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을의 역사 16화

을의 역사

제3장 민주화의 응전 - 시민이 깨어나다

by 한시을

15화 6월 항쟁과 87 체제의 양면성: 선거 민주주의의 성취와 실질적 주권의 한계


▌"이제는 정말 국민의 뜻에 따라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됐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출발입니다" - 1987년 6월 29일, 6.29 민주화 선언 직후 시민 인터뷰


2025년 현재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어요. 5년마다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 국민이 직접 투표로 뽑는 대통령, 야당이 집권할 수 있는 정권교체... 이 모든 것이 38년 전에는 꿈같은 이야기였거든요.


1987년 6월, 전국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을 때만 해도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었어요. 전두환은 끝까지 버틸 것 같았고, 군부는 또다시 총칼을 들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6월 29일, 노태우가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정치범 사면, 언론 자유 보장... 시민들이 그토록 원했던 민주화가 현실이 된 거였어요.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87 체제"입니다. 하지만 38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묻게 됩니다. 87 체제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져다줬을까요? 아니면 형식만 바뀐 채 본질은 그대로 남아있는 걸까요?


박종철 고문치사: 분노의 도화선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사망했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당시 정치범들을 고문하는 악명 높은 곳이었어요.


박종철은 서울대 민주화 운동 관련자를 찾는다는 이유로 연행됐습니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물고문을 받다가 쇼크사한 거였어요. 22세의 대학생이 민주화를 원했다는 이유만으로 고문당해 죽은 겁니다.


정부는 처음에 이를 은폐하려 했어요. "단순 쇼크사"라고 발표하고, 담당 수사관 2명만 구속해 마무리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숨겨질 수 없었어요.


5월 18일, 당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명동성당에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은폐조작 진상발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고문에 가담한 경찰이 훨씬 많았고, 상부에서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사실이 폭로된 거였어요.


[당시의 목소리] "박종철 군은 물고문을 받다가 죽었습니다. 정부는 진실을 은폐하지 말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 명동성당 기자회견 성명서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전두환 정권 7년간 수없이 반복됐던 고문과 인권유린이 다시 한번 확인된 거였거든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됐어요.


6월 항쟁의 불꽃


1987년 6월 10일, 전국 22개 도시에서 동시에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열렸습니다. 이것이 6월 항쟁의 시작이었어요.


시위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서울에만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부산, 광주, 대구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도 수만 명씩 시위에 참여했어요. 총 시위 참가자는 하루에만 100만 명을 넘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시위 참가자들의 구성이었어요. 대학생들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 직장인들, 심지어 중·고등학생들까지 나섰습니다. 명동성당 앞에서는 넥타이 매고 정장 입은 직장인들이 "호헌철폐"를 외쳤어요.


6월 18일에는 더욱 많은 시민들이 나왔습니다. 이날 시위에는 전국적으로 200만 명이 참여했어요. 한국 현대사상 최대 규모의 동시다발 시위였습니다.


특히 이번 시위는 과거와 달랐어요. 4.19나 부마항쟁이 특정 지역에서 시작됐다면, 6월 항쟁은 전국적으로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주도한 명실상부한 "국민 항쟁"이었어요.


최루탄과 넥타이 부대


6월 항쟁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넥타이 부대"였어요.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최루탄 연기 속에서 "호헌철폐"를 외치는 모습이었거든요.


이들은 과거 학생운동과는 다른 성격을 가졌어요. 이념적 구호보다는 현실적 요구에 집중했습니다. "대통령 직선제", "언론 자유", "정치범 석방" 같은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들이었어요.


또한 평화적 시위를 지향했습니다. 폭력 사용을 자제하고, 질서 있는 시위를 통해 국민적 지지를 얻으려 했어요. 이는 과거 학생운동과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이었습니다.


중산층의 참여도 결정적이었어요. 1980년대 들어 경제발전으로 성장한 중산층들이 이제는 정치적 권리도 요구하기 시작한 거였습니다. "경제는 발전했는데 정치는 왜 이 모양이냐"는 불만이 폭발한 거죠.


전두환의 마지막 발악


6월 항쟁에 직면한 전두환은 강경 진압을 시도했어요. 최루탄을 대량 살포하고, 백골단을 동원해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해산시켰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어요.


더 심각한 건 전두환이 군 투입을 검토했다는 점이에요. 5.18 때처럼 계엄령을 선포하고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던 거죠. 실제로 공수부대가 서울 외곽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1980년과 달랐어요. 첫째, 시위 규모가 전국적이어서 무력 진압이 불가능했습니다. 둘째, 미국이 무력 진압을 반대했어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적 이미지가 중요했거든요.


셋째, 여당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노태우를 비롯한 온건파들이 "정치적 해결"을 주장했어요. 무력 진압보다는 양보를 통한 수습이 필요하다고 본 거죠.


6.29 민주화 선언: 역사적 전환점


1987년 6월 29일 오후 2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이 TV를 통해 "국민의 대통합을 위한 민주화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바로 6.29 민주화 선언이었어요.


핵심 내용은 명확했습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김대중을 비롯한 정치범 사면복권, 언론 자유 보장, 지방자치제 실시, 사회 각 부문의 자율화 보장 등이었어요.


[당시의 목소리] "국민의 염원인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과감한 정치개혁을 단행하겠다" - 노태우, 6.29 민주화 선언


이는 사실상 전두환 정권의 항복 선언이었어요. 7년간 버텨왔던 군부독재가 시민들의 힘에 굴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환호했고,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이 열렸어요.


하지만 이것이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습니다. 노태우의 선언은 시민들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이지, 기존 권력 구조의 근본적 변화는 아니었거든요.


87년 대선과 분열의 아픔


1987년 12월 16일, 13년 만에 직선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국민들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투표소로 향했어요. 드디어 자신들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된 거였으니까요.


하지만 결과는 아쉬웠어요. 노태우가 36.6%의 득표율로 당선됐는데, 김영삼(28.0%)과 김대중(27.0%)이 분열되면서 어부지리를 허용한 거였습니다.


만약 김영삼과 김대중이 단일화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어요. 두 사람의 득표율을 합치면 55%로 노태우를 압도했거든요. 민주화 세력의 분열이 아쉬운 결과를 낳은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87년 대선은 의미가 컸어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확립됐고, 평화적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열렸거든요.


87 체제의 성취: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착


6.29 선언 이후 만들어진 체제를 "87 체제"라고 부릅니다. 이 체제가 가져온 성취는 분명해요.


첫째, 대통령 직선제가 확립됐습니다. 1987년 이후 모든 대통령이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됐어요. 이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둘째, 정권 교체가 가능해졌어요. 1997년 김대중, 2007년 이명박, 2017년 문재인, 2022년 윤석열에 이르기까지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예요.


셋째, 언론의 자유가 크게 확대됐습니다. 1987년 이후 언론 검열이 폐지됐고, 다양한 언론사들이 생겨났어요. 정부 비판도 자유로워졌습니다.


넷째, 시민사회가 성장했어요. 노동조합, NGO, 시민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됐습니다. 1987년 이후 "386세대"를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이 크게 발전했어요.


87 체제의 한계: 실질적 민주주의의 부족


하지만 87 체제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어요. 형식적으로는 민주화됐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문제가 많았거든요.


첫째, 기존 권력 엘리트들이 그대로 남았어요. 노태우 정부는 전두환 정권의 연장이었고, 군부 출신들이 여전히 권력의 핵심에 있었습니다. 진정한 권력 교체는 이뤄지지 않은 거죠.


둘째,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5.18 가해자 처벌이나 군부독재 시기 인권침해 문제가 미해결 상태로 남았습니다. 이는 나중에 계속 갈등의 씨앗이 됐어요.


셋째, 경제 권력의 집중은 오히려 심화됐습니다. 1990년대 신자유주의 도입 과정에서 재벌의 힘이 더욱 커졌고, 경제적 불평등도 확대됐어요.


넷째, 지역주의가 심화됐어요. 호남-영남 갈등이 정치의 중심축이 되면서, 정책 경쟁보다는 지역감정에 기반한 정치가 이뤄졌습니다.


형식적 민주주의 vs 실질적 민주주의


87 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형식적 민주주의"에 머물렀다는 점이에요. 선거는 자유롭게 치러지지만, 실제 권력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거든요.


대통령이 너무 강력해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판을 받았어요. 국회나 사법부의 견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이 선거 때만 주권자이고, 평상시에는 정치에서 배제되는 현상이 계속됐어요.


언론도 마찬가지였어요. 직접적인 검열은 없어졌지만, 자본의 논리나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거죠.


시민사회도 한계가 있었어요. 정부나 기업의 후원에 의존하면서 독립성이 제약됐고, 엘리트 중심의 운동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IMF 외환위기와 87 체제의 위기


1997년 IMF 외환위기는 87 체제에 큰 충격을 줬어요. 경제적 민주화 없이는 정치적 민주화도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거였습니다.


외환위기 과정에서 신자유주의가 본격 도입됐고, 이는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켰어요.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87 체제의 사회적 기반이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위기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했어요.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당선되면서 최초의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뤄졌거든요. 호남 출신에 야당 인사인 김대중의 당선은 87 체제의 성숙을 보여줬습니다.


2000년대: 87 체제의 성숙과 새로운 도전


2000년대 들어 87 체제는 더욱 성숙해졌어요. 2002년 노무현의 당선, 2007년 이명박의 당선, 2012년 박근혜의 당선으로 정권 교체가 일상화됐습니다.


시민사회도 발전했어요. 인터넷의 발달로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확대됐고, 다양한 이슈에 대한 시민운동이 활발해졌습니다.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 2004년 탄핵 반대 촛불집회 등이 대표적이에요.


하지만 새로운 문제들도 나타났어요.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커졌습니다. "이게 민주주의냐"는 회의론이 확산됐어요.


2016년 촛불혁명: 87 체제를 넘어서


2016년 촛불혁명은 87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였어요. 단순히 정권 교체가 아니라 권력 구조 자체의 변화를 요구한 거였습니다.


촛불혁명의 특징은 "직접 민주주의"적 성격이었어요.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직접 의견을 표출하고,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는 기존의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새로운 형태였어요.


또한 평화적이고 질서 있는 시위로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보여줬습니다. 촛불혁명은 87 체제가 만들어낸 민주주의 문화의 결실이었어요.


오늘날의 과제: 실질적 민주주의를 향해


2025년 현재 한국 민주주의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어요. 87 체제가 가져다준 성취를 바탕으로, 이제는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중요한 건 시민들의 지속적인 참여예요. 선거 때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길입니다.


또한 권력 구조의 개혁도 필요해요.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하고, 국회와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화하며, 지방자치를 실질화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87 체제는 분명 소중한 성취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6월 항쟁에 참여했던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길이기도 하고요.


[다음 회 예고] 제3장 16화: "신자유주의와 IMF: 경제 위기와 민주화의 굴절" - 1990년대 도입된 신자유주의와 1997년 외환위기가 87 체제에 미친 충격,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타난 경제적 민주화의 과제를 분석합니다.


[용어 해설]


87 체제: 1987년 6월 항쟁과 6.29 민주화 선언 이후 형성된 정치체제. 대통령 직선제와 절차적 민주주의를 특징으로 하지만 실질적 민주주의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


6월 항쟁: 1987년 6월 전국적으로 벌어진 민주화 운동.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을 계기로 시작되어 6.29 민주화 선언을 이끌어냈다.


6.29 민주화 선언: 1987년 6월 29일 노태우가 발표한 민주화 조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핵심으로 하여 87 체제의 출발점이 됐다.



keyword
이전 15화을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