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주권자의 귀환 - 촛불에서 응원봉까지
▌"우리는 아이돌을 응원하듯이 민주주의를 응원하고 있어요. 이게 우리 세대의 방식입니다" - 2016년 12월 촛불집회 참가 대학생 김모씨
2025년 어느 토요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집회가 열리고 있어요.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들고 있는 건 전통적인 피켓이 아니라 형형색색의 응원봉이거든요.
파란색 응원봉은 바다처럼 일렁이고, 분홍색 응원봉은 벚꽃처럼 반짝입니다. 마치 아이돌 콘서트 현장 같아요. 하지만 이들이 외치는 구호는 "민주주의 만세", "정의로운 사회"입니다.
언제부터 한국의 정치 집회에 응원봉이 등장하게 됐을까요? 그리고 K-pop 팬덤에서 시작된 이 작은 도구가 어떻게 정치적 표현의 수단이 됐을까요?
이는 단순한 도구의 변화가 아니에요.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내는 완전히 다른 정치 참여 방식의 등장입니다. 기성세대가 주먹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면, 지금의 2030 세대는 응원봉을 흔들며 민주주의를 응원해요.
이들에게 정치는 무겁고 딱딱한 것이 아닙니다. 즐겁고 아름답게 참여할 수 있는 일상의 일부예요. 이것이 바로 '감정 민주주의'의 탄생입니다.
응원봉의 역사는 1990년대 후반 H.O.T. 의 '풍선'에서 시작됐어요. 팬들이 콘서트장에서 하얀 비닐봉지에 바람을 넣어 흔들며 응원한 게 시초였습니다.
2000년대 들어 아이돌 그룹마다 고유한 색깔의 응원봉이 등장했어요. 빅뱅의 노란색 크라운 라이트, 소녀시대의 분홍색 봉, 슈퍼주니어의 파란색 봉 등이 대표적이었죠.
2010년대부터는 응원봉이 하나의 산업이 됐습니다. BTS의 '아미봉', 블랙핑크의 '블링크 해머' 등은 콘서트 필수 아이템을 넘어 팬덤의 상징이 됐어요. 2019년 기준 국내 아이돌 응원봉 시장 규모는 약 200억 원에 달했습니다.
응원봉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어요. 팬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콘서트장에서 수만 개의 응원봉이 하나로 움직일 때의 장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어요.
더 중요한 건 응원봉을 통한 '집단행동'의 경험이었습니다. 팬들은 응원봉을 흔들며 함께 노래하고, 함께 감동하며, 하나가 되는 경험을 했어요. 이는 나중에 정치적 참여에도 그대로 적용됐습니다.
응원봉이 정치 집회에 처음 등장한 건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였어요. 당시 10대들이 촛불 대신 핸드폰 플래시와 함께 응원봉을 들고 나온 겁니다.
기성세대들은 당황했어요. "집회가 장난이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0대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평소 콘서트에서 응원할 때 사용하던 도구를 정치적 의사 표현에도 사용한 거였거든요.
2008년 당시엔 아직 소수에 불과했어요. 대부분의 시민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촛불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응원봉과 정치의 결합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어요.
특히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응원봉 사용이 두드러졌습니다. 이들에게 정치 참여는 어른들처럼 무거운 일이 아니었어요.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로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응원봉의 사용이 더욱 확산됐어요. 특히 젊은 세대들이 세월호 추모 집회에서 노란색 응원봉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란 리본 캠페인과 함께 노란색 응원봉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상징이 됐어요. 팬들은 아이돌 콘서트에서도 노란 응원봉을 들며 세월호를 추모했습니다.
이는 정치와 문화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어요. K-pop과 사회 참여가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거였습니다. 팬덤 활동과 시민 의식이 결합한 새로운 형태였어요.
▌[당시의 목소리] "콘서트에서 노란 봉을 들면서 세월호를 생각했어요. 즐거움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졌지만, 그게 우리 현실이잖아요" - 2014년 한 K-pop 팬의 온라인 글
젊은 세대에게 사회 참여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어요. 일상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일이었습니다. 응원봉은 그런 그들의 정서를 상징하는 도구가 됐어요.
2016년 촛불집회에서 응원봉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했어요.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중 상당수가 응원봉을 들고 있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응원봉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 2016년 11월 12일 190만 명이 참가한 3차 집회에서는 수십만 개의 응원봉이 밤하늘을 밝혔습니다.
응원봉의 색깔도 다양했어요. 파란색은 정의를, 빨간색은 열정을, 하얀색은 평화를 상징했습니다. 각자의 메시지를 색깔로 표현한 거였어요.
더 놀라운 건 응원봉의 집단 퍼포먼스였습니다. 마치 콘서트장에서 보던 것처럼 수만 개의 응원봉이 하나의 움직임을 보였어요. "박근혜 퇴진"이라는 구호에 맞춰 일제히 흔들리는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응원봉 집회' 관련 영상이 바이럴 됐어요. 해외 언론들도 한국의 독특한 시위 문화에 주목했습니다. CNN은 "K-pop 문화가 정치 시위로 확산됐다"라고 보도했어요.
응원봉의 등장은 집회 문화 자체를 바꿔놓았어요. 기존의 집회가 분노와 저항의 표현이었다면, 응원봉 집회는 희망과 응원의 성격을 가졌습니다.
첫째, 시각적 아름다움이 강조됐어요.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만 개의 응원봉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집회가 아름다운 문화 행사처럼 느껴졌어요.
둘째, 참여의 진입 장벽이 낮아졌어요. 응원봉을 흔드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구호를 외치기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었어요.
셋째, 축제적 분위기가 조성됐어요. 응원봉을 흔들며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은 마치 대형 콘서트 같았습니다. 집회가 즐거운 경험이 됐어요.
넷째, SNS 확산력이 높아졌어요. 화려한 응원봉 집회 장면은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에서 빠르게 퍼졌습니다.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도 온라인으로 함께했어요.
응원봉 현상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특성을 보여줘요. 이들에게 온라인과 오프라인, 문화와 정치, 개인과 집단의 경계는 모호합니다.
2030 세대는 어릴 때부터 K-pop과 함께 자랐어요. 팬덤 활동을 통해 집단행동과 조직화를 경험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의견을 모으고, 오프라인에서 실천하는 것이 익숙해요.
이들의 정치 참여는 기성세대와 완전히 달라요. 정치를 일상과 분리된 특별한 영역으로 보지 않습니다. 아이돌을 응원하듯 정치인을 응원하고, 콘서트에 가듯 집회에 참여해요.
또한 개인의 감정과 정체성을 중시해요. 추상적인 이념보다는 구체적인 이슈에 반응합니다. 세월호, 미투, 기후변화 같은 자신의 삶과 직결된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요.
응원봉 현상은 '감정 민주주의'의 등장을 보여줘요. 이는 이성적 토론보다 감정적 공감을 통해 이뤄지는 정치 참여를 의미합니다.
기존 민주주의는 합리적 개인들의 이성적 판단을 전제했어요. 하지만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는 다릅니다. 감정적 공감과 연대를 바탕으로 해요.
응원봉을 함께 흔들며 느끼는 일체감, 같은 색깔의 봉을 들고 연대하는 경험이 핵심이에요. 이는 논리적 설득보다 더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 민주주의에는 한계도 있어요. 순간적 감정에 휘둘릴 수 있고, 지속적인 참여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감정적 동조 압력이 다양성을 해칠 우려도 있어요.
K-pop 팬덤의 정치 참여는 점점 확산되고 있어요. 2020년 미국에서는 BTS 팬들이 트럼프 집회 티켓을 대량 예약해 방해했습니다. 2021년에는 미얀마 쿠데타에 반대하는 K-pop 팬들의 연대가 전 세계로 확산됐어요.
한국에서도 팬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어요. 선거철마다 아이돌 팬덤들이 정치인을 평가하고, 투표 독려 캠페인을 벌입니다. 이들의 조직력과 실행력은 기성 정치권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에요.
▌[당시의 목소리] "우리는 단순한 팬이 아니에요.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시민이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듯 우리가 원하는 세상도 응원하는 거예요" - 2021년 한 팬덤 카페 게시글
특히 젊은 여성들의 정치 참여가 두드러져요. K-pop 팬덤의 주축인 10-20대 여성들이 페미니즘, 환경, 인권 등의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응원봉 정치에 대한 비판도 있어요. 가장 큰 지적은 '정치의 오락화'입니다. 진지한 정치적 이슈가 가벼운 이벤트로 소비될 우려가 있다는 거예요.
또한 깊이 있는 정치적 사고보다는 순간적 감정에 의존한다는 비판도 있어요. 복잡한 정치 현실을 단순한 응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집단 동조 압력도 문제예요. 같은 색깔의 응원봉을 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개인의 다양한 의견을 억압할 수 있어요. 획일화된 참여 방식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해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속성의 문제가 있어요. 응원봉을 흔드는 순간은 열정적이지만, 그 이후의 지속적인 정치 참여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어요.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위험이 있습니다.
기성 정치권도 응원봉 현상에 주목하고 있어요. 젊은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K-pop 스타를 활용하거나, 콘서트 형식의 선거 유세를 하는 정치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표면적인 차용에 그치고 있어요. 응원봉의 형식만 빌려올 뿐, 젊은 세대의 정치적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응원봉이라는 도구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새로운 세대의 정치의식을 이해해야 해요. 이들이 원하는 것은 기존 정치의 연장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2025년 현재 응원봉 정치는 더욱 진화하고 있어요. 단순히 응원봉을 흔드는 것을 넘어,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정치 참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면서 더 정교한 표현이 가능해졌어요. LED 응원봉을 통해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AR 기술로 가상의 시위를 벌이기도 합니다.
또한 글로벌 연대도 강화되고 있어요. 전 세계 K-pop 팬들이 한국의 정치 상황에 관심을 갖고, 국제적 연대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속성 있는 참여로 발전하고 있어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시민운동으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응원봉 현상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줘요. 기존의 딱딱하고 어려운 정치를 친근하고 접근 가능한 것으로 바꿔놓았거든요.
특히 정치 참여의 문턱을 낮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커요. 응원봉을 흔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행동입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됐어요.
또한 다양성과 창의성을 높였어요. 획일적인 구호 대신 각자의 색깔로 의견을 표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다원성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어요.
무엇보다 정치를 즐거운 것으로 만들었어요. 부담스럽고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축제로 바꿔놓았습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변화예요.
응원봉으로 시작된 변화는 계속될 거예요.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내는 정치 참여 방식은 더욱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중요한 건 이런 변화를 단순한 유행으로 보지 않는 거예요. 이는 민주주의의 진화 과정입니다. 새로운 세대의 요구와 감성을 반영하는 민주주의로 발전해야 해요.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 사이의 소통도 중요해요.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응원봉이 상징하는 것은 희망이에요.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여겨졌던 젊은 세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민주주의에 참여하고 있거든요. 이들이 만들어갈 미래의 정치가 기대됩니다.
2016년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반짝이던 수만 개의 응원봉. 그 작은 빛들이 모여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켰어요. 이것이 바로 새로운 세대가 보여준 정치의 힘입니다.
[다음 회 예고] 제4장 21화: "주권 회복을 위한 제도적 과제: 권력구조 개편과 시민참여 확대 방안" - 한국 민주주의가 진정한 시민 주권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 제도 개혁 방안들을 심층 분석합니다.
[용어 해설]
감정 민주주의: 이성적 토론보다 감정적 공감과 연대를 통해 이뤄지는 정치 참여 방식. 응원봉 현상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의 정치 문화다.
팬덤 정치: K-pop 팬덤에서 발전한 조직력과 실행력을 정치적 참여에 활용하는 현상.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된 세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특징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