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2편
페루 2편
리마에서의 첫 나의 호스텔은 꽤나 괜찮았다. 깔끔했고 조식도 좋고 일단 30시간 비행 후라 잘 잤다. 아침에 조식을 먹고 있는 데 첫 나의 동행을 만났다. 사실 여행을 나오면 한국인을 피해 다니는 편이다. 뭐 여기까지 와서 한국인을 만나고 다니나 하기도 하고 원래 원체 혼자도 잘 다니는 편이라 오기 전에도 동행이 생기면 같이 다니고 아니면 말지 하는 식으로 왔다. 아침에 빵 먹으면서 만난 이 형님은 6개월 장기 여행 왔다고 하셨다. 남미를 다 돌 거라고 퇴사하고 오셨다고 했다.
리마 온 지 한 일주일 정도 됐다는 이 형은 내일 와라즈로 간다고 했다. 빵이랑 커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둘 다 그날 딱히 할 일 이 없었던 관계로 빵 먹고 구시가지 구경을 하러 가기로 했다. 리마 구시가지는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형이 가자고 하길래 잘됐다 생각하고 처음으로 같이 나갔다.
일단 이 형이 스페인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스페인어를 일 도 할 줄 모르는 나는 형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구시가지는 뭐 사실 별거는 없었다. 간간히 뭐가 있다고 는 하는 데 발길 닿는 데로 가는 편이라 별로 본 게 없었다. 특별한 건 없었지만 제주도 섬에 갇혀 있다가(일단 난 제주도 사람은 아니다 제주도 1년살이를 했다.) 오랜만에 해외 나오니 그냥 좋았다. 사실 나는 여행을 와서 특별하게 뭘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와서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자유로움을 좋아한다. 뭔가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이런 감정은 내가 남미 여행하면서 만났던 여행자 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비슷하게 나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번 나온 사람들은 계속 나오게 되는 것 같다.
하여튼 어제 만난 이 형이랑 오전에 재밌게 놀고 오후에 형은 와라즈로 떠났다. 와라즈는 페루 리마에서 버스로 8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나는 브라질까지 가려면 밑으로 가야 하는데 와라즈는 위로 가야 돼서 안 가려 했다.
귀찮고 멀다 그래서 안 가려 했는데 형이 자꾸 꼬시기도 했고 블로그에 들어가면 꼭 와라즈 69 호수 트레킹을 해야 된다고 하는 후기를 많이 봐서 형은 오늘 가고 나는 내일 가기로 했다.
형이 떠나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호스텔에 누워있는 데 으슬으슬 춥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남미 오기로 하고 짐을 챙길 때 나는 남미라는 대륙은 더운 줄 알았다. 그것도 많이 이렇게 추운 줄 몰랐다.
꽃보다 청춘 볼 때는 유희열이랑 이적이랑 반바지 입고 다니길래 더운 줄 알고 긴팔이라곤 맨투맨 밖에 가져오지 않았다. 아주 낭패였다. 다음번에 누가 남미에 가고 싶다고 한다면 롱 패딩을 챙겨 가라고 할 거다.
누워있는 데 감기 기운은 오지 여행은 이제 시작인 데 아프면 안 될 것 같아서 호스텔 스탭한테 번역기 돌려서 감기약을 스페인어로 어떻게 되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그렇게 적은 medicina para el resfriado를 들고 약국에 갔다. 안 되는 스페인어와 번역기로 감기약과 와라즈는 고산지대라고 해서 고산병 약을 사서 호스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쉬다가 와라즈 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오후 버스였고 비교적 수월하게 표를 끊었다. 페루 지역 같은 경우에는 red bus라고 어플이 있는 데 얘만 있으면 페루 어딜 가든 버스를 아주 쉽게 끊을 수 있다. 어제 만난 형님의 조언과 인터넷에 나와있는 후기를 보니 크루즈 델 수르라고 이 버스가 제일 좋은 버스라고 이거 끊으라고 다른 건 아껴도 버스비는 아끼지 말라고 해서 끊으 려고 했는데 그럼 그렇지 버스가 없어서 딴 버스를 끊었다.
버스를 탔는 데 여기서 또 다른 한국인 동행 분을 만나게 됐다. 이번에도 형님 분 이신 데 와라즈 가신다고 하셔서 버스표를 보니 같은 버스였다. 남미든 어디든 외국 여행 와서 한국인을 만나면 반갑긴 하다. 특히나 한국인이 많이 없는 지역에서 만나면 더 반갑고 친해지기도 쉽다.
사실 한국에서는 아는 체하지도 않고 지나가겠지만 여기서는 "한국 분이세요?" 한 마디면 그 뒤로는 원래 알 던 사람들인 것처럼 친해진다. 그리고 서로 본인이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사람을 처음으로 만나면 나이가 몇 살이며 무슨 일을 하냐는 둥 상투적인 질문 들만 내놓을 테지만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이런 게 여행에 매력 일 지도 모르 겠다.
이 형님은 이야기하다가 알게 되었지만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이었고 3주 일정으로 빡빡하게 일정을 짜고 오셨다고 했다. 이야기 들어보니 오늘 리마에 도착해서 우버를 타고 터미널 와서 와라즈로 가는 거라고 했다. 힘들지 않으시냐고 물어보니 시간이 짧다 보니 빨리 가야 한다고 그래도 아직은 여행 시작이라 괜찮다고 하셨다.
생각보다 버스는 양호했다. 나중에는 결국 대부분 버스를 다 타봤는데 페루 버스는 괜찮은 편에 속했다. 그렇게 와라즈에는 저녁에 떨어졌고 각자 호스텔로 이동해서 짐 풀고 져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나는 어제 만난 형님이 그냥 여기 예약하라고 해서 형님이 예약한 호스텔에 예약을 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조식 먹는 데 한국인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아킬포라고 와라즈에 있는 한국인의 성지 같은 호스텔이었다. 라면도 팔고 호스텔 스탭은 한국인이 하도 많이 와서 그런 지 한국말을 조금 한다. 호스텔마다 특징이 있겠지만 보통 한국인들이 많은 호스텔들은 대체적으로 깔끔하고 뜨거운 물이 잘 나온다. 한국인 특성인 건지 대체적으로 그렇다. 그리고 유럽인들이 많은 곳은 싸다. 장기 여행자들이 많아서 얘네는 그냥 싼 데로 간다. 내가 예약한 호스텔은 투어 예약도 가능 한 곳이었다. 우리는 바로 내일 걸 예약했다. 고산 적응도 되지 않았는 데 괜찮겠지 하고 예약했다. 와라즈는 해발 3500m이고 내일 출발하는 파스토 투리 빙하 투어의 가장 고지대는 5000m다.
투어는 아침 8시에 출발했다. 그래도 고산병 올까 봐 졸아서 어제저녁부터 고산병 약을 먹고 출발했다. 고산병에는 약도 답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다들 아직 까지는 약간 머리가 띵 한 것 제외하고는 상태가 괜찮아서 괜찮겠구나 했다. 버스를 타고 2시간 3시간을 갔다. 페루 고산지대를 가는 길은 정말이지 험난하다.
정말로 텔레비전에서 보던 그런 길 정말 살짝만 틀어도 떨어질 것 같은 그 길을 정말 빨리 달린다. 물론 기사님은 이 길을 수백만 번 지나다녔다고 하지만 난 아니다. 아주 그냥 밟는다. 이건 안타 본 사람은 모른다.
그렇고 가는 데 같이 온 형님이 고산병에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와라즈 시내에 있을 땐 괜찮아 었는 데 조금씩 고도가 올라가다 보니 고산병이 오기 시작했다. 어제저녁부터 고산병 약도 먹고 코카 차도 계속 마시고 있었는데 오기 시작하니 답이 없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이 형은 버스 타고 3500m부터 코카잎을 씹으면서 가는 데도 죽을 뻔했다.
거의 4500m 까지는 버스를 타고 올라오고 나머지 500m 정도는 걸어 올라갔다. 고산병도 고산병이지만 버스에서 내리니 왜 남미가 대자연이라 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산맥은 정말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대자연에 압도된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산병에 힘들어하는 형을 이끌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힘겹게 올라가는데 고도가 높아서 그런 지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씨 운이 나쁜 편은 아닌 데 머리가 다 깨지는 줄 알았다. 빙하를 이렇게 까지 보러 가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자연의 웅장함을 느낀 지 10분 만이었다. 빙하를 보고 내려오는 데 고산 병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생에 처음으로 본 빙하는 생각나지도 않았다. 산소가 부족해서 그런 지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똑바로 걷지 못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내려가고 있는데 내 앞에 똑같은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페루 사람이었다. 페루 사람도 이런 데 어제 온 한국인인 우리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나랑 체육선생님은 괜찮은 편이었는데 다른 형님이 많이 안 좋아서 원래 내일 69 호수를 가려고 했는데 포기하고 조금 편한 파론 호수 투어를 가기로 했다.
다음날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래 동행을 한 동생을 만나게 되었다. 역시 첫 만남에서는 서로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해서 썰을 풀기 시작한다. 이 친구는 남미 온 지 2주 정도 됐을 때였고 에콰도르에서 넘어왔다고 했다. 에콰도르에서 한인민박에 있었는데 한국사람을 한 명도 못 만났는데 여기 와서 한국사람을 처음으로 만났다고 했다. 신기했다.
나는 리마 떨어지자마자 한국사람을 만났는데 내가 운이 좋은 거였구나 싶었다. 파론 호수는 5000m 까진 아니고 4200m인가 정도 됐다. 어제 5000m를 다녀온 게 고산이 적응이 된 건지 그래도 조금 나았다. 그런데 어제 온 이 동생은 고산의 영향인지 등산의 영향인지 죽으려고 했다. 파론 호수의 색은 정말 파랬다.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파랬다. 어떻게 이렇게 높은 고지대에 이런 빛깔의 호수가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개인적으로 69 투어에서의 호수보다 호수 색은 더 아름다웠다. 이번 투어에는 한국인 커플팀이 있었는데 두 분은 그저께 파스토 투리 빙하 투어를 갔다가 고산병이 제대로 와서 본인 일정에 모든 고산지역은 뺏다고 한다. 자기들은 고산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며 빠른 시간 안에 바닷가가 있는 칠레로 갈 거라고 하셨다. 그분들도 그러는 걸 보면 그래도 우린 잘 넘어간 편이구나 했다.
와라즈라는 동네는 다양한 트랙킹 코스들이 많이 있다. 트랙킹을 좋아하는 유러피안 친구들은 4박 5일 7박 8일 코스 트레킹을 하곤 하지만 트레킹을 그 정도로 좋아하진 않는 우리 한국인 친구들은 보통 파론호수, 69 호수 투어, 파스토 투리 빙하투어 중 몇 가지만 하고 와라즈를 떠난다.
보통 69 호수 나 파론호수 투어 두 개를 하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우리는 세 개 다하기로 했다. 체육선생님 형님은 일정이 촉박하셔서 파론 다녀오자마자 오늘 버스를 타고 리마로 넘어가셨고 나랑 형은 69 호수를 가기로 했다. 오늘 파론 호수 투어가 생각보다 괜찮아서 자신감이 좀 붙었다. 저녁 먹으면서 아까 만난 동생도 계속 꼬셔서 일단 가기로 했다. 아침 6시 출발하는 데 어제 만난 동생은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나랑 형이랑 둘이 갔다. 도착해서 오르기 시작하는데 산속 뷰가 정말 아름 다웠다. 빙하투어 처음 내렸을 때 느꼈던 그런 느낌을 다시 받았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아름다운 국립공원 같은 느낌이었다.
딱 거기까지 였다. 69 호수 투어는 해발 4600m인데 고산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그냥 등산이 힘들었다. 산 타는 게 정말 힘들었다. 페루에 온 지 1주일 좀 넘은 것 같은데 4일째 산만 타고 있는 것 같다. 등산 투어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생전 산을 타지 않다가 남미에 와서 한국에 있는 산 2배가 넘는 산을 타려고 하는 데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근데 신기한 건 한국애들만 힘들어한다. 유럽 애들은 정말 산을 잘 탄다. 나중에 우리끼리 내린 결론이지만 재네는 자기네 나라에 놀게 없어서 맨날 자기네 나라에서도 산을 많이 타서 그런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역시나 그래도 그렇게 힘들게 올라가서 본 69 호수는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