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중일 민족DNA:도전과 응전

5장 현대적 진화와 K-element의 탄생

by 한시을

제5장 21화: 일본 확장 민족 DNA의 억압과 재발현


▌"戦争を放棄する。戦力を保持しない。交戦権を認めない" (전쟁을 포기한다.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 일본국 헌법 제9조, 1947년 5월 3일


1945년 8월 15일, 정오.


히로히토 천황의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미국, 영국, 중국, 소련 네 나라에게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하게 하였다."


일본은 항복했습니다.


1,500년간 이어진 확장 DNA가 처음으로 제도적 봉쇄를 당한 순간이었어요. 7화와 15화에서 본 것처럼,

임나일본부설(4-6세기) → 임진왜란(1592) → 정한론(1873) → 한일병합(1910) → 대동아공영권(1940)으로 이어진 일관된 확장 의지가 멈춘 겁니다.


하지만 DNA는 정말 사라졌을까요?


75년이 지난 2020년, 일본 정부는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고, 아베 신조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며, 자민당은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확장 DNA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억압됐을 뿐입니다.


맥아더의 평화헌법: 확장 DNA 봉쇄 장치


1945년 8월 30일,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연합국 최고사령관(SCAP)으로서 일본 점령을 총괄하게 된 거예요.


맥아더는 일본을 철저히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어요.


"일본의 전쟁은 우연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350년간 일본은 계속 침략했습니다. 왕조가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시대가 바뀌어도 확장 욕구는 변하지 않았어요.


맥아더는 이것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기로 했습니다.


1946년 2월, 맥아더는 일본 정부에 헌법 초안을 제시했어요. 일본 측은 거부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미국이 직접 쓴 헌법이 강제됐죠.


1947년 5월 3일, 일본국 헌법 공포.


제9조가 핵심이었습니다:


"日本国民は正義と秩序を基調とする国際平和を誠実に希求し、国権の発動たる戦争と武力による威嚇又は武力の行使は、国際紛争を解決する手段としては永久にこれを放棄する"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제2항은 더 강력했어요:


"前項の目的を達するため、陸海空軍その他の戦力は、これを保持しない。国の交戦権は、これを認めない"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기타 전력은 이를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전쟁 불가 + 군대 불가 + 교전권 불가


맥아더는 일본의 확장 DNA를 완전히 봉쇄한 겁니다.


▌[당시의 목소리] "일본이 다시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국가가 되지 않도록 만들겠다" - 더글러스 맥아더, 1945년 9월 2일 미주리함 선상


자위대 창설: 첫 번째 우회


하지만 DNA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졌어요.


미국은 주일미군을 한반도로 파견했고, 일본 방어에 공백이 생겼습니다. 맥아더는 일본 정부에 "경찰예비대" 창설을 지시했어요.


1950년 8월 10일, 경찰예비대 발족. 병력 7만 5천 명.


겉으로는 경찰이지만, 실제로는 사실상의 군대였습니다. M1 소총, 박격포, 장갑차... 경찰 장비가 아니었죠.


1954년 7월 1일, 경찰예비대는 "자위대"로 개편됐습니다.


육상자위대, 해상자위대, 항공자위대... 완전한 군대 구조였어요.


일본 정부는 변명했습니다.


"이것은 군대가 아니라 자위를 위한 실력조직이다. 헌법 제9조에 위배되지 않는다."


말장난이었어요. 탱크가 있고 전투기가 있고 구축함이 있는데 군대가 아니라고요?


하지만 일본은 계속 우겼습니다. 그리고 미국도 묵인했어요. 냉전 상황에서 일본이 필요했으니까요.


이것이 확장 DNA의 첫 번째 우회였습니다.


평화헌법은 유지하되, 실제로는 군대를 만드는 것.


경제 대국화: 두 번째 우회


군사적 확장이 막히자, 일본은 다른 길을 찾았습니다.


경제 확장이었어요.


1960-70년대 고도성장기, 일본은 아시아 전역으로 진출했습니다.


한국, 타이완, 동남아시아... 일본 기업들이 공장을 세우고 자원을 사들였어요.


1980년대, 일본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됐습니다. 미국 록펠러센터를 사들이고,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인수했죠.


이것이 무엇일까요? 경제적 대동아공영권이었습니다.


과거: 군사력으로 아시아 지배

현재: 경제력으로 아시아 지배


수단만 바뀌었을 뿐, 확장 DNA는 그대로였어요.


1982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은 태평양의 불침항모가 되어야 한다."


군사적 용어를 경제 전략에 쓴 겁니다. 확장 DNA가 은연중에 드러난 거죠.


영토 분쟁: 세 번째 우회


경제 확장과 함께, 일본은 영토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1. 독도 (다케시마)

1952년,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근거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어요.

한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일본은 매년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라고 반복합니다.

2005년, 시마네현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했어요. 2월 22일을 독도 영유권 기념일로 만든 겁니다.


2. 센카쿠 열도 (댜오위다오)

중국과도 분쟁 중입니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양국이 대립하고 있어요.

2012년, 일본 정부는 센카쿠를 "국유화"했습니다. 중국은 강력히 반발했죠.


3. 쿠릴 열도 (북방영토)

러시아와도 분쟁 중이에요. 2차대전 후 소련이 점령한 쿠릴 열도 남부 4개 섬을 일본은 "북방영토"라고 부르며 반환을 요구합니다.


이 모든 영토 분쟁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확장 DNA의 우회적 발현입니다.


직접 침략은 못 하니, 영토 분쟁으로 확장 욕구를 표출하는 거예요.


▌[당시의 목소리] "竹島は歴史的にも国際法上も日本固有の領土" (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 고유 영토다) - 일본 외무성, 2021년 외교청서


역사 왜곡: 네 번째 우회


확장 DNA의 또 다른 우회는 역사 왜곡입니다.


1. 교과서 왜곡

1982년, 일본 문부성은 교과서 검정에서 "침략"을 "진출"로 바꾸게 했어요.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다" → "일본이 중국으로 진출했다"


단어 하나 차이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침략은 나쁜 것, 진출은 중립적인 것이니까요.


2001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습니다. 이 교과서는 난징대학살을 축소하고, 위안부 문제를 부정했어요.


2. 야스쿠니 신사 참배

야스쿠니 신사에는 246만 6천 명의 전몰자가 합사돼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A급 전범 14명도 포함돼 있어요.


도조 히데키(동조영기), 이타가키 세이시로(판垣征四郎),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이들은 침략전쟁을 주도한 전범들입니다. 난징대학살, 731부대, 위안부 강제동원... 이 모든 범죄의 책임자들이에요.


그런데 일본 총리들이 계속 참배합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2001-2006): 6년간 6회 참배

아베 신조(2013): 총리 재임 중 참배

기시다 후미오(2021): 총리 재임 중 공물 봉납


왜 이렇게 할까요?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범들을 "영령"으로 추모한다는 것은 곧 그들의 행위를 인정한다는 뜻이에요. 침략이 잘못이 아니었다는 거죠.


3. 망언 반복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은 끊이지 않습니다.


1994년 나가노 시게토(永野茂門) 법무장관: "난징대학살은 날조"

2007년 아베 신조 총리: "위안부 강제성 증거 없다"

2013년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 "위안부는 필요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확장 DNA의 정신적 재발현입니다.


과거 침략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정당화하려는 거예요.


평화헌법 개정 시도: DNA 해방 기도


2012년, 아베 신조가 다시 총리가 됐습니다.


그는 평화헌법 개정을 공식 목표로 내걸었어요.


2014년 7월 1일, 일본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각의 결정을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아도 동맹국을 위해 전쟁할 수 있다는 겁니다.


평화헌법 제9조를 사실상 무력화한 거예요.


2017년, 아베는 더 나아갔습니다.


"2020년까지 헌법을 개정하겠다. 제9조에 자위대를 명기하겠다."


자위대를 헌법에 명시한다? 이것은 군대를 공식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평화헌법은 형해화되고, 일본은 "보통국가"로 돌아가게 되는 거예요.


"보통국가"라는 말이 순진해 보이지만, 일본에서는 "군대를 가지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뜻합니다.


2022년 기시다 정부는 방위비를 GDP 2%까지 증액하기로 했어요. NATO 수준입니다. 자위대 예산이 세계 3위가 됐죠.


확장 DNA가 제도적 해방을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당시의 목소리] "戦後レジームからの脱却"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 - 아베 신조, 2006년 시정방침 연설


세 나라의 현재: 2025년


21세기 들어 세 나라 DNA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요?


한국: 문화적 도전 완성

19화에서 본 것처럼, K-문화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강제도 침탈도 없이 자발적으로 수용되는 이타적 도전이에요.


중국: 공격적 중화사상 실행

20화에서 본 것처럼, 일대일로·중화민족 대부흥으로 이기적 도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타국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고, 역사를 왜곡하며, 군사력을 투사하는 거죠.


일본: 확장 DNA 재발현 중

평화헌법 개정 시도, 집단적 자위권 행사, 영토 분쟁 강화, 역사 왜곡 지속...


1,500년 확장 DNA가 75년 억압을 뚫고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DNA는 사라지지 않는다


1945년 맥아더는 확장 DNA를 봉쇄했습니다.


평화헌법 제9조로 제도적 차단을 했어요.


하지만 75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다시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위대 창설 (군사적 우회)

경제 대국화 (경제적 우회)

영토 분쟁 (영역 확장 우회)

역사 왜곡 (정신적 우회)

평화헌법 개정 시도 (제도적 해방 기도)


DNA는 억압될 수 있지만 사라지지 않습니다.


임나일본부설(4-6세기) → 임진왜란(1592) → 정한론(1873) → 한일병합(1910) → 대동아공영권(1940) → 평화헌법(1947) → 자위대(1954) → 평화헌법 개정 시도(2012~)


1,500년간 일관된 확장 의지는 형태만 바꿔가며 계속 살아있습니다.


이것이 민족 DNA의 지속성이에요.


한국의 홍익인간 DNA가 1,600년간 광개토대왕→동학→안중근→김구→K-문화로 이어진 것처럼, 일본의 확장 DNA도 1,500년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 회 예고] 제5장 22화: "K-element, 홍익인간 민족 DNA의 현대적 구현" - 1,600년 홍익인간 DNA가 21세기에 어떻게 K-문화로 완성됐을까요? BTS의 유엔 연설, 오징어게임의 글로벌 열풍, 봉준호의 아카데미 수상... 이 모든 현상의 본질은 "널리 이롭게"라는 상리공생입니다. 광개토대왕→동학→김구→K-문화로 이어지는 완전한 흐름을 드디어 완성합니다.


[용어 해설]


평화헌법: 1947년 일본국 헌법 제9조. 전쟁 포기, 전력 불보유, 교전권 부인을 규정. 맥아더가 일본 확장 DNA를 제도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만든 장치. 현재 개정 시도가 진행 중


집단적 자위권: 동맹국이 공격받을 때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아도 방어할 수 있는 권리. 2014년 아베 정부가 각의 결정으로 행사 가능하게 함. 평화헌법의 사실상 무력화


자위대: 1954년 창설된 일본의 실력조직. 정식 명칭은 군대가 아니지만 사실상 완전한 군대. 육상·해상·항공자위대로 구성. 세계 5위 규모의 군사력 보유

keyword
이전 21화한중일 민족DNA:도전과 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