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차 줌마 홍보인의 만능치트키가 된 이야기....
“다 한다며? 다 할 수 있다며, 그래서 뽑았다며.”
입사 후 내가 제일 많이 들은 말이다.
홍보의 ‘홍’자만 들어가면 다 내 일.
기사? 내 일.
홈페이지? 그것도 내 일.
그룹영상? 그것도 홍보라며.
채용 홍보? 아, 채용도 홍보다.
사내 소통? 사보도 홍보가 해야지, 그건 또 왜 홍보냐고 물으면, 그냥 “다 홍보잖아”라는 답이 돌아온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홍보가 무슨 만능키입니까. 저는 사람이지, 슈퍼히어로가 아니라고요.”
인사본부는 교육·채용·평가·보상·조직문화까지 역할을 다 나눠서 팀원 여럿이 함께 한다. 그런데 홍보는 달랑 한 명. 나 하나 뽑아놓고 모든 걸 다 맡긴다.
심지어 어떤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 “면접 때 다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거짓말한 거야?”
나는 웃으며 속으로 답했다.
– “네, 그때의 저는 미래를 잘 몰랐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20년 넘게 홍보라는 일을 해왔다. 자동차 회사에서 12년, 유통 대기업에서 10년.
자동차에 공채로 입사해 영업과 CS 현장을 두루 거치며 ‘사람과 고객의 언어’를 배웠다. C* 유통대기업에서는 기업 PR과 마케팅 PR을 담당하며 방송, 커머스, 콘텐츠를 오가며 ‘산업과 소비자의 언어’를 익혔다.
그 사이 디지털 PR, 유튜브, 블로그까지 경험을 넓히며 커뮤니케이션의 변화를 몸으로 겪었다.
그러던 내가 2023년,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홍보팀조차 없는 B2B 반도체 그룹 중견기업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두아이의 엄마다...나의 예명은 빡마마
입사 전 검색해 본 회사의 첫인상은 솔직히 충격이었다.
홈페이지는 만들다 만 듯 방치돼 있었고, 그룹의 존재감은 포털 검색에도 잘 걸리지 않았다.
2019년 오너 관련 기사는 애매한 상태로 그대로 떠 있었고, 그룹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신호는 있었다.
젊은 감각의 채용 홍보 영상이 유튜브에 몇 개 올라와 있었고, 주식 유튜버들 사이에서는 ‘알짜 회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할 일은 많겠지만, 판은 넓다. 해볼 만하다. 아니, 잘하면 임원도 노려볼 수 있겠는데?”
사실 나는 자동차와 유통을 넘어, 새로운 업종에서 ‘나와바리’를 넓히고 싶었다. 마침 눈앞에, 정리되지 않은 채 할 게 너무 많은 회사가 있었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나는 홍보 담당자 1호였다.
계열사 15개 중 어디에도 홍보 담당자는 없었고, 그나마 홍보 비슷한 일은 인사본부에서 사보를 발행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사보가 곧 홍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혼자 전 계열사의 언론·홍보·브랜드·콘텐츠를 다 떠안게 됐다.
첫 미션은 홈페이지였다.
딱 봐도 손봐야 할 게 산더미였는데, 돌아온 첫 지시는 이랬다.
“왜 홈페이지를 새로 해야 하는지 보고서를 쓰세요. 다른 대기업은 어떻게 하는지도 벤치마킹해 오시고요.”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홈페이지가 이상한 건 눈만 떠도 보이는데, 이걸 보고서로 증명해야 합니까?”
그런데 홍보담당자의 숙명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증명하는 일이다. 그래서 보고서를 쓰고 또 썼다. 한세월 동안....
팀장(삼* 대기업 출신, 박사 학위까지 한 인사 전문가)은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홍보인데 왜 못해? 다 할 줄 안다며?”
나는 속으로 되받았다.
– “홍보가 무슨 만능키입니까. 저는 사람이지, 마스터키가 아니라고요.”
그 순간부터 팀장과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윗사람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만들기에 급급하다 보니, 본질은 자꾸 어긋났다.
홈페이지는 여전히 콘텐츠도, 사진도, 메시지도 없이 공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