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전쟁 없는 전쟁 – 말로 싸우는 시대
▌2025년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한국 정부는 벌써부터 준비에 한창이다. 대통령 연설문 작성, 격조 높은 메시지 구상, 언론 대응 전략까지 꼼꼼히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다. 회의장 복도에서, 호텔 라운지에서, 비공개 만찬에서 벌어질 진짜 외교 말이다. 그곳에서 각국 대표들은 실질적 거래를 할 것이다. 경제 협력 약속, 투자 유치 협상, 통상 문제 해결 등이 조용히 논의될 것이다. 과연 한국은 그 자리에서 얼마나 실익을 챙길 수 있을까. 이것이 한국 외교의 영원한 과제다. 무대 위에서는 당당하지만, 무대 뒤에서는 여전히 약하다는 것.
외교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무대 위 외교와 무대 뒤 외교다.
무대 위 외교는 화려하다.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악수하고, 격조 높은 연설을 한다. 국민들이 보기에 품격 있고 당당해 보인다. 정치인들도 좋아한다. 지지율에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진짜 외교는 무대 뒤에서 벌어진다. 기자들이 없는 곳에서 진짜 거래가 이뤄진다. 여기서는 화려한 말보다 실질적 협상이 중요하다. 서로 뭘 줄 수 있고, 뭘 받을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문제는 한국이 무대 위 외교에만 너무 집중한다는 것이다. 투명하고 공개적인 외교를 선호한다. 민주주의 국가의 특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정작 중요한 무대 뒤 외교에서는 약하다.
실제로 한국 외교관들이 토로하는 고충이 있다. "우리는 연설은 잘하는데, 뒤에서 실익 챙기는 건 서툴러요." 이런 한계가 어디서 왔을까.
역사를 보면 비슷한 사례가 있다. 2,500년 전에도 화려한 외교를 좋아했던 나라와 조용한 외교를 선호했던 나라가 있었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는 무대 위 외교의 달인이었다.
제나라는 중원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바다를 끼고 있어 상업이 발달했고, 인구도 많았다. 경제력으로는 어느 나라보다 강했다.
그래서 제나라는 큰 외교를 좋아했다. 각국 사신들을 초청해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화려한 궁궐에서 격조 높은 의례를 치렀다. 제나라 왕의 연설은 언제나 웅장했다.
《사기》에 따르면 제나라는 "회맹의 주인"이었다고 한다. 각국 대표들이 모이는 큰 회의를 자주 주최했다는 뜻이다. 제나라는 이런 공개적 외교를 통해 자신의 위상을 과시했다.
실제로 효과도 있었다. 다른 나라들이 제나라를 외교 강국으로 인정했다. 제나라 왕이 말하면 다들 경청했다. "제나라 외교는 품격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었다. 뒤에서 벌어지는 진짜 거래에는 약했다는 것이다.
▌[당시의 목소리] "제나라는 회맹에서 아름다운 말을 많이 하지만, 정작 실질적인 이익은 다른 나라들이 가져간다." - 《춘추좌전》
반대편에는 진나라가 있었다. 진나라는 무대 뒤 외교의 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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