 지네도 없고 거미도 없고 바퀴벌레도 볼 일 없다. 대신 귀여운 강아지가 한 마리 생겼다. 이제 이사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고 여태 살았던 반지하 집에 비하면 이 집은 우리한테 궁궐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불현듯 믿기지는 않았지만 일상을 되찾고 하루하루 살다 보니 아빠 없는 빈자리가 크게 허전하다거나 낯설지는 않았다. 친부모와의 이별이라면 많이 달랐겠지만 오랜 기간 세 가족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그냥 ‘또 셋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나는 엄마 걱정이 제일 컸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스트레스가 배우자의 죽음이라는데 우리 엄마는 이겨내야 할 아픔이 참 많구나 싶었다. 그리고 우리는 왜 보통의 가정으로 살아갈 수 없는 걸까 하는 그런 생각들. 참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대학을 자퇴하고 계속 빵집에서 일을 했다. 돈들어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쌍욕도 고치고 안 나가던 교회도 다시 열심히 다녔다. 주말이면 무조건 마셨던 술은 입에 대기도 싫어졌고 심지어는 그렇게 같이 놀던 친구들마저 조금 불편해지기도 했다. 아빠가 생전에 나와 동생에게 누누이 했던 말 ‘엄마한테 잘해’. 그게 마음에 걸렸던 건지 이전처럼 똑같이 살면 안 될 것 같았다.




    한참 동안은 머릿속이 많이 복잡했다. 눈물은 많아지고 말 수는 점점 줄어갔다. 그때 나에게 있어서 많은 게 변했던 것 같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제일 먼저 군대에 있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고 미안하지만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했다.


    어른들이라면 원래도 불편하고 싫었지만 돈돈거리는 어른들은 특히나 더 싫어졌고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것도 예전만큼 즐겁지는 않았다. 갑자기 금주를 선언하고 집까지 일찍 들어가려 하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같이 잘 놀던 애가 확 변해버려서 친구들도 많이 낯설어했다. 서로 불편해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나는 분위기 못 맞춰 노는 친구가 된 것 같고 친구들은 내가 점점 달라져서 많이 서운해했었다.





    한 번은 넷이서 낮에 한강공원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맨날 어두침침한 밤에 술집에서만 보다가 화창한 대낮에 푸릇푸릇한 공원에서 바깥공기 맡으며 사진도 찍고 맛있는 것도 먹고 너무 기분이 좋았는데 갑자기 애들이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한두 병 사서 까기 시작했다. 한두 병이 세네 병 되고 그러다 점점 취기가 올라 시끄러워지고 대화도 안되고 그냥 난장판이 됐다.


    한강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이 우리뿐이었던 것도 아니고 아예 안 마시길 기대한 건 아니지만 여기서까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대낮에 취객 3명을 상대하려니 급 질리고 피곤해져서 해 지기 전에 혼자서 집으로 돌아왔다.


    매정해 보이지만 서운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전에 한참 친구들이 술 안 먹는 내가 미웠는지 만나기만 하면 억지로 먹이려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서로 감정도 상하고 어색해져서 점점 얘네들을 만나는 거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나 이제 너네랑 안 놀아. 한 것도 아니고 셋이서 나 하나 이해 못 해주나 싶어 좀 많이 속상했다. 이제는 어두컴컴한 술집만 가지 말고 카페도 좀 가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맨 정신에 수다 떨고 그렇게 놀고 싶은데 만나면 맨날 술집만 가고 취하고 억지로 먹이려 하고 다투고.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얘네를 만나는 시간도, 놀 때 쓰는 돈도 아까워지고 사소한 트러블이 잦아졌었다.


    그럴수록 교회를 더 열심히 다녔다. 만나봤자 또 술집만 가고 억지로 먹이려 할게 뻔해서 일부러 교회 핑계 대고 안 만나기도 했다. 니가 무슨 전도사냐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꿋꿋이 고집을 부렸다. 그때는 친구들이 그저 괘씸하고 미웠다. 내 이기적인 행동은 생각도 안 하고 친구들을 마냥 한심하게 여기면서 교회만 열심히 다녔다.









    이듬해 4월 봄, 그 교회에서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내가 일하는 빵집에 자꾸 놀러 오고 같이 예배드리자 그러고 퇴근시간 맞춰서 같이 밥 먹자 그러고 매일 집에 데려다주고. 그때 나는 다른 사람한테 마음이 있었는데도 그냥 막 계속 연락이 왔었다. 직진남이었다. 다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마침 감사하게도 이 사람 덕에 금방 마음 붙이고 잘 다닐 수 있었다. 처음엔 그냥 고마운 마음밖에 없었다. 왜냐면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고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으니까.


    근데, 사람은 보통 내 이상형이랑은 반대인 사람을 만난다는 말이 맞았다. 나는 그 사람과 교제를 시작했고 그로부터 2년 뒤 2016년 4월 16일. 25살, 26살의 나이에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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