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2024년.

새해를 맞이하기 전 주저리 적어본 이야기들.

by 이봄

12월 이맘때쯤 누구나 하는 생각. ‘나 올해 뭐 했지?’

그렇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역시나 뭘 했는지 모르겠는 한 해를 보냈고

여름이 많이 길어져서 그런지

이번 연말은 정말 성. 큼.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특히나

나에게 2024년 올해는 좀 쉽지 않았다.

5월부터 시작된 심각한 피부 염증으로

아직까지도 회복 중에 있다.

참 지긋지긋도 하다.


이 지겨운 피부 염증 원인이 고작 면역력 저하라니.

지루성피부염, 아토피, 습진, 모낭염 등

온갖 염증으로 뒤덮인 내 피부상태에 비해

참 하찮은 이유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궁지로 몰고 간 거면서. 참 교만도 하다.




배 안 고프면 아예 안 먹거나 밥보다 빵으로 때우고

하루 커피 2잔은 기본에 식후 군것질, 배달음식,

야식까지 챙겨 먹고 새벽 2~3시에 취침,

새벽 6시에 기상.

한 여름에 30도를 웃도는 폭염에도 운동한답시고

퇴근하고 40분가량 집으로 뛰어가기를

일주일에 3~4일씩.

이미 몇 년 간 누적되어 왔던

온갖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들 위에

똥칠을 계속해왔던 것이다.


이런 최악의 생활패턴으로 몇 년을 살았고

그 사이 면역력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감기 한번 잘 안 걸려서 무조건 건강할 줄 알았다.

그래. 내가 건강을 자만했지.


약해진 피부로 가장 먼저 표시가 났다.

너 지금 건강 상태 최악이라고.

얼굴피부뿐만 아니라 목, 팔, 어깨, 다리까지도

피부가 벗겨지고 붉어지고 가려웠다.


그전부터 달에 한 번씩은 꼭 심하게 얹혀서

그냥 선천적으로 위장이 많이 약한 줄로만 알았고

내 엉망인 생활 습관들이

면역력까지 떨어뜨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다.

한 번은 좀 심하게 체한 날 허리까지 통증이 와서

새벽에 응급실까지 다녀와놓고 말이다.



올여름은 정말 많이 더웠고 길었다.

퇴근하면 집에서 요양하다시피 생활을 했다.

바깥 더위까지는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으니

집에 있을 땐 무조건 시원하게.

추워서 벌벌 떨지언정 에어컨을 있는 힘껏

빵빵하게 가동시켰고 선풍기까지 달고 살았다.

염증을 빨리 가라앉히려면 그렇게 해야 했다.


외출할 때 양산, 손선풍기는 필수품이 됐고

일반 로션, 선크림은 당연히 못 바른다.

세수라도 할 때면 정상적인 내 피부결은

온데간데없이 자갈밭을 문대는 느낌이었다.


냉팩을 하고 저녁을 먹고 한약을 먹고

드라마나 영화, 유튜브를 보고 글을 쓰고

그럴 땐 잊고 있다가

자기 전 거울이나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

기분이 저 바닥까지 쿵 가라앉아서

눈물이 터지는 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나는 이 상태 이대로 영원히 멈춰버릴 것 같았다.




모두가 나처럼 되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굴 만나는 거 이전에

그 누구도 보기가 싫었고

그 누구도 날 안 봤으면 싶었다.

현관문 밖을 나가는 거 그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슥 지나치던 행인들도

나를 한번 더 또렷하게 쳐다봤고

가끔 몇몇 어린아이들이나 노인들은

대놓고 뚫어져라 쳐다봤었다.

그래 18. 봐라 썅. 열심히 보고 확 옮아라.



스트레스 조절이 제일 중요하다는데

이런 상황들을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먹지 말라는 것도 많고 하지 말라는 것도 많고

피부과, 한의원 다니면서 한약이여 뭐며

돈까지 많이 들어서 짜증 나 죽겠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그냥 매일 화만 치밀어 올랐다.





양 팔에 점점 붉게 번져가는 아토피
1. 모자를 쓰나 안 쓰나.. / 2. 알아서 터지는 염증들과 각질들



온갖 염증이 드글드글하던. 제일 심했던 때 피부상태.


목까지 번진 붉은기


붉은기만 점차 줄어들고 염증+각질들만 남던 때 피부상태.




간지러운 건 물론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있었다.

입을 벌리면 더 아팠고

가끔 심하게 곪은 염증은 알아서 터져 줄줄 흘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흉측했다.

피부 속 염증이 심해서 얼굴도 매일 퉁퉁 부어있고

거기다가 붉은 기, 부어오른 염증, 노랗게 곪은 염증,

얼굴 전체를 덮은 것도 모질라 목까지 내려온 각질,

터진 흉터까지.


아픈 건 겉으로 티 안 나니까 괜찮은데

보기가 흉했다.

진짜로 너무 흉했다.


딱 봐도 어디 심하게 아픈 사람 얼굴이었다.

매일 좌절했고 확 사라져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루에도 수백 번 무너지는 마음은

어디 티도 못 내고 똑같이 출근하고 퇴근하고

그렇게 살았다.




어느 날은 너무 괴로워서,

몇 날 며칠 고민만 하고 있다가

인스타에 기도요청을 올렸다.

이런 피부 상태를 알린다는 건 너무 싫었지만

그날은 괴로운 마음이 더 컸다.

병원에 입원할 만큼 큰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이런 걸로 기도해 달라고 해도 될까 싶기도 했지만.


걱정과 고민이 무색하게 올리자마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해줬다.

‘꼭 기도하겠다’ 이 한마디가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그 외에도 병원 추천, 무슨 약을 먹는지,

어떻게 관리하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

후에도 계속해서 근황을 물어봐주는 사람들 등

정말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셨다.

심지어는 선물까지. 주셨다. 이럴 줄 몰랐다.

난 그저 기도 한마디만 해주면 됐다는 마음으로 올린 글이었는데.




(박스채 못 찍은 선물도 있다 ㅠ 아쉬워라,,)

비타민 많이 먹고 면역력 좋아지라고 보내주신 귤 한박스



피부에 좋다며 보내주신 아보카도 두 박스


매일 챙겨먹으라며 보내주신 비타민


과일먹고 비타민 충전하라며 보내주신 망고 한박스


비타민 충전하고 면역력 좋아지라며 보내주신 키위 한박스






분노와 원망으로 그득그득했던

미천한 나에게 이런 선물을.

감사한 건 당연한 거고

부끄러운 마음이 정말 너무 많이 들었다.


2024년 하반기를 전부

피부 스트레스로 보내고 있던 나는

내 안에서 피어나는 나 혼자만의 괴로움을 떠나

한 명만 걸려라 하는 공격적인 태도로

사람들에게 거의 저주를 퍼붓다시피 하며 살았다.



누구나 그럴 거라고

절대 긍정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리화하면서

나 정도는 양반이라고

그 와중에도 교만을 떨면서 말이다.


그렇게 살던 그때 사람들의 응원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뉘우치고 반성하게 했다.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에게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게 했고

먼저 주는 마음, 베푸는 마음을 생각하게 했다.


다른 건 다 잊어도 이런 건 절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좋겠다가 아니라 절대 잊지 말아야지.

잊으면 천하의 호로자ㅅ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또 잊고 살겠지만

이렇게 글로 박제해 놨으니 자주 들여다보고

기억하고 또 잊고 또 기억하고.

그렇게 반복하면서 살아야겠다.

보답하면서 살아야겠다.



어느 날 한의원 가는 버스 안에서 한참 심한 상태일 때

기록해 놨던 피부 사진을 찾아봤다.

눈에 띄게 나아졌구나. 좀만 더 참자.

요즘도 문득문득 짜증이 올라오지만

그때만큼의 분노는 없어졌으니 잘 참아보자.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채

2025년을 맞이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염증과의 사투가 6개월을 훌쩍 넘길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2024년은 가지 말라도 갈 것이지만

올해는 왠지 이렇게 마무리 짓고 싶었다.

정말 화났고 많이 울었고 감사했다고.

그리고 미안하지만 사실.

가지 말라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 너무 힘들었거든? 내 염증이랑 같이 빨리 꺼ㅈ..

(훌쩍)





모두 연말 마무리 잘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새해를 맞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미리 HAPPY NEW YEAR !








번외. 더 줄줄이 쓴 그간 피부와의 전쟁들 기록.




피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하도 많이 생각하고 많이 물어보고 많이 말해서

나부터도 지겨운데

이것 또한 나에게 있어서 어떤 하나의 이슈였으니

기록이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글로 정리해볼까 한다.

1년을 마무리하는 기념으로다가.






주변에서 피부과 어디 다니냐 물어볼 정도로 나는

피부에 있어서는 고민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다.

물론 피부과는 단 한 번도 다닌 적 없고

근처도 가본 적 없다.

아무 화장품을 써도 피부가 뒤집어진다거나

화장이 잘 안 먹는다거나 등 그런 것도 없었다.

안 맞는 화장품 따위 없었다.

정말 가끔. 먼지가 풀풀 날리도록 집을 치운 날,

옷 정리를 했을 때.

그때 작은 거 하나씩 올라오는 정도였다.


마스크 생활 이전. 피부 멀~~~쩡하던 때.







때는 2020년 29살. 코로나19가 발발하던 시기.

전 국민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던 때

나 역시도 마스크를 피부처럼 달고 다녔다.


그런데 이게 나만 그런 건지.

마스크만 하면 얼굴에 작은 벌레들이 우글우글

기어 다니는 것처럼 온통 가렵고 따갑고 불편했다.

숨 쉬기 힘든 건 둘째치고 정. 말. 너무 불편했다.

다들 이렇게 불편한 건가?

그렇게 아무리 써도 익숙해지지 않는 마스크 속에서

내 피부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2020년 코로나 중순쯤이었을까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고 몇 개월 뒤,

여드름 하나 잘 안 나던 얼굴이 갑자기

붉은 염증들로 뒤덮여버렸다.

볼, 턱, 이마 빈틈없이 순식간에

얼굴 전체에 고루 퍼졌다.



얼굴 전체, 목까지 번진 첫 염증


왕 다래끼도 났었음. 그 와중에 쌍커풀 버티고 있는 거 웃기고 어이없음 ;




처음으로 피부과를 갔다.

물어물어 안산에 유명하다는 피부과에 가서

진정레이저 치료를 받고

그 피부과에서 만든 바르는 약을 처방받았다.

며칠 발랐더니 그땐 신기하게 훅 가라앉았다.



그 뒤로도 마스크 생활은 이어졌다.

코로나19가 오랜 기간 들쑤시고 다녔으니

어느새 마스크도 뗄 수 없는

생활필수품이 되어버렸다.



내 피부는 많이 얇았고 약했고 외부 자극에 예민했다.

그전엔 그걸 몰랐던 것이다. 알 턱이 없었지.

하루종일 마스크를 착용하고 살기를 몇 년.

자극을 제일 많이 받는 눈 밑 광대 쪽과 턱, 볼 등

입 주변으로 한 두 개씩 뭔가가 나기 시작했고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간지럽고 붉은 건 매일같이 있었다.


처음 갔던 피부과를 또 찾아갔다.

그 피부과에서 만든 바르는 약을 다시 받고 싶어서.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그 약만 바르면

마법처럼 바로 없어질 줄 알았는데

웬걸 말을 듣질 않았다.

피부도 이제 점점 회복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마스크 자극에 유독 약한 사람이구나.

그땐 그냥 이 정도로만 생각했다.

면 마스크, 마스크 가드,

그나마 통풍이 잘 된다는 마스크,

먼지 덜 날리는 마스크….

이것저것 안 써 본 마스크가 없다.


마스크 생활이 시작되고

이전의 피부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예전처럼 피부 좋다는 소리는 들어보질 못했다.


입 주변으로는 트러블이 늘 올라와있었다.

다들 그러고 다녔듯이 화장을 하고도 마스크를 썼고.

심한 염증엔 주사를 맞고 항생제를 먹고

또 염증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코로나 기간 동안 거의 2년 가까이 그렇게 살았다.


그런 와중에 생활패턴도 같이 무너졌던 것이다.

2020년 코로나와 함께 남편과 같이

카페 일을 시작했었다.

카페에 있는 동안에는 밥시간이 애매해서

늘 부실하게 때웠고

퇴근하고는 정신적 신체적 노동의 보상이라며

매일 야식을 시켜 먹고 바로 잠들기를 반복했다.

거의 2년 가까이.


그때 정말 정신적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했다.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장사에 대한 것과 별개로 다른 데서 오는

많은 스트레스들이 한 번에 몰아쳐

우리 관계에도 위기가 몇 번 찾아왔었다.


카페로 출근하는 게

누가 머리채라도 잡고 끌고 가는 듯 억지로 했었고

밤에 잠들기 전

이대로 조용히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두려웠다.

그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숨이 막혔고

텅 빈 카페에서 울고 소리 지르는 날이 자주 있었다.


그때 스트레스는 정말 오랜 기간 우리 둘을 괴롭혔다.



스트레스, 잠, 식사.

이 세 가지가 전부 무너진 시기였다.

그리고 그 세 가지가

면역력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카페를 정리하고 피시방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여전히 피부는 예전 같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 사이 코로나가 잦아들어 마스크가 해제됐고

이제 그때 피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새벽 2~3시에 잠들고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출근했다.

이때 식습관이 정점을 찍었다.

카페 일 할 때 보다 더 엉망이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피부 염증으로 고생하면서 겸사겸사

지연성 알레르기 검사까지 받아봤더니

나는 달걀이랑은 아예 안 맞는 사람이었다.

노른자 흰자 둘 다.




고양이, 개 알레르기는 좀 충격.







그 사실을 알기 전에 나는 피시방에서 일하는 내내

삶은 달걀 3~4개랑

한참 치즈볼에 꽂혀 2~3개씩 매일 튀겨 먹었다.


삶은 달걀과 치즈볼.

몇 달 동안 나의 점심이었다.

아프고 싶어 환장을 했다.


거기다가 일주일에 3~4번 집에 뛰어갔다.

온몸이 젖도록 땀을 냈고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열을 냈다.





그러고 올해 5월 초.

턱에 큰 염증이 올라와서

늘 하던 대로 염증주사를 맞았다.

그 염증을 시작으로 온 얼굴에 서서히 퍼졌고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피부 상태로 살게 된 것이다.


저 아래에 잠식해 있던 스트레스 구덩이에

엉망인 생활패턴으로 기름을 부어버렸다.





내 몸 스스로 챙기지도 않고

모든 걸 자만하며 살던 지난 시간들에 대해

벌을 받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근데 왜 하필 얼굴이냐며.

그런 와중에도 불평불만은 여전했다.

사람 쉽게 안 고쳐진다.


그나마 얼굴인 게 얼마나 다행인 것인지,

큰 수술을 받아야 되는 것도 아니고

몇 달 입원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멀쩡히 보고 듣고 말하고 걷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때는 그저 거울만 보면 쌍욕밖에 안 나왔다.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고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볼 수도 없었지만.

’니들이 뭘 알아‘하는 심보로 살았다.



이젠 좀 고쳐먹으려고 글을 썼다.

큰 병은 아니지만

오바 좀 보태서 어쩌면 이번에 겪었던 일 또한

내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다. 라는 의미로

기록해놓고 싶었다.


그리고 진짜로

얼굴 피부만 그랬던 게 정말 감사한 일이다.













먼 과거가 될 날들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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