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2호 정훈 엄마

네가 대체 뭔데요..

by 민시

새벽 여섯 시가 넘어 망치질 소리에 질러댄 나를, 801호 그녀는 그새 정훈 엄마에게 알린 듯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802호 정훈 엄마의 얼굴을 마주했다.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송곳니를 자랑하듯 윗입술을 끌어올렸다. 나를 더 혐오스럽게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일 없는 척 돌아섰다. 얼굴의 근육들이 고장이라도 났는지, 의도와는 다르게 잠시 경련이 일었다. 이 모멸감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나는 왜 그토록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소리를 내질렀을까.


하늘이 내게 벌을 주는 것만 같은 느낌, 한동안 802호 정훈 엄마와 동선이 자주 일치했다. 지하 주차장이면 지하 주차장, 아이 학원이면 학원, 마트면 마트까지. 그녀의 파란 렌즈는 여전히 차갑게 느껴졌다. 단백질 없는 푸석푸석한 긴 머리에 하얀 롱패딩은, 내 눈엔 그저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올법한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이나 구미호 정도로 보였다.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왜 자꾸 마주치게 하는지, 보이지 않는 신의 손이 내 옷깃을 잡고 인형 놀이 하듯 그녀와 나를 장난으로 붙여놓는 것만 같았다.


며칠 후, 아이와 마트로 향했다. 마침 카트를 줄지어 길게 모아 들어가는 직원 뒤로 제자리걸음이 되었다. 802호 정훈 엄마가 보였다. 불리한 상황에 놓였는지, 연신 죄송하다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물론 아이의 화장실이 급했기에 그녀를 못 본 척 지나쳤다. 에스컬레이터 앞 화장실로 향했다. 아이를 보내고 잠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카트를 끌고 여전히 통화를 하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때였다. 무슨 이유였는지 고객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며 큰 소리가 오갔다. 내 시야에 보이는 모두의 시선이 그 고객들에게 몰렸다. 802호 정훈 엄마도 그들에게 한눈팔다 잠시 휘청거렸다. 얼떨결에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상황이 되었다.


급하게 떨어진 핸드폰을 줍는 게 보였다. 그러나 미처 구하지 못해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녀의 어그 슬리퍼 한 짝, 잠시 카트와 슬리퍼를 두고 책임감으로 갈등하는 듯했다. 점점 멀어져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두고 애처로워 보였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그녀의 낡은 어그 슬리퍼 한 짝을 들고 에스컬레이터에 따라 타야 할까, 그냥 덩그러니 놓아줄까를 잠시 고민했다. 평소 호의적이지 않은 그녀를 위해 당장 뛰어가 도와줄 의무는 내게 없었다. 더구나 뒤처리가 걱정인 아들이 들어간 화장실 앞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마당에. 더 솔직히 말하면, 당장이라도 뛰어가 슬리퍼를 빵! 차버릴 걸 아쉬울 뿐이다. 물론, 상상만 자유롭지. 만약 진짜 차버렸다면, 그 파란 눈이 진짜 독기를 품고 빵, 빵, 빵, 빵! 현실판 괴담을 보는 듯 단숨에 코앞까지 다가올 테고, 내 심장은 자진해서 꺼내줘야 할 게 뻔하다.


눈만 마주쳐도 쏘아보는 그녀, 엮이는 순간 다른 엄마들처럼 언제든 꺾이고 찢어지고 너덜너덜해질 종이 인형처럼, 나는 분명 기도 못 펴고 경직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부부의 기운은 돌아보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치, 우리 지금 왔으니까 인사해라 싶었다. 꼭 수컷들이나 암컷에게 과시하듯 보이는 행위 같달까? 잔뜩 긴장한 채 미동도 할 수 없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듯한 시선은, 고개를 돌려 외면하며 벽을 보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나도 이제 인사 안 해.’


며칠이 지나고 아이 간식을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한창 소란스럽더니 곧장 따가워진 엄마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802호 정훈 엄마가 동네 엄마들과 모여 대낮부터 컵라면에 캔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모두 정훈 엄마의 눈치를 보며 쩔쩔매는 듯한 모습들, 이유가 뭘까? 그 와중에 영희 언니가 아는 체하여 시선을 돌렸다. 한동안 마주하지 않았는데, 어쩐 일로 어설프게 친한 척을 해왔다. 영희 언니의 좌우가 확실한 눈동자 운동은 802호 정훈 엄마와 나 사이를 몇 번이고 돌았다. 정훈 엄마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영희 언니에게만 인사하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하루나 아이가 미술 학원에 관심을 보였다. 취미반으로 보내게 되었다. 하필, 또 하필, 802호 정훈이가 다니는 태권도 학원의 건물이다. 수업을 마치는 시간도 똑같았다. 그녀가 주차하고 내린 모습에 오늘도 마주치겠거니, 깊은 한숨부터 내뱉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괜히 못나도록 입술만 삐쭉 오므렸다. 정말 반갑지 않은 그녀, 아이가 나올 시간이 되어 결국 차에서 내려 학원으로 향했다. 정훈 엄마는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위에서 쏘아보는 것만으로 무게감이 느껴지며 그대로 콘크리트에 박힐 것만 같았다. 아니, 콘크리트에 처박히고도 모자라 나 보기가 역겨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즈려밟고 지나갈 것 같았다.

‘그래, 날 밟고 가라! 눈 안 아픈가? 차라리 말을 걸어 보던가. 대체 나이가 몇 갠데 쏘아보니?’


집으로 돌아와 안방 화장실로 향했다. 씻고 나가려다 거울 앞에서 그녀와 똑같이 쏘아봤다. 내 눈만 아파 비상등 켜지듯 깜빡깜빡, 누군가를 갈구는 행위도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고개는 절레절레, 의도치 않게 눈물 한 방울 떨궜다. 배울 게 따로 있지, 이 지질함은 또 무슨 심리일까. 피로해진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 뒤돌아 나오려다 퍽, 털썩, 아주 굴욕적인 순간이 됐다. 역시 사람은 머리가 제일 무거운 법을 증명했다. 집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아들은 거실 화장실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씻고 있으니, 나의 넘어진 모습을 보지 못함에 어찌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처음엔 그녀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혹은 착용한 파란 렌즈가 불편해서 그런 눈빛을 보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801호 그녀와 붙어 다닐수록, 정훈 엄마의 쏘아보는 듯한 행위는 점점 더 심해졌다. 영희 언니가 첫 만남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자전운동을 하듯 내 머리를 계속 맴돌고 있었다. 여기 엄마들 전부 802호 정훈 엄마에게 기듯이 쩔쩔맨다고, 그 부부는 그런 기운을 갖고 있다고. 그러나 융통성이 제로인 나는 그녀에게 그런 모습을 안 보여서일까? 그래서 쏘아보는 걸까?

‘당신, 진짜.. 뭐라도 되세요?’














* 처음 써보는 소설입니다. 허술한 점이 있더라도 많은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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