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22화)
2025년 어느 봄날, 광화문 광장을 걷다가 문득 생각해 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부당함에 맞서고 있을 거예요. 작은 목소리를 내고, 조용히 연대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을 테니까요.
131년 전 동학농민들이 죽창을 들고 "사람이 하늘"이라고 외쳤던 것처럼, 106년 전 3.1 만세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처럼, 38년 전 6월 항쟁에서 최루탄을 맞으며 민주주의를 외쳤던 시민들처럼, 9년 전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던 1,700만 명처럼 말이에요.
우리는 지금까지 22회에 걸쳐 '을의 역사'를 함께 걸어왔습니다. 왜 우리는 여전히 '을'의 감각을 느끼는지, 주권을 둘러싼 도전과 응전이 어떻게 반복되어 왔는지 살펴봤어요.
그리고 이제 알았습니다. 을의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1894년 전봉준이 고부 관아를 습격했을 때부터 2025년 지금까지, 한국사는 주권을 둘러싼 끝없는 투쟁의 연속이었어요.
첫 번째 큰 물결은 일제강점기였습니다. 외부의 강력한 도전에 맞선 민족적 응전의 시기였어요. 동학농민운동에서 시작된 민중 주권 의식은 3.1 운동을 거쳐 항일무장투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비록 당시에는 실패했지만, 해방 후 민주주의의 씨앗이 됐어요.
두 번째 큰 물결은 해방 후 분단체제의 고착화였습니다. 외부의 도전이 끝났지만 이번에는 내부의 권위주의 세력이 주권에 도전했어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체제는 민중의 주권을 억압했습니다. 하지만 4.19, 부마항쟁, 5.18 광주,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이 끈질기게 응전했어요.
세 번째 큰 물결은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시기입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립됐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요. 신자유주의, 양극화, 부패와 특권이 새로운 형태의 도전이 됐고,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의 친위 쿠데타는 세 번째 주권 도전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과거의 무력 쿠데타와 달리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법적 외피를 쓴 새로운 형태의 권력 장악이었어요. 이에 맞서 촛불혁명, 미투 운동, 기후행동 등 새로운 형태의 시민 응전이 나타났습니다.
각각의 시기마다 도전의 성격과 응전의 방식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어요. 바로 "사람이 하늘"이라는 믿음,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신념이었습니다.
2025년 현재에도 우리는 여전히 '을'의 감각을 느껴요.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의 부강한 나라가 됐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이뤘는데도 말이에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쿠데타 세력에 대한 미흡한 처벌과 청산 및 특정 계층의 권력독점 때문입니다. 박정희는 일본 군부의 쿠테타와 하극상을 학습했고, 전두환은 박정희를 학습했으며, 윤석열은 전두환을 학습했어요. 쿠데타가 성공하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면서 특정 엘리트 계층(육사, 군부, 검찰)에게 '쿠데타 성공 신화'를 심어줬습니다. 인도가 식민지 해방 이후 단 한 번도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네루 등 초기 지도자들이 특정 계층의 권력 진입을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둘째, 불평등의 심화 때문입니다. 경제가 성장했지만 그 과실이 골고루 분배되지 않았어요. 부의 집중은 갈수록 심해지고, 중산층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취업과 주택 문제로 고통받고, 노인들은 노후 빈곤에 시달려요.
셋째, 권력의 집중과 특권화 때문입니다. 정치권력, 경제권력, 사회권력이 여전히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어요. 검찰, 언론, 대기업, 정치권이 서로 유착하며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넷째, 새로운 형태의 차별과 배제 때문입니다. 성별, 나이, 지역, 학벌, 출신 성분에 따른 차별이 여전해요. 이주민, 성소수자, 장애인 등에 대한 사회적 배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섯째, 글로벌 자본주의의 압력 때문입니다. 국내 정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기후변화, 팬데믹, 플랫폼 독점 등은 개별 국가를 넘어서는 차원의 대응이 필요합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을 '을'이라고 느끼는 거예요. 주권자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이 없고, 자유롭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제약이 많고, 평등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어요. 새로운 도전에는 새로운 응전이 나타나고 있거든요.
디지털 기술은 시민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고 있어요. SNS를 통해 더 쉽게 의견을 표현하고 연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고 정책을 제안할 수도 있어요.
새로운 세대의 등장도 희망적이에요. 2030 세대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어요. 권위에 도전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중시합니다. 이들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분명 지금과는 다를 거예요.
시민사회의 성숙도 주목할 만해요. 과거처럼 큰 조직이 시민을 동원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네트워크를 만들고 행동하고 있어요. 미투 운동, 스쿨 미투, 기후행동 등이 그 예입니다.
글로벌 연대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어요. 기후변화, 팬데믹, 불평등 등의 문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국제적 연대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어요. 한국의 시민들도 점점 더 글로벌한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131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민주주의가 계속 진화해 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1단계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이었어요. 선거를 통해 권력을 선택하고, 권력분립을 통해 견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1987년 민주화가 이를 달성했어요.
2단계는 참여 민주주의의 확산입니다. 선거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에요. 2016년 촛불혁명이 그 전환점이었습니다.
3단계는 숙의 민주주의의 실험이에요.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깊이 있게 토론한 후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시민의회, 시민배심원 등이 그 사례예요.
4단계는 디지털 민주주의의 도입입니다. 온라인 투표, AI 활용 정책 결정, 블록체인 기반 투명성 확보 등이 가능해질 거예요.
각 단계가 이전 단계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관계예요. 미래의 민주주의는 이 모든 요소들이 결합된 형태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을의 역사'가 끝날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진정한 주권자가 되고, 완전한 평등이 실현되는 날이 올까요?
아마도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을의 감각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마음, 부당함을 참지 않는 정신, 약한 자의 편에 서는 용기가 바로 을의 감각에서 나오거든요.
만약 모든 사람이 만족하고 아무도 저항하지 않는 사회가 온다면, 그것은 완벽한 사회가 아니라 정체된 사회일 가능성이 높아요. 역사의 발전은 갈등과 투쟁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로운 도전은 계속 나타날 거예요. 기술 발전, 환경 변화, 사회 구조의 변화 등으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과 억압이 생겨날 수 있어요. 그때마다 새로운 을의 목소리가 필요할 것입니다.
중요한 건 을의 역사가 단순한 피해자의 역사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을은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저항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주체입니다. 을의 역사는 곧 변화의 역사, 진보의 역사예요.
131년의 을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유산은 무엇일까요?
첫째, 저항의 전통입니다. 부당함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정신, 절망적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의지를 물려줄 수 있어요. 동학농민군부터 촛불 시민까지 이어진 이 전통은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둘째, 연대의 경험입니다. 계층과 지역, 세대와 성별을 넘어서 함께 손잡고 싸운 경험을 전해줄 수 있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함께 하면 가능하다는 믿음을 남겨줄 수 있습니다.
셋째, 평화적 변화의 가능성입니다. 폭력 없이도 강력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어요. 2016년 촛불혁명이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는 전 세계에 희망을 주는 모델이 되고 있어요.
넷째, 제도적 성과입니다. 87 체제의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실히 뿌리내렸어요. 이를 바탕으로 더 발전된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토대가 마련됐습니다.
다섯째, 문화적 변화입니다. 권위주의에서 자유주의로, 획일성에서 다양성으로,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사회 문화가 바뀌었어요. 이는 제도보다도 더 깊은 차원의 변화입니다.
그렇다면 2025년을 사는 우리에게는 어떤 과제가 있을까요?
첫째, 쿠데타 세력에 대한 철저한 책임 추궁과 특정 계층의 권력독점 구조를 해체해야 합니다. 과거 쿠데타 세력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에 '쿠데타 성공 신화'가 계속 학습되어 왔어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둘째,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에 맞서야 합니다. 디지털 격차, 플랫폼 독점, AI 편향성 등은 21세기의 새로운 도전이에요. 20세기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셋째,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예요. 기후정의 관점에서 보면 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기후변화의 피해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받거든요.
넷째, 혐오와 차별을 극복해야 합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커질수록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도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요. 이를 극복하고 포용적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섯째,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87 체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해요. 시민참여를 확대하고, 권력을 분산시키며, 투명성을 높여야 합니다.
여섯째, 글로벌 연대를 강화해야 합니다. 한국만의 문제 해결로는 한계가 있어요. 전 세계의 을들과 연대해서 글로벌한 차원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많지만, 희망의 근거들도 있어요.
젊은 세대의 성장이 가장 큰 희망이에요. 2030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더 개방적이고 평등지향적이에요. 성별, 성향, 출신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고, 환경과 인권을 중시합니다. 이들이 사회 주축이 되면 분명 지금보다 나은 사회가 될 거예요.
기술의 발전도 희망적이에요. 디지털 기술은 양날의 검이지만, 잘 활용하면 더 투명하고 참여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어요. 시민들이 더 쉽게 정보에 접근하고, 의견을 표현하며, 연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시민의식의 성숙도 주목할 만해요. 과거에 비해 시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이 크게 높아졌어요.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공정성, 투명성, 지속가능성 등을 중시하게 됐습니다.
국제적 관심과 지지도 늘어나고 있어요. 한국의 민주화 경험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어요. 특히 평화적 정권교체와 시민사회의 역할은 다른 나라들의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131년 전 전봉준이 고부 관아 앞에서 죽창을 들었을 때, 그는 아마 2025년의 한국을 상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처럼 풍요롭고 자유로운 사회가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사람이 하늘"이라는 외침은 지금도 유효해요. 아니, 지금이야말로 그 진정한 의미를 실현할 때입니다.
106년 전 3.1 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 77년 전 제주 4.3의 희생자들, 46년 전 부마항쟁의 시민들, 38년 전 6월 항쟁의 시민들, 9년 전 촛불혁명의 시민들... 이들이 꿈꿨던 세상이 지금 여기에 있어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들이 꿈꿨던 것보다 훨씬 나은 세상입니다. 이제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차례예요.
을의 역사는 패배의 역사가 아니에요. 끊임없는 도전에 맞선 끊임없는 응전의 역사,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역사,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2025년을 사는 우리 모두가 그 역사의 주인공이고, 다음 장을 써 내려가는 작가들입니다.
22회에 걸친 긴 여행을 함께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려요. 동학농민운동부터 응원봉 정치까지, 131년의 시간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감동하며, 때로는 절망하고, 때로는 희망하면서 을의 역사를 함께 들여다봤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역사는 우리가 만든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저절로 발전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용기를 내고, 행동을 하고, 함께 연대할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갑니다.
또 하나의 교훈은 변화는 가능하다는 것이에요. 아무리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어요. 131년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는 주권자라는 것입니다. 을이라고 해서 영원히 을인 건 아니에요. 깨어나고, 연대하고, 행동하면 을도 갑이 될 수 있어요. 아니, 갑과 을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을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장은 바로 여러분이 써 내려갈 차례입니다.
우리가 만든 선택이 내일의 역사가 됩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여행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을의 역사: 응전과 도전으로 이어진 한국 주권투쟁의 시간"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의 일상 속에서 작은 변화의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22회 연재 완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