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을의 역사 18화

을의 역사

제4장 주권자의 귀환 - 촛불에서 응원봉까지

by 한시을

17화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민주주의 후퇴: 87 체제의 위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법과 원칙이 지배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 2013년 취임사


2025년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있어요. 대통령을 비판해도 잡혀가지 않고, 정부 정책에 반대 시위를 해도 괜찮으며,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자연스럽죠. 심지어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불과 8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위협받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9년간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이에요.


이 시기는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간 쌓아온 민주주의가 가장 크게 후퇴한 시기였어요. 언론은 길들여졌고, 시민사회는 탄압받았으며, 국가기관은 정치적으로 악용됐습니다. 급기야 대통령이 측근들과 함께 국정을 농단하는 일까지 벌어졌죠.


그런데 왜 국민들이 선택한 정부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후퇴시켰을까요? 그리고 이런 위기가 어떻게 2016년 촛불혁명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었을까요?


2008년, 보수의 복귀와 '실용주의'의 가면


2007년 12월 19일 대선에서 이명박이 당선됐어요. 10년간의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끝내고 보수 정권이 복귀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명박의 공약은 명확했어요. "747 공약" - 7% 경제성장, 4만 달러 소득, 7대 경제 강국 진입이었죠.


국민들은 피로했어요. 10년간의 진보 정부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됐고,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경제는 보수가 잘한다"는 기대감이 컸습니다.


이명박은 자신을 "실용주의자"라고 했어요. 이념보다는 실용, 갈등보다는 화합을 추구한다고 했죠.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출범 초기부터 노골적인 보수 정책을 추진했어요.


[당시의 목소리] "이념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실용과 성과의 시대입니다. 경제를 살리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겠습니다" - 이명박, 2008년 취임사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첫 번째 시험대는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어요. 바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였습니다.


2008년 촛불집회: 시민사회의 첫 번째 경고


2008년 4월,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을 타결했어요. 하지만 광우병(BSE) 위험이 있는 30개월 이상 소의 고기도 수입하기로 한 것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이 분노했습니다.


5월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졌어요. 매주 토요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는 수십만 명이 모였습니다. 특히 10대들이 적극 참여한 것이 특징이었어요.


촛불집회의 성격은 과거 정치적 시위와 달랐어요. 생활 안전과 직결된 문제였고,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것이었습니다.


정부의 대응은 경직됐어요. "불법 폭력 시위"라고 규정하고 강경 진압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시민들의 반발만 키웠어요.


결국 정부는 6월 쇠고기 재협상을 발표하며 한 발 물러섰지만, 이미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의 씨앗이 뿌려진 상태였어요.


4대강 사업: 토건 국가의 부활


이명박 정부의 대표 정책은 4대강 사업이었어요.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22조 원을 투입해 강을 정비하고 보를 설치하는 사업이었습니다.


명분은 "녹색 성장"이었어요. 홍수를 막고 가뭄을 해결하며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실상은 토건업체들을 위한 대규모 국책사업이었습니다.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강력히 반대했어요. 생태계 파괴, 수질 악화, 예산 낭비를 우려했거든요. 하지만 정부는 "종북 환경주의자들의 선동"이라며 무시했습니다.


[당시의 목소리] "4대강 사업은 한국형 뉴딜 정책입니다. 이 사업으로 96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습니다" -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2009년


사업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는 무시됐어요. 국회 심의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고, 환경영향평가도 형식적으로 처리됐습니다.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은 "보상금 노리는 떼꾼"으로 매도됐어요.


2012년 사업이 완료됐지만 효과는 의문스러웠어요. 녹조가 창궐하고 물고기가 떼죽음 하는 등 부작용만 속출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성공적 완료"라며 자화자찬했어요.


언론장악과 공영방송 길들이기


이명박 정부는 언론에 대한 통제도 강화했어요. 직접적인 검열보다는 '간접적 압박'을 통해 언론을 길들였습니다.


2008년부터 시작된 '공영방송 장악'이 대표적이에요. KBS와 MBC의 사장을 정부 성향 인사로 교체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좌천시켰습니다.


특히 김재철 MBC 사장 체제는 충격적이었어요. 100여 명의 기자가 해직되거나 좌천됐고, 시사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폐지됐습니다. "PD수첩", "뉴스추적" 같은 탐사보도 프로그램들이 타깃이 됐어요.


신문도 마찬가지였어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은 정부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반면,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 언론은 각종 압박을 받았습니다.


2009년 신문법 개정으로 방송사업 진출이 허용되면서 조선일보는 TV조선을, 중앙일보는 JTBC를, 동아일보는 채널A를 만들었어요. 언론 지형이 완전히 바뀐 거였죠.


시민사회 탄압과 '종북' 프레임


이명박 정부는 시민사회에 대한 탄압도 체계적으로 진행했어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NGO들을 '종북 세력'으로 몰아갔습니다.


국정원과 보수단체들이 연계해 "종북 명단"을 만들어 유포했어요. 환경단체, 시민단체, 노동조합, 심지어 종교단체까지 포함됐습니다. 근거도 없이 "북한의 지령을 받는다"라고 매도했어요.


세무조사도 정치적으로 활용됐습니다. 정부 비판적 시민단체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했어요. 경실련, 참여연대, 환경연합 등이 표적이 됐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은 더 심했어요. 파업을 하면 '불법 쟁의행위'로 몰아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민주노총 간부들은 줄줄이 구속됐어요.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안보 정국


2010년은 이명박 정부에게 전환점이 된 해였어요. 3월 천안함 침몰 사건,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안보 정국이 조성된 거였습니다.


정부는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했어요. "안보가 위급한 상황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반정부 세력을 '종북 세력'으로 몰아가는 근거로 삼았어요.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안보투표"를 강조했지만 참패했어요. 하지만 이후 안보 논리를 더욱 강화해 비판 세력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박근혜의 등장과 '통합'의 약속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됐어요. 박정희의 딸이라는 상징성과 "국민 대통합"이라는 메시지가 통했습니다. 특히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 등 진보적 공약으로 중도층의 지지를 얻었어요.


박근혜는 이명박과는 다른 이미지를 내세웠어요. 갈등보다는 화합, 대립보다는 소통을 강조했습니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어요.


하지만 실상은 이명박 정부의 연장이었어요. 핵심 정책들이 대부분 이어졌고, 인사도 비슷한 성향으로 구성됐습니다. "박근혜표 뉴딜"이라던 창조경제도 실체가 모호했어요.


[당시의 목소리] "저는 여러분의 대통령입니다. 모든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습니다" - 박근혜, 2013년 취임사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통치 스타일은 더욱 권위주의적이었어요. 소통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일방적이었고, 통합을 내세우면서도 분열을 조장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304명이 사망하고 실종됐는데, 그중 250명이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었어요. 대한민국 현대사상 최악의 인재(人災) 중 하나였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정부의 대응이었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행방이 묘연했고, 초기 대응도 엉망이었습니다. 구조 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안전 불감증" 문제로 축소하려 했어요. 하지만 국민들은 이것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규제 완화, 안전 경시, 관피아(관료+마피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어요.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는 정당했지만, 정부는 이를 "정치적 이용"이라며 매도했습니다. 심지어 유족들을 "시위꾼"으로 몰아가기도 했어요.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어요.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국정원 선거 개입과 민주주의 파괴


박근혜 정부 시기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국가기관의 정치 개입이었어요. 특히 국정원의 온라인 여론 조작이 충격적이었습니다.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온라인 댓글을 작성해 여론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어요.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댓글을 달고, 문재인 후보에게 불리한 댓글을 퍼뜨린 거였습니다.


더 심각한 건 이런 행위가 선거 후에도 계속됐다는 점이에요. 정부 정책을 옹호하고 반대 세력을 공격하는 댓글 작업이 일상화됐습니다.


국정원뿐만 아니라 사이버사령부, 기무사 등 군 정보기관들도 가담했어요. 이는 명백한 내정 간섭이자 민주주의 파괴 행위였습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예술가들의 숨통을 조르다


박근혜 정부의 권위주의는 문화계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어요. 정부에 비판적인 예술가들을 지원에서 배제하는 '블랙리스트'를 만든 겁니다.


블랙리스트에는 9,473명의 예술가들이 포함됐어요. 세월호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거나, 정부 정책을 비판한 예술가들이 대상이었습니다. 이들은 정부 지원사업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됐어요.


반대로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예술가들로 구성된 '화이트리스트'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특혜를 받아 각종 지원사업에 선정됐어요.


이는 예술의 자유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어요. 예술가들이 정치적 성향에 따라 차별받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최순실 게이트: 권력의 사유화


2016년 10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박근혜 정부는 치명타를 입었어요.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거였습니다.


최순실은 공식 직책이 없는 민간인이었지만, 대통령의 연설문을 검토하고 인사에 개입하며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어요. 심지어 국가기밀까지 열람했습니다.


더 심각한 건 이를 통한 사익 추구였어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만들어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 원을 강제 기부받았습니다.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과 승마 특혜도 문제가 됐어요.


이는 단순한 부패가 아니라 권력의 사유화였어요.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이 사실상 민간인에게 국정을 맡긴 거였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무너진 거죠.


87 체제의 위기와 시민사회의 분노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87 체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어요.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유지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권위주의로 회귀했습니다.


대통령의 권력은 더욱 강화됐고, 견제 기능은 약화됐어요. 국회는 여당의 거수기가 됐고, 사법부도 정부 눈치를 봤습니다. 언론은 길들여졌고, 시민사회는 탄압받았어요.


무엇보다 '법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적 탄압이 일상화됐습니다. 법은 정부에 유리하게 적용되고, 반대 세력에게는 엄격하게 적용됐어요.


하지만 시민사회의 저항도 꾸준히 이어졌어요. 2008년 촛불집회, 2014년 세월호 집회, 2015년 민중총궐기 등을 통해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헬조선, 수저계급론 등의 용어로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이들의 분노가 2016년 촛불혁명의 동력이 됐어요.


2016년, 폭발 직전의 상황


2016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박근혜 정부는 안정적으로 보였어요. 국정지지율도 30% 중반을 유지했고, 야당도 분열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불만이 누적되고 있었어요. 청년실업,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갈등 등이 계속 악화됐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의 싸움도 계속됐고요.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피로감이 쌓였어요. 소통 없는 일방적 정책 추진, 비판 세력에 대한 탄압, 측근들의 각종 비리 등이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0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그동안 쌓였던 분노가 폭발했어요. 이것이 바로 2016년 촛불혁명의 배경이었습니다.


민주주의의 복원력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은 한국 민주주의에 큰 시련이었어요. 87 체제가 구축한 민주적 제도와 관행들이 심각하게 훼손됐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시민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저항했고, 결국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되찾았거든요.


중요한 교훈은 민주주의가 한 번 만들어지면 영원한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이죠.


2025년 현재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예요. 언제든 후퇴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소중한 교훈입니다.


[다음 회 예고] 제4장 18화: "촛불혁명의 역사적 의미: 평화적 저항과 시민 주권의 재확인" - 2016년 촛불혁명이 어떻게 평화로운 시민 저항의 모범을 보여줬는지, 그리고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합니다.


[용어 해설]


87 체제의 위기: 1987년 민주화 이후 구축된 정치체제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권위주의적 통치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을 지칭한다.


종북 프레임: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을 북한과 연계된 것처럼 매도하는 정치적 공격 방식.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시민사회를 탄압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최순실 게이트: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한 사건. 촛불혁명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으며 박근혜 탄핵의 원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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