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을의 역사 19화

을의 역사

제4장 주권자의 귀환 - 촛불에서 응원봉까지

by 한시을

18화 촛불혁명의 역사적 의미: 평화적 저항과 시민 주권의 재확인


▌"이번 사건은 헌법수호라는 국민의 열망이 헌법기관인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결단으로 이어져 헌정질서가 바로 선 것이다" - 헌법재판소 박한철 소장, 2017년 3월 10일 탄핵 선고


2025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자유롭게 정부를 비판하고, 마음껏 시위를 할 수 있어요. SNS에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려도 아무도 잡아가지 않고,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의견을 표현해도 누구 하나 탄압하지 않죠.


이런 당연해 보이는 자유가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걸 우리는 2016년에 깨달았어요. 그해 겨울, 1,700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대통령을 탄핵시키겠다는 한 마음으로 말이에요.


그리고 실제로 해냈어요. 폭력 없이, 오직 평화적 방법만으로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이뤄낸 거였습니다. 세계가 놀라워했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2016년 촛불혁명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었어요. 시민이 진정한 주권자임을 확인하고,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킨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30년 만에 일어난 또 하나의 민주화였어요.


그런데 이 위대한 승리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리고 촛불혁명이 한국 민주주의에 남긴 유산은 무엇일까요?


최순실 게이트, 시민들을 깨우다


2016년 10월 24일 밤 9시, JTBC 뉴스룸이 시작됐어요. 손석희 앵커가 평소보다 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대통령의 연설문 초안과 각종 국정 기밀이 담긴 태블릿 PC를 입수했습니다."


그 순간 대한민국이 뒤집혔어요.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이 최순실에게 미리 전달됐다는 사실, 국정 전반이 민간인에 의해 좌지우지됐다는 충격적 진실이 드러난 거였죠.


시민들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어요. "도대체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었거든요.


더 충격적인 건 국정 농단의 규모였어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통한 수백억 원 모금 강요, 이화여대 정유라 특혜 입학, 심지어 대통령의 의상까지 최순실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10월 29일, 첫 번째 촛불이 켜지다


2016년 10월 29일 토요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 시민들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몇천 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어요.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 구호가 광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손에 촛불을 들고 참여했어요. 1987년 6월 항쟁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시위의 평화로운 분위기였어요. 최루탄도 없고, 화염병도 없었습니다. 오직 촛불과 구호만 있을 뿐이었어요. 아이들이 뛰어놀고, 가족들이 함께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첫 번째 집회 이후 시민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광화문에 모이기로 했어요. "매주 토요일 6시, 광화문에서 만나요"라는 약속이 SNS를 통해 퍼져나갔습니다.


11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민 집회


11월에 들어서면서 촛불집회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 11월 5일 2차 집회에는 20만 명이, 11월 12일 3차 집회에는 무려 190만 명이 참가했습니다.


190만 명이라는 숫자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예요. 광화문 광장을 넘어 세종대로, 청계천, 을지로까지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서울역 광장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도 별도로 수만 명이 모였어요.


전국적으로도 동시 집회가 열렸어요. 부산, 대구, 광주, 대전은 물론 작은 도시들까지 모든 곳에서 촛불이 켜졌습니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한국인들이 촛불집회를 열었어요.


▌[당시의 목소리] "우리는 박근혜의 즉각 퇴진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분노가 아니라 상식입니다. 이것은 정치가 아니라 정의입니다" - 2016년 11월 12일 시민 대표 발언


집회의 특징은 무엇보다 창의성이었어요. 다양한 퍼포먼스와 패러디, 재치 있는 피켓들이 등장했습니다. "이게 나라냐", "박근혜 OUT", "최순실아 고마워, 덕분에 민주주의 배웠다" 같은 구호들이 광장을 가득 메웠어요.


시민들이 만든 새로운 민주주의


2016년 촛불집회는 과거의 민주화 운동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몇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 비폭력 평화 시위였어요. 20주 동안 단 한 건의 폭력 사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고 집회를 마쳤어요. 시위 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청소까지 했습니다.


둘째, 전 세대가 참여했어요.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 중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노인까지 모든 세대가 함께했습니다. 특히 20-30대 여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졌어요.


셋째, 수평적 조직 구조였어요. 특정 정당이나 조직이 주도하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이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조직하고 참여했어요. 이는 디지털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넷째, 문화적 축제의 성격을 가졌어요. 각종 공연과 문화 행사가 함께 열렸습니다. 시민들은 슬프고 분노하면서도 즐겁게 집회에 참여했어요.


국회의 결단: 12월 9일 탄핵소추


시민들의 요구에 국회가 응답했어요. 2016년 12월 9일 오후 3시,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표결에 부쳐졌습니다.


결과는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효 2표였어요. 국회의원 재적수 300명 중 292명이 참여해 234명이 찬성한 거였습니다. 탄핵 가결에 필요한 재적의원 3분의 2(200명)를 훨씬 넘는 압도적 찬성이었어요.


특히 주목할 점은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도 상당수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이었어요. 당론이 반대였지만 62명의 새누리당 의원이 탄핵에 찬성했습니다. 시민들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던 거죠.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순간 광화문 광장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어요. "해냈다!"라는 외침과 함께 시민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역사적 판결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모든 국민이 TV 앞에 모였어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가 있는 날이었거든요.


박한철 소장의 선고는 명확했습니다.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다." 재판관 8명 전원이 탄핵에 찬성한 만장일치 결정이었어요.


헌재는 판결문에서 박근혜의 헌법 및 법률 위반 행위를 구체적으로 지적했어요. "대통령으로서 헌법을 수호할 의무를 위반하고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지위를 벗어나 사익추구에 이용당하도록 했다"라고 판시했습니다.


[당시의 목소리] "오늘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정의가 승리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국민이 만든 승리입니다" - 2017년 3월 10일 광화문 광장 시민 발언


탄핵 인용 순간 광화문 광장은 축제 분위기가 됐어요. 태극기와 촛불을 든 시민들이 "대한민국" 구호를 외치며 기뻐했습니다. 100일간의 긴 투쟁이 마침내 승리로 끝난 순간이었어요.


세계가 주목한 한국의 민주주의


2016년 촛불혁명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어요. 외신들은 한국 시민들의 성숙한 민주 의식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CNN은 "한국이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라고 보도했어요. BBC는 "평화적이고 질서 있는 시위로 대통령을 탄핵시킨 것은 세계 민주주의 역사상 매우 드문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주목받은 건 시위의 평화로운 성격이었어요. 수백만 명이 참여했지만 단 한 건의 폭력 사건도 없었다는 점을 외신들은 놀라워했습니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한국 시민들이 보여준 것은 21세기형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평가했어요. 독일 슈피겔은 "촛불혁명은 포퓰리즘이 확산되는 세계에 희망을 주는 사건"이라고 보도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의 차이점


2016년 촛불혁명을 1987년 6월 항쟁과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차이점들이 드러나요.


첫째, 참여 주체가 달랐어요. 1987년은 주로 학생과 노동자가 중심이었지만, 2016년은 전 계층이 참여했습니다. 특히 중산층과 여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졌어요.


둘째, 시위 방식이 달랐어요. 1987년은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격렬한 투쟁이었지만, 2016년은 완전히 평화적이었습니다.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어요.


셋째, 조직 방식이 달랐어요. 1987년은 학생회와 노조 등 기존 조직이 주도했지만, 2016년은 SNS를 통한 자발적 참여였습니다. 수평적이고 네트워크형 조직이었어요.


넷째, 요구사항이 달랐어요. 1987년은 직선제 개헌이라는 제도 개혁이 목표였지만, 2016년은 부패한 권력의 퇴진이 목표였습니다. 더 직접적이고 명확한 요구였어요.


시민 주권의 재확인


2016년 촛불혁명의 가장 큰 의미는 시민 주권의 재확인이었어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제1조 2항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선거를 통해서만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여겨졌어요. 하지만 2016년 시민들은 선거가 아닌 직접적 행동으로 주권을 행사했습니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직접민주주의로 보완한 거였어요.


이는 87 체제의 한 단계 발전을 의미했어요. 1987년 체제가 선거 민주주의를 확립했다면, 2016년은 시민 참여 민주주의를 확립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시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이 크게 높아졌음을 보여줬어요. 단순히 정권 교체가 아니라 권력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했거든요. 대통령 권력 분산, 적폐 청산, 정치 개혁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새로운 발전


촛불혁명은 한국 민주주의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어요. 몇 가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첫째, 시민 사회의 역할이 강화됐어요.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로 당당히 나서게 됐습니다.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됐어요.


둘째, 정치 참여의 방식이 다양해졌어요. 선거뿐만 아니라 집회, 시위, 서명 운동, SNS 활동 등이 모두 정치 참여의 중요한 수단이 됐습니다.


셋째, 정치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강화됐어요. 시민들의 감시 능력이 높아지면서 정치인들도 더욱 신중하게 행동하게 됐습니다.


넷째, 평화적 저항의 전통이 확립됐어요. 폭력 없이도 강력한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거든요.


2025년, 촛불혁명의 유산


2025년 현재에도 촛불혁명의 유산은 살아있어요. 시민들은 여전히 부당한 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있고, 정치인들도 시민들의 뜻을 더욱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제도 남아있어요. 촛불혁명의 요구였던 권력 구조 개편은 아직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거든요. 대통령 권력 분산, 검찰 개혁, 언론 개혁 등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또한 새로운 도전도 나타나고 있어요. 가짜뉴스, 정치 양극화,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 등은 민주주의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2016년의 경험을 잊지 않는 것이에요. 시민이 주권자라는 것, 평화적 방법으로도 강력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지켜야 한다는 것 말이에요.


끝나지 않은 민주주의의 여행


2016년 촛불혁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어요.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긴 여행의 한 지점일 뿐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깨어있어야 해요. 권력을 감시하고, 부당함에 맞서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2016년의 촛불이 보여준 것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민주주의는 한 번 이뤘다고 해서 영원히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것.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있어야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16년 겨울, 1,700만 명의 시민이 보여준 위대한 민주주의 정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다음 회 예고] 제4장 19화: "제주 4.3 진상규명과 과거사 청산: 침묵당한 역사의 회복과 주권의 재구성" - 70년간 금기였던 제주 4.3 사건이 어떻게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됐는지, 그리고 과거사 청산이 한국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을 분석합니다.


[용어 해설]


시민 주권: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원리로, 2016년 촛불혁명을 통해 선거가 아닌 직접적 정치 참여로도 실현될 수 있음이 증명됐다.


직접민주주의: 시민이 대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제도. 촛불혁명은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조화 가능성을 보여줬다.


디지털 민주주의: 인터넷과 SNS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시민 참여와 정치 조직. 2016년 촛불혁명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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