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 언니 그리고 가벼운 입

말, 말, 말.

by 민시

2026년, 초기 입주민들 사이에서 802호 부부의 존재감은 여전했다. 이웃들은 그들의 손바닥 위에 놓여있었다. 그들이 이끄는 작은 송년회가 열린 밤이었다. 자신들이 계획하고 이웃들에게 이벤트 선물까지 사비로 구매해 오도록 했다. 말랑한 이웃들에겐 값비싼 양주를 사 오라고 농담을 가장한 압박을 했다. 준비하라면 하라는 대로 말을 듣는 이웃은 솜사탕, 순수 그 자체였다. 말 한마디에 달콤하고 말 한마디에 형태도 알아볼 수 없게 폭삭 무너지는. 802호는 모두에게 나눠줄 선물세트를 준비했다고 어깨를 으쓱, 하하 호호 웃으며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러나, 양주와 김 세트의 괴리는 너무했다.


이득을 위한 선물을 빠르게 파악한 802호 정훈 엄마, 이미 가져갈 이웃이 정해져 있는 선물, 영희 언니는 자신도 알고 있었다는 듯 체념하며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쉽사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용기도 없었다. 802호 부부는 만만한 이웃을 골라 어찌나 무안을 주는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뿐이었다.


대학도 안 나왔다는 802호 그는 무슨 자신감일까, 명문대를 나온 이웃을 비웃으며 병신이라는 별명을 불렀다. 다 같이 여행 가자는 제안에 망설이는 이웃이 있다면 돈이 없다고 무시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 무리와 엮이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내 촉은 돗자리라도 깔아야 하겠다. 그들은 매 순간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목청까지 좋으니, 결국 관계는 모두 기세인 걸까? 누구 하나 목소리 내어 나설 용기들이 없었다. 할 말을 삼키고 술도 삼켜댔다. 아파트 단지 내에 속을 게워 내는 일은 시키지 않아도 잘했다. 곱게 마시고 곱게 찾아 들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새벽부터 술에 취한 이웃을 태워다 준 경찰차도 있었다. 감사는커녕 진상인 줄 모르는 이웃은 불쾌하다고 아파트 단지 안을 쩌렁쩌렁 욕설로 아침을 알렸다. 아침부터 아파트 민원 신고로 방송이 흘러나왔다. 단지 내에 게워둔 새해 선물은 새들에게 떠밀고 나 몰라라 하는 현실, 계단에 흩뿌려진 노란 액체와 지린내는 새벽 배송 기사들만 억울한 누명을 썼다. 더럽고 찝찝함이 남은 송년회는 802호만이 수혜자였다.


“민시야~~ 잘 지내~~?”

첫 만남부터 초기 입주민들의 뒷이야기를 전했던 영희 언니다. 상처도 받고 불만도 상당했던 영희 언니는 여전히 그 이웃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가십거리를 찾는 듯 802호 정훈 엄마의 지령이라도 받았을까?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웃음 뒤에 또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야말로 영희 언니를 이용하며 억울함을 풀고 싶었다.

“아, 언니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죠?”

“잘 지냈지? 우리 둥이들 재우고 오랜만에 연락해 봤어.^^”

“아, 조만간 만나요 언니.”

“나 내일 시간 괜찮은데, 어때?”

“좋아요. 내일 만나요.”


드디어 그녀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묻지도 않은 송년회 이야기를 상세히 들려줬다. 경찰까지 출동했다는 말을 해맑게 하는 모습에서 괜히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802호 부부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면서도 함께하는 영희 언니, 언니의 언행은 더욱 편해졌다. 뜬금없이 인연도 없는 우리 동 윗집 801호 그녀를 묻기 시작했다. 진짜, 정훈 엄마가 영희 언니를 이용하는 걸까?


나는 AI가 된 듯 빠르게 대답했다. 층간 소음으로 힘들었다며 801호 부부의 이야기를 전했다. 덤으로, 802호 정훈 엄마의 활약도 대단했다고 전했다. 지난 시간 801호의 층간 소음과 욕설, 비속어,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그녀들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상황 파악에 더딘 영희 언니는 이게 아닌데 싶은 눈빛이었다.

“오해였네, 전부 다 오해였어! 그런데, 네가 복도에서 욕 한 건?”

무슨 오해, 욕이라니? 영희 언니의 말에 세상 기가 막히고 당황스러웠다. 한동안 복도에서 욕설 통화를 하던 703호 여중생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심장이 내 몸을 찢고 나오려 했다. 사실 관계를 알아볼 생각도 없이 나라고 믿었다니. 그동안 그녀들의 쏘아보는 시선이 겹치며 당장이라도 쫓아가고 싶었다.

“정말, 기가 막히네요. 생각을 해봐요. 7층에 나만 살아요?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는 등원해요. 나밖에 없는 집에서 굳이 왜 현관 밖으로 나가서 통화를 해요? 그것도 아이 엄마가 돼서 나이 마흔에 욕설 통화를요? 내 이미지가 그렇게 보여요? 그 사람들은 한 번이라도 내려와서 얼굴이라도 확인할 생각은 해보긴 했대요?”


작정하고 소문을 만들어낸 그녀들에게 어떻게든 돌려주고 싶었다. 마음이 눈을 통해 드러나는 것을 겨우 진정시켰다.

“욕이라니, 그래서 쏘아봤대요? 그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르는 척하는 것도 이제 못하겠어요.”

우리 집 사정은 알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802호의 말만 듣고 믿었을 영희 언니는 표정 관리를 할 줄 몰랐다.

“네가 아이도 자꾸 울린다고 들었어. 그보다~ 정훈 엄마가 801호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반대로 친하게 지냈다는 게 나는 더 놀랍네~?”

“언니, 언니도 애들 키우면서 한 번도 울린 적 없어요? 울리고 싶어서 울리는 엄마가 있나요? 복도에서 욕하고 애 울리고? 그 사람들은 나를 대체 어떻게 만든 거예요? 802호랑 801호는 거의 매일 같이 붙어 다녔어요.”

영희 언니의 얕게 뱉어내는 한숨은 막장 드라마를 정주행 한 듯 감탄의 소리였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영희 언니의 입이 가벼워서일까? 오늘 나눈 대화는 802호 정훈 엄마에게 전달될 게 분명했다.

“어디서 만나든 정훈 엄마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 않았어요.”

영희 언니는 801호 그녀의 정보를 원했을 뿐인데, 얼떨결에 802호 정훈 엄마의 이야기가 덤이 되었다.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드디어 정훈 엄마의 약점을 잡았다는 듯 우리 집 통창을 통해 밝게 비추는 채광처럼, 영희 언니의 눈빛 또한 환하게 빛났다.


영희 언니는 곧장 술술 내뱉기 시작했다.

“사실 801호 욕을 그렇게 했어~ 정훈 엄마가.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보니 나한테도 한 번 선 그은 적 있었어. 자기랑 친한 친구들은 따로 있다고, 같은 아파트라 자주 만난다고 해서 우리가 친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내가 그때 얼마나 상처받았는데~ 전에도 정훈 엄마가 같은 층에 803호였나? 친하게 지냈던 엄마가 있었는데~ 결국 그 집은 집값도 손해 보고 그냥 이사 가면서 한동안 공실이었잖아.”

“왜요? 이유는 있을 거 아니에요.”

“정훈 엄마가 보험 일하거든? 엄마들은 회사에서 편의를 봐줘서 꽤 자유롭다고 알고 있어~ 강요는 아니라는데 부담이 되니까 몇몇 엄마들은 보험 들어줬잖아. 내 생각엔 보험 안 들어준 엄마들은 칼같이 잘라내는 것 같기도 해.”


나란히 손잡고 풍선 하나에 의지하듯 둥둥 떠 가벼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참, 정훈 엄마는 자기한테 돌아올 말은 하지 않아.”

영희 언니는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게 아닐까?


다음 날, 801호 그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당신들 소문은 안 나길 바랐어?’


내 예상대로 영희 언니는 우리 동 802호 정훈 엄마에게, 정훈 엄마는 801호 부부에게 알렸다. 그들의 흥분은 온갖 배설물로 우리 집에 쏟아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분명 둘 이상이라는 점이 여전한 의문이었다. 그날 이후 층간 소음은 더욱 요란했다. 정훈 엄마가 입이 무겁다느니, 자기한테 돌아올 말은 하지 않는다느니,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영희 언니의 순수함이 떠올랐다. 왜 정훈 엄마와 함께할 수밖에 없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는 왜 두렵지 않았을까? 요란한 소음에 비해 쫓아오지 않는 8층 그들이 의아하기만 했다.

‘왜 다들 안 내려와?’













* 처음 써보는 소설입니다. 허술한 점이 있더라도 많은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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