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4편
페루 4편
2박 3일 투어의 일정은 이렇다. 첫날은 자전거를 타고 둘째 날은 집라인 후 1박 셋째 날 아침 마추픽추 올라갔다가 다시 쿠스코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첫날 우리는 2박 3일 치의 짐을 싸고 밴으로 이동했다. 밴에는 우리를 제외하고는 다 유럽 친구들이었다. 친구 셋이서 6개월 동안 남미 여행하고 있다는 영국 친구들, 남미에서 공부 중에 휴가 왔다는 이탈리아 친구들 뭐 그렇게 있었다.
밴으로 2시간 에서 3시간 정도 이동하고 자전거를 탔다. 온갖 장비를 다 차고 하는데 처음엔 왜 차나 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생각보다 다치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초등학교 때 타보고 자전거 오랜만에 탔는 데 정말 좋았다. 누가 마추픽추를 간다면 자전거 타는 걸 포함해서 하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이런 풍경에 한국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좋았다. 되게 좋다 상쾌해지는 기분
점심을 먹고 래프팅을 원하는 사람들은 추가 요금을 내고 래프팅을 하러 갔고 아닌 사람들은 숙소에 데려 다 주었다. 래프팅을 왜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모른다 그냥 안 했다 사실 난 할까 했는데 아무도 안 한다길래
그냥 나도 같이 안 했다. 동료의식 뭐 그런 건가 한국인의 특징이다.
한국인 5명 우리만 래프팅을 하지 않았고 나머지는 래프팅을 하러 갔다. 우리는 숙소로 이동했다. 많은 것을 기대 하진 않은 숙소였지만 생각보다 양호했다. 하지만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차로 20분 거리에 온천에 가서 샤워를 했어야 되는 건 빼고는 괜찮았다. 안데스 산맥 안에서 온천을 하는 기분이란 사실 온천 이라기보다는 따뜻한 물이 있는 수영장 같은 느낌이었다.
온천을 즐기면서 또 한 번 내가 여행을 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말도 안 되는 페루라는 곳을 오더니 안데스 산맥 안에서 미국에서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 들과 함께 온천을 즐기고 있는 기분이란 복잡 미묘하다. 얘네 한테는 마추픽추가 우리의 제주도 같은 곳 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끔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머지하면서 웃음이 터지곤 한다. 그런데 이 기분은 내가 한국에서 열심히 살 땐 전혀 느낄 수 없는 감정이며 아무런 조건과 이유 없이 행복해지는 순간 중에 하나다.
온천 후 저녁에는 간단한 여행객 들끼리 술을 마시면서 파티 같은 걸 진행했다. 우리랑 같이 온 친구들 말고도 다른 투어에서 온 여행객들도 있는 것 같았다. 밥은 역시나 별로 맛은 없었고 대충 먹고 간단하게 술을 마시고 우리는 들어갔다.
다음날 집라인을 하러 갔다 난 집라인을 처음 해봤다. 되게 무서울 줄 알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했는 데 생각보다 빠르지 않아서 당황했다. 집라인 후에는 점심을 먹고 3시간 정도 트레킹을 했다.
그리고 1박을 할 아우구스 깔리엔떼스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마추픽추 가기 직전에 있는 동네이다. 10분 정도 돌아보면 다 돌아볼 만큼 작은 동네인데 마추픽추 밑에 있는 동네라서 그런 지 몰라도 굉장히 상업화되어있는 그런 곳이었다.
다음날, 마추픽추에 올라가는데 마추픽추에 올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내 두 발로 걸어서 올라가던지 아니면 버스를 타고 올라가던지 나는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여기까지 왔는 데 걸어서 올라가야 의미가 있지 않겠나 해서 나를 포함해 남자 3명은 걸어 올라가기로 했고 나머지 두 명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내 인생에 몇 번 꼽히는 실수 중 한번이었다. 새벽 4시 씻지도 않고 우리는 마추픽추를 향해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냥 산을 기어 올라가는 것이었다. 포기할 뻔했다. 포기는 배추나 썰때 하는 말인데 인생에는 배추를 썰 고 싶을 때가 자주 다가온다. 가이드는 나한테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길이 이렇게 가파르고 힘들고 정말 넌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말했다면 나는 버스를 타고 갔을 거다 중간에 큰길에서 몇 번 버스를 잡을 뻔했다. 알다시피 한국에서 등산이라고는 담쌓고 살았는데 다시 또 나와의 싸움이 시작했다. 정말 네 발로 기어서 올라갔다. 강아지가 된 기분이었다.
올라가면서 너무 많이 쉬면 없어 보일까 봐 중간중간 쉬는 척하면서 풍경 사진을 찍었다. 똑같은 풍경인데 열댓 번을 찍었다 1시간 올라가는데 열댓 번 쉰 거다. 다른 사람들은 다 올라가서 마추픽추 안에 들어왔는데 나는 꼴찌로 올라갔다. 힘들어 죽으려고 하는 나를 보고 영국 애들이 괜찮냐고 했다. 안 괜찮다고 죽을 것 같다고 하니까 좋아 죽는다. 얘네는 내가 죽겠는 게 좋은 가보다. 자기들은 5번째로 올라왔다고 자랑한다. 그냥 무시했다.
그렇게 마주한 마추픽추는 웅장했다.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마추픽추 내가 찍어놨 던 몇 개 포인트 중 하나였던 마추픽추였는데 사실 티브이 속 에서나 책 속에서 너무 많이 접해서 그런 지 몰라도 생각만큼 큰 감명을 받지는 못했다. 물론 정말 멋있고 이런 게 어떻게 여기 있지 하는 기분은 들었지만 어쩌면 걸어 올라와서 힘들어서 그런 걸 줄 도 모르지만 되게 감명받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경주 불국사에 온 느낌.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친구 들한테 물어보니 다 비슷한 감정이었다. 그래도 다음번에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랑 한번 정도는 같이 와서 보고 싶다는 기분은 들었다.
마추픽추에서 돌아온 후 조금 쉬기로 했다. 그동안 투어도 많이 했고 너무 달려와서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로 했다. 사실 나는 뭘 하는 것보다는 가만히 해먹 같은 데 누워서 노래나 듣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더 좋아한다. 그래서 산보다는 바다를 더 좋아한다 바닷가에 누워서 노래 들으며 맥주나 한잔 먹으면서 그렇고 있는 걸 더 좋아한다. 그런데 남미는 산투성이다. 쿠스코에서 10일 정도 있을 예정이었는데 뭘 할까 하다가 한일 주일 아무것도 안 하면서 스페인어를 배워 보기로 했다. 어차피 마추픽추는 다녀왔으니까 비 니쿤 카만 다녀오면 돼서 남는 시간은 학원이나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