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단절과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우리가 문자 그대로 경력 단절이 되는 경우는 주로 임신 출산 육아나 권고사직, 해고, 희망퇴직, 명예퇴직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구분되고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공통의 전제는 있다. 그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에 더 이상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단절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회사는 한결같지 않다. 다시 말해, 회사는 바꾼다. 자꾸 바꾼다. 회사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 임직원에게 거는 슬로건을 바꿀 수 있다. 언제든지. 임직원이 거기서 한결 같이 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내 인생은 정말 너무나도 소중한데,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이 들 것이다. 또는 외면하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 커리어 시절을 돌아봤을 때 어렴풋한 고민을 하면서도 다가올 진실을 외면하고 아무 일도 없을 것처럼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웃고 떠드는 회사원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다.
그들은 지금 어디 즈음에 있을까. 아직도 여전히 그렇게 아무렇지 않을까.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면 조금 더 빨리 고민을 시작할 것이나 다소 낙천적이거나 워커홀릭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그들 모두가 승진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끝에 올라가도 끝없이 외부로부터 평가받을 것이고 외부로부터 오는 책임은 점점 더 커져서 당신을 짓누를 것이다. 얻는다 해도 외로울 것이다.
위로 올라간 사람이나 아래로 내려간 사람 모두에게 공허한 삶이 오는 것이다. 당신에게 그런 삶을 허가하고 싶은가 생각해보라. 당신에게 그런 게임판을 승인하고 싶은가 생각해보라. 입장권이 주어졌다고 그대로 입장할 것인가?
좀 더 채비를 하고 얼마의 시간 동안에 무엇을 얻고 탈출할지 탐색하고 궁리하면서 살자. 그래야 기업도 사회도 차원이 다른 고민을 할 것이다. 자기들의 이윤만 추구하지 않고, 임직원들이 함께 하는 동안 서로가 매력적으로 주고받을 것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수도 있다. 냉정하게 본다. 개인들이 치열하게 생각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이 시대의 권력이 미리 먼저 고민 할리가 없다.
멈추어 서야 했을 때 돌아보면 타고 남은 재 위로 가느다란 불씨가 보일 수 있다. 그게 자기 꿈이다. 놓칠 뻔한 꿈. 진정으로 즐겁게 몰입할 수 있던 것에 대한 기억, 하다 하다 꼴 보기 싫고 하기 싫어도 붙잡고 늘어질 수 있을 것만 같은 것. 그것이 누구나에게 한 가지 이상은 주어졌으리라 믿어보자.
내가 몰입해하는 일, 끝내 다시 일어나 내가 치열하게 해내고 있는 그 일이 마침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라면? 실패하고 변화하고 해내고. 실패하고 변화하고 해내고. 망연자실했다가도 다시 회복하면서 나 자신을 믿게 되면서, 그것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고 정당한 보상으로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다시 내 삶에 적용하고. 그렇게 한번 더 일어서는 연습을 해나가면 어떨까.
개인들의 꿈이 다양해지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안의 경제 생태계도 정말 다양해질 것이다. 다양한 종들이 존재할 때 그 자연의 생태계가 건강하고 찬란한 것처럼. 우리도 개인들이 갖가지 색을 발현하고 고유의 재능을 기량 껏 발산해 낼 수 있을 만한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