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양심

누구의..?

by 민시

며칠 후, 8층을 거쳐 7층으로 내려온 엘리베이터, 802호 정훈 엄마가 쌍둥이였나? 평소와 달랐다. 잔뜩 당황한 듯 엄마들이 하던 눈동자 운동을 보였다. 제자리걸음은 왜 할까? 지금껏 보여준 적 없던 조바심이다. 자신도 모르게 숙이는 고개로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802호 그녀는 뻔뻔했다. 빠져나갈 궁리를 빠르게 계산했다. 돌아서서 뜬금없이 처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혹시~ 이사 오셨나요~~?!” 잇몸까지 드러내며 웃는 얼굴엔 미세하게 떨리는 억지 근육이 고장 난 기계 같았다.

‘이런 미친. 허, 이제 와서 나를 모르는 척한다고? 영희 언니한테 듣고 없던 일로 시치미 떼는 방법이 당신이 택한 방어야? 정말 뻔뻔하네?’


갑자기 모르는 척하는 802호 정훈 엄마의 달라진 태도에, 나는 양손으로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물론, 상상 속에서. 어른이 되어 표정 관리도 하나 할 줄 모르더니,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던 801호 그녀의 말만 믿으며 사정없이 쏘아보던 정훈 엄마였다. 이웃에 대한 존중도 배려도 없었다. 아이에게도 가르치면 안 될 일을 해놓고도 모자라 이제 와서 모르는 척이라니. 하지만 이미 그녀의 흔들린 모습을 보았으니, 나는 더 이상 정훈 엄마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졌다. 나는 801호 그녀와 802호 정훈 엄마, 그리고 영희 언니의 첫인상을 떠올렸다. 내가 왜 그토록 엮이기 싫었는지 답을 얻은 것 같았다.


잠시 멈춰진 듯 시간은 길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건 긍정의 신호였다. 그동안 숨죽이며 두려웠던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이제는 나에게만 허락된 공기인 양 숨을 크게 내쉴 수 있었다. 곧이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보통이 아닌 802호 정훈 엄마에게, 나 역시 보통이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처음으로 그녀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그러고는 한쪽 입꼬리만을 끌어올리며 인사인지 경고인지 모를 까딱이는 고개로 대답을 대신하고 내렸다. 찰나의 순간으로 본 그녀는, 긴장을 잔뜩 머금은 듯 침을 꼴깍, 입술을 오므리고 어색하게 경직된 태도로 눈은 깜빡깜빡, 시선을 돌렸다.


한동안 802호 정훈 엄마를 더욱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녀를 마주하는 날은 꽤 흥미로웠다. 그동안 정훈 엄마의 분신과 같았던 검은 그림자가 몸에서 아예 빠져나갔다. 그녀의 어디로 굴려야 할지 모르는 눈동자를 보며, 마치 그녀의 검은 그림자가 내게로 넘어온 듯했다. 나는 그녀를 에워쌀 만큼 비대해짐을 느꼈다. 그녀는 뒤늦게 창피함을 알고 자신도 수시로 찾아오는 민망함과 후회로 어쩔 줄 몰랐을까? 하루는 고개를 숙이며 겸손하게, 그러나 하루는 자신이 숙이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뻔뻔하게 인사했다.


표정 관리가 전혀 안 되는 정훈 엄마, 나와 마주할 때마다 말을 걸어보려고 웃으며 친한 척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나에겐 턱도 없는 시도일 뿐이었다. 평소처럼 거리를 두었다. 부부가 행동이라도 같아야 할 텐데, 정훈 아빠는 눈 가리면 보이지 않을 거라 믿는 순수한 아이라도 빙의된 듯했다. 큰 덩치로 몸을 완전히 돌려 시선을 피했다. 이어 물이 턱 밑까지 차오른 듯 뻐끔뻐끔, 가쁜 숨이라도 쉬겠다며 고개를 들어 올린 모양새로 엘리베이터 벽과 한 몸이 되었다. 엑스레이라도 찍으러 들어간 방사선실 같기도 하고. 그의 목에 새겨진 문신 속 뱀 머리는 목이 꺾이고, 그의 기세도 꺾인 것처럼 우스꽝스러웠다. 못 찾겠다 꾀꼬리? 아니, 찾을 생각도 없다. 그대로 꾀꼬닥 숨죽이며 그대로 멈춰라~!

‘나만 보기 너무 아까워, 역겨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얼굴에 여유가 번졌다. 802호 그녀는 사색이 된 얼굴로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굴렀다.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는 듯 행동과 표정, 분위기로 불안한 심리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802호 부부는 801호 부부를 단칼에 끊어낸 듯 더 이상 함께 다니지 않았다. 왜일까?


며칠 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8층에서 현관문이 열리며 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801호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801호, 드디어 마주치는구나.’

그러나 우리 아이도 쫑알거리니 8층에서 멈추었던 엘리베이터는 텅 빈 채 내려왔다. 이후 몇 번이고 마주칠 수 있었던 기회, 801호는 빈 엘리베이터를 내려보냈다. 한동안 그들과 마주치지 않았다.


대면하기 싫은 801호의 마음을 이해했다. 나는 그들의 몸부림을 즐기게 되었다. 새벽에 자다가도 놀랄 만큼 손가락만 톡, 갖다 대면 켜질 불을 주먹으로 내려치는 듯한 행위의 소리도, 통창이 흔들릴 만큼 세게 닫는 소리도, 방도 화장실도 쾅쾅 닫는 문소리도, 그리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가라고 그냥!!”

“으악!! 나도 나가고 싶다고!!”

한동안 801호는 부부 싸움이 심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해진 이후 801호 그는 소음을 의식한 듯 욕과 비속어를 줄이기 시작했다. 물론 하루아침에 고쳐질 성격은 아니었다. 그들의 분노, 어느 한쪽도 양보하지 않는 샤우팅만이 폭우 속에 번개 치듯 반짝이고 사라지는 매일 밤이었다.


남편은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듯 고개를 갸우뚱, 소리에 집중하며 치켜세운 눈썹과 귀, 곧이어 깊은 한숨을 콤보 세트로 내놓았다. 나는 어쩐 일인지 영희 언니에게 전달한 이후부터, 혹은 802호 부부의 완전히 달라진 태도를 보며 마음의 쓰레기를 정리한 듯 깔끔하다 못해 광이 난다. 미칠 광인가? 매일 밤 801호 그녀의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욱하는 걸 억누르는 801호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고 해야 할까? 정작 그들은 내 눈앞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이야기가 넘어간 이상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힌 상황이라서인지 두렵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나는 허탈한 웃음마저 부끄러울 뿐이었다.


며칠 후, 화장실을 갔다가 세면대를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화장실은 유독 귀를 찌르는 듯 소리가 직설적으로 꽂혔다. 나타나진 않으면서, 그저 인기척만 들려도 시작되는 801호 그녀의 보복 소음이다. 나는 왜 두려움이 아닌 코웃음이 흘러나왔을까? 조용히 있으니 더욱 심해지는 그들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내 방식대로 지질하게, 비열함도 지혜롭게, 달콤하고 꾸덕꾸덕한 바스크 치즈케이크 반죽을 오븐에 넣어 구웠다. 한동안 그들의 소음이 시작될 때마다 매일 다양하게 그들을 반죽하는 상상을 했다. 우아하게, 나의 인내심을 함께 구우며 냄새로 보답한 셈이다. 나는 그들에게 물들었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내 깊은 본성이 끝내 비집고 올라왔다고 해야 할까? 잘 구워진 케이크는 여기저기 선물했다.


볼륨 조절이 안 되는 801호 그들의 소리에, 나는 그들을 향한 경고인지 진정한 나를 위함인지도 모르게 원두 그라인더를 작동시켰다. 핸드드립의 진한 커피 향과 풍미로 입꼬리를 올리고 눈꼬리를 내렸다. 참고, 참고, 또 참았던 날들, 두려움에 용기조차 내지 못했던 시간,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영희 언니에게 전달한 이후 그들의 눈에 띄는 변화와 지질함이 선명하게 보였다. 특수 안경이라도 쓴 듯 흥미롭기 시작했다. 이렇게 쉬운 거였으면 진작에 소리 내어 말할 걸 그랬다. 아니면, 이번에도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일까? 생각해 보면 늘 그래왔던 것 같기도. 말을 못 해 참으며 삭였던 시간은 끝내 나를 살렸다.













* 처음 써보는 소설입니다. 허술한 점이 있더라도 많은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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