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그렇긴 한데요, 이 남매는 당신이나 제가 아니죠. 그러니 미래의 모습은 알 수 없지요."
"누구라도 다 달라요. 성격. 취향. 기질 그 어떤 단어를 갖다 대도 같을 수 없어요."
우리는 이웃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냥 의례 듣던 말, 그냥 의례 하던 말을 제발 좀 멈추자. 내 소중한 몸의 일부인 뇌와 얼굴, 근육과 입술과 혀를 움직히는 수고를 할 때는 상대에게 의미 있는 말을 전하자. 그래야 당신에게도 의미 있는 말이 온다.
"어우 남매가 많이 컸네요. 요즘 어때요?"
"신통이 방통이 엄마, 요즘은 좀 어때요?"
"서로 잘 놀 때가 있나요? 요즘은 어떤 때 다투나요?"
질문이 이렇게 나오면 듣는 사람은 아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이 있구나 느껴진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같은 시공간에서 동등한 입장으로 서로를 존중하면서 의미 있는 대화할 수 있는 장이 열린다. 두 사람이 진정으로 만나고 있으니 시간이 아깝지 않다.
옛날식 하는 말들을 들으면 그건 그냥 말하는 사람이 내뱉고 싶어서 하는 말인 거다. 냉정히 말하면 말하는 사람의 선입견으로 그 시공간을 독식하는 거다. 말의 내용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우리는 왜 다 그저 그런 같은 말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분명히 상황이 다 다르고 감정도 다 다를 텐데 왜 우르르 같은 결론 만을 공유하려고 할까? 그 사람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단지 생각이 부족할 뿐임을 알면서도, 아마도 그런 식으로 말하고 듣기만 해 관심의 표현 방식이 그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해도 이것은 안타까운 현상이다.
그림책 '아모스와 보리스'에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두 주인공 고래와 생쥐가 어쩌다 바다에서 여행을 함께하게 되는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 있다. 두 생물은 사실 과학적으로 만날 일은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두 주인공은 서로가 포유류라는 공통점을 찾아낸다. 그리고 육지와 바다의 생활이 어떤지에 대해 호기심과 경청으로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며 확장해 나간다. 고래는 필연적으로 바다에 들어갔다 나와야 하고 생쥐는 물 밖에서만 숨을 쉴 수 있으니 두 생명이 서로 살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서로에게 치명적인 일이 무엇인지 아는 거였다. 서로의 취약점에 대해 잘 알아주고 서로가 공존하기 위해 싫어하는 것을 안 하고 서로가 조금 더 편안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거였다. 결국 둘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
그렇게 하면 되는 거다. 남매 생활을 해내는 것도. 이웃과 오며 가며 소소한 정을 차곡차곡 쌓는 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