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탈, 누가 쓰게 했을까?

누가 벗겼을까?

by 민시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정문 앞에서 1학년 등교를 돕는 엄마들, 어수선한 상황에서 영희 언니와 마주쳤다. 영희 언니는 놀란 표정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제 발 저린 듯 당황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국물이라도 삼킨 듯 표정과 행동 모두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더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 어.. 어.. 민시야~”


드디어 영희 언니 특유의 눈웃음과 함께 여리고 여린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이야기를 전했다는 생각에 양심이라도 찔렸을까? 물론, 나는 추궁할 생각조차 없었다. 당연히 넘어갈 이야기였고, 당연히 신뢰하지 않았으니까. 영희 언니가 순수한 척하는 건지, 내가 순수한 척하는 건지. 이 착한 탈은 누가 씌웠을까? 이 가면도 지혜일까?


내 앞에서 해맑게 웃으며 위선을 떠는 영희 언니에게 나는 오히려 고마웠다. 802호 정훈 엄마에게 말이 넘어가도록 이용한 점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인정을 못 해 매일 밤 몸부림치는 801호, 나는 영희 언니를 통해 오해가 풀린 것만으로, 더구나 친분이 있다던 802호 정훈 엄마의 흔들린 모습만으로, 이미 충분했다.

“둥이들 학교 잘 보냈어요?”

“어? 어~ 어어~”

“먼저 갈게요~”


몇 주 후, 영희 언니가 빨리 만나고 싶어서 안달 났다. 할 말이 많은 듯 수시로 전화했다. 터지기 직전의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났다. 무대 앞 해맑게 웃으며 고운 목소리를 뽐내듯 다듬기 시작하더니, 난데없이 랩을 하기 시작했다. 만나본 적도, 만날 생각도 없는 초기 입주민 이웃들의 뒷이야기를. 나는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있는 걸까? 여전히도 영희 언니의 가벼운 입은 신뢰를 넘어 거리 두기만이 답이었다. 믿었던 802호 부부에게 뒤통수라도 맞은 듯이 불만이 상당했다. 잔뜩 흥분한 표정과 과하게 커지는 목소리, 더욱 요란한 몸짓은 덤이었다. 영희 언니는 아마도 802호 정훈 엄마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설프게 머리라도 굴렸을지 모른다. 정훈 엄마를 벼르고 있었으니까. 꼴이 말이 아니게 된 802호 부부는 가만있지 않았을 테고.


영희 언니는 궁지에 몰린 듯한 다급함으로 쉽게 끝나지 않는 랩을 선보였다. 입에서 새어 나오는 말이 역겨웠는지, 혹은 영희 언니가 마신 바닐라 라테가 섞인 입냄새였는지, 몇 번이고 핑 돌아 상체를 뒤로 물리고 카페 사장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뻔뻔하게 모르는 척하던 802호 정훈 엄마에게 주고 싶은 벌, 영희 언니의 마음에도 가득한 모양이었다. 내가 손해 보는 것이 없으니, 이게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 아니면 뭘까? 겨울에서 봄으로, 목에 칭칭 감았던 머플러를 풀어낸 만큼 시원했다.

“정훈 엄마 남편이 글쎄~ 너는 가정교육부터가 잘못됐어! 입 좀 닫고 살아! 라며 정훈 엄마한테 소리를 지르는 거야~ 우리가 있는데~! 정훈 엄마가 열받아서 뺨 때리고 소리 지르고 욕까지~ 아주 난리가 아니었어~”

801호도 부부싸움이 심하던데, 802호도 분열이 시작된 걸까?

“801호랑은 완전히 틀어진 것 같더라고~?” 801호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걸까, 관심이 없어서일까. 함께하는 초기 이웃들의 이야기에만 흥분했다.


말이 말을 만드는 건 줄도 모르고, 가까이하지 않기를 잘했다. 물론, 내 앞에서도 소문을 쉽게 퍼뜨리는 영희 언니의 모습은 내가 이곳에서 사는 한 계속 봐야 할 모습들이다. 떨어진 집값도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도 결국 혀 아래 도끼를 꺼내야만 살 수 있는 걸까? 환경을 탓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맞이한 거나 다름없었다. 비윤리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내가 싫으면서도 살아야겠다.


끝까지 경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경각심이라는 마음을 영희 언니에게도 떠넘겼다.

“도긴개긴이죠. 씁쓸하지만, 누구나 제 똥 구린 줄 모른 채 사는 것 같아요.”

“참! 우리 친한 엄마들 자주 모인댔잖아? 정훈이가 툭하면 7층 이모, 네가 엄마들 중에 제일 이쁘다고 했어. 정훈 엄마는 못마땅해했고. 7층 이모는 말 이쁘게 하는데 자기 엄마는 맨날 말 거칠게 한다고. 애도 아는 거지~!” 입력은 안 되고 출력만이 살길인 영희 언니였다. 순수한 걸까, 약은 걸까, 나를 왜 경계하지 않을까. 이래서 이웃들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야, 여행 자주 다닌다는 애 있지? 몇 달 전에 걔 생일이었거든? 내가 5만 원짜리 스타벅스 카드 선물해 줬더니 지는 내 생일에 꼴랑 1만 5천 원짜리 치약 사주더라. 치약계의 명품이라나 뭐라나. 미친, 언제 적이냐?”

영희 언니는 내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동생이라는 것을 망각한 듯했다.

“야, 12동 그 언니는 진짜 재수가 없어. 거기도 애가 둘이거든? 산타페 신형으로 차 바꿨다고 해서 알고 있었는데, 여기 마트 앞에서 애들이 창문 열고 손 흔드는데 닫으라고 소리 지르더라? 재수 없어 진짜. 저 밑에 아이스크림 집에서도 마주쳤는데 아는 척도 안 해. 그 언니랑은 왜 자꾸 마주치는지 모르겠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외면하는지, 영희 언니는 왜 잔뜩 화가 났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나는 한 번도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 초기 입주민들의 뒷이야기, 그러면서 술자리를 같이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는 건 무슨 심리이고, 무슨 모순일까? 앞에서 고장 난 복사기처럼 했던 말을 또 해가며 출력만 해대는 영희 언니의 언행은, 수시로 올라오려는 내 안의 악을 잠재우는 것만으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아! 여기 살다가 저기 3단지로 이사 간 애가 있다? 걔가 미친, 나한테 뭐라는 줄 아냐? 아우~ 언니는 그냥 멍청한 거고! 이러는 거 있지? 진짜 미친 거 아니냐? 정훈 엄마도 앞에서 다 들어놓고 글쎄 못 들었다고 모르는 척하더라?”


원래 이런 사람이었을까? 지금의 모습만으로는 맞는 말 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화를 다스리지 못해 밖으로 표출하기 바쁜 언니에 비해 나는 한가로웠다. 역시나 누구든 자신의 일이 아니면 아무 일도 아닌 듯 느긋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달까?


물론, 영희 언니가 그들보다 순진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의 지질함에 이어 누군가의 지질함을 확인하는 데서 나는 왜 안정감을 느낄까? 이건 또 무슨 심리인지. 나는 며칠 뒤 영희 언니를 위해 진심으로 책을 골라 선물했다. 내가 뭐라고, 남이지만 남 일 같지 않았다. 내 미래가 될 수도 있다. 나에겐 분명 위험한 사람으로 분리되었지만, 마음이 다른 이웃과 거리 두기를 하란 뜻이었다. 그리고, 함께 성장하자는 뜻이었다.

“언니 덕분에 오해가 풀려서요. 책은 내 마음, 도움 될 거예요.”

“어? 어.. 어~ 고.. 고마워.. 잘 읽을게~”

선물을 주고받을 만한 사이가 아님에도, 영희 언니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듯 눈은 계속 깜빡이며 미소가 번졌다. 물론, 내 의도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 느낌이긴 했다.












* 처음 써보는 소설입니다. 허술한 점이 있더라도 많은 양해부탁드립니다.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층간 소음 #이웃갈등 #이사 #착한 콤플렉스 #현실밀착형 #생활밀착형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