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미쳐야 해.
8층 그녀들의 점점 더 심해지는 행위는 자주 폭발시켰다. 물론, 집에서.
호기심 많은 아이를 키우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엄마인 나는 아이를 말리지 않는 진상 엄마로 눈칫밥을 먹게 했다.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게 없었다. 아이를 많이 낳고 싶었던 마음은 쏙 들어갔다. 어쩌면 아이를 낳고 조금씩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가, 이사 오자마자 801호 그녀의 간섭이 시작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802호까지 함께 쏘아보는 시선이 나를 더욱 예민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의 여유라는 게 이토록이나 그리운 건지 결혼 전에는 당연히 알 리가 있나. 날카로워진 신경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아이는 그런 엄마 마음을 알 리가 없는 것도 당연했다.
“이게.. 뭐야?!”
“엄마! 제가 시원하게 해 주려고 열었어요!!”
“대환장.”
“네?”
“엄마 지금 샤우팅 할 거야. 1, 2...”
“으악~~~!!!”
한여름이었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잡는 동안 아이는 꼬물꼬물 스스로 신발을 신었다. 자신보다 훨씬 무거운 현관문을 온몸으로 밀어 가며 열고 나왔다. 기특했지. 그러나 외출하고 돌아오면 시원할 거라고 냉동고까지 열고 나왔다. 아끼는 장난감도 시원하라고 친절히 문에 받쳐두고. 결국 과부하에 냉동 식재료는 녹아내렸다. 하나하나 내 몫이 되었다. 나야말로 온몸이 과부하에 걸렸다. 진심으로 쉬고 싶었다. 내 키보다 큰 냉동고 안의 녹아내린 음식물들을 고분고분 친절히 버려야 했다. 내 몸은 쉬어 터진 듯 고약함을 풍기고 아이는 식탁 밑으로 눈 가리고 숨었다. 너도 안 보이고 앞도 안 보이고 답도 안 보이고, 나는 아주 뵈는 게 없었다. 결국, 냉동고는 AS 기사님을 불러야만 했다.
가을엔 태권도복을 벗은 채 팔을 빙글빙글 돌려댔다.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냄비에 빠트렸다. 먹지도 못하고 버려야만 했다. 내 마음도 부글부글 끓어 넘쳤다. 하얀 도복은 부분 부분 붉게 물든 게 낙엽이 올려진 것 같았다. 가을이 지나 냉랭한 나 자신의 겨울이 먼저 다가왔다. 졸지에 벗다 만 아이의 몸뚱이는 추워서 웅크린 듯 덜덜 떨었다. 아이의 체력은 날이 갈수록 강해졌다. 나는 하지 말라는 소리만 내질렀다. 금세 체력이 빠졌다. 소파에 눕는 건 일상이 되었다. 비상구인 화장실만을 찾는 건 명줄을 더 줄이는 것과 같았다. 이유는, 담배 냄새와 듣기 싫은 비속어로 인해 환풍기만을 켜 놓은 채로 문을 닫아야만 했으니까.
쫄쫄쫄 물소리가 좋다며 잠그지 않고 나왔다. 언제부터 물이 흘렀는지도 모르는 환장의 파티를 감당해야 했다. 물은 흐르고 나는 이미 우르르 쾅쾅, 요란하게 천둥 번개 치며 쏟아지는 장대비다. 아이는 엄마의 천둥 번개를 직관하며 절절절 눈물이 흘렀다. 너도 울고 나도 울고, 오죽하면 애 셋이나 낳은 친언니는 조카 한 명보다 자신의 아이 셋이 훨씬 편하다고 전했다. 수시로 달래고 어르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은 다반사, 그러나 나도 사람이다.
“물 낭비라고 했잖아~! 왜 그렇게 말을 안 들어! 엄마가 하지 말랬지!!”
“으악!!!%$##$%#”
“뭐?! 야!!!!!!”
잊을만하면 아이 입에서 나오는 비속어가, 밤마다 들리는 801호 그의 목소리를 연상케 하며 나는 더욱 날이 섰다.
‘애 울리지 말고 설득하고 설명하라고? 당신들은 그게 잘 돼서 어른들이 밤마다 싸우냐?!’
분노가 가득한 채로 소리만 질러댔다. 성장할 게 따로 있지, 악을 키우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이는 신생아 때부터 열의 오르내림이 빈번하고 항생제를 달고 살았다. 소변 관이 막혀 시술대에 오르기도 했다. 아무리 살기 좋은 도시라 해도 오래된 아파트는 외풍이 심했다. 아이는 늘 감기를 달고 살았다.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중이염과 비염을 번갈아 병원을 끊임없이 다녔다. 열이 한 번 오르면 40도는 기본에 일주일이 지나야 열이 내렸다. 처음 맡아보는 엄마라는 역할, 내 아이만큼은 엄마 자리를 확실하게 보장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싶었다.
11월, 아이는 그날도 땀에 흠뻑 젖으며 열과 싸웠다. 나는 밤새 아이를 간호하며 뒤늦게 잠이 들었다. 새벽 여섯 시가 넘어 망치질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침대를 벗어나려다 떨어졌다. 아이도 울고, 나는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가 터지며 울부짖었다.
“으악!!! 대체 지금 몇 시야!!! 악!!!”
이성을 잃고 질러댔다. 아이의 표정은 잔뜩 겁에 질려 더욱 울어댔다. 잠이 부족해 신경은 뾰족하게 갈아낸 듯 날카로웠다. 아이를 끌어안은 채 옷만 껴입히고 집을 나섰다.
‘미쳤어. 이른 시간에 망치질? 시간 개념도 배려도 없어. 이러고 대낮에 시끄럽다고 나를 욕해?’
온몸의 신경 세포가 폭죽 터지듯 다 터져버렸다. 내가 과하게 예민했던 걸까?
막상 운전대를 잡았어도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조수석을 뒤로 젖힌 채 아이를 눕혔다. 날짜를 보니 동네 5일 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잘 됐다 아들, 시장 가서 라면에 김밥 먹고 병원 가자.”
“네 엄마~!”
“아까는 엄마가 아들한테 화낸 거 아니야. 알지?”
“알아요~”
나는 아직 마음에 살기가 가득한데, 아이는 금세 해맑아졌다. 아이는 엄마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랐다. 아이에게 내 겉옷을 걸쳐주며 나는 차가운 현실을 받아들였다.
여덟 시 오 분, 평소 같았으면 병원도 대기 번호 20번이 훌쩍 넘어간다. 그러나 어쩐 일인가.
“저희가 첫 번짼가요?!”
“네 맞아요~”
사방에서 눈물 찔끔, 콧물 훌쩍해야 할 아이들이 전부 사라졌다. 불친절하기로 유명했던 데스크 직원은 부담스럽게 친절해졌다.
“혹시, 2과 원장님 다른 병원으로 옮기셨을까요?”
데스크 직원은 입을 다물어도 눈이 활짝 웃고 있으니, 긴말은 필요가 없었다. 이사를 하기 전이나 후나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롭고 기이한 현상이었다. 살면서 나만 예민하고 나만 부지런한 줄 알았는데, 금세 소식을 듣고 엄마들은 모두 원장님 따라 병원을 옮겼다. 대중교통으로 20분이 넘게 걸리는데도 말이다.
며칠 후, 내가 질러댄 덕일까? 그날 이후 위층도 아래층도 잠시 조용해졌다.
‘그래, 미친 연놈들 상대하려면 결국 나도 미쳐야 했어.’
똑같은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악문 이는 얼굴 근육을 화나게 했다. 감정을 토해낼 공간을 더욱 자주 찾았다. 마음이 차분해지기를 수없이 다그쳤다. 그러나 이미 흑화 된 나는 아픈 것도 무뎌진 듯했다. 악플러들이 무책임하게 던진 돌을 빵빵 걷어차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내려놓기엔 처음으로 가져본 욕심은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관대하게 품어주는 독자들에겐 애써 괜찮은 척, 멀쩡한 척, 정상인 척 웃어야 하는 나의 소통은 점점 더 고통이 되어갔다.
‘내 진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 처음 써보는 소설입니다. 허술한 점이 있더라도 많은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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