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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민족DNA:도전과 응전

제5장 현대적 진화와 K-element의 탄생

by 한시을

20화: 중국의 의도적 민족 DNA 진화 - 화이질서에서 중화사상으로


▌"中華民族偉大復興"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 시진핑, 중국몽 연설, 2012

1949년 10월 1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


마오쩌둥이 천안문 성루에 올라 선언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오늘 성립되었다!"

70년간 이어진 굴욕의 시대가 끝났어요. 아편전쟁(1840), 청일전쟁(1895), 8개국 연합군(1900), 일본 침략(1937)... 중국은 계속 당하기만 했습니다.


이제 달라지겠다는 선언이었죠.

하지만 더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민족 DNA의 의식적 전환이었어요.

16화에서 본 것처럼, 청나라는 화이관(방어적 응전) 때문에 개혁에 실패했습니다. "천조상국"이라는 자만이 양무운동을 망쳤죠.


중국 공산당은 달랐어요. 그들은 화이관을 버리지 않고 재설계했습니다.

방어적 응전 → 공격적 도전

이기적 응전 → 이기적 도전

세계 역사상 가장 의식적이고 전략적인 민족 DNA 변신이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화이관의 굴욕: 1840-1949


먼저 중국이 왜 DNA를 바꿔야 했는지 봐야 합니다.

9화와 16화에서 본 것처럼, 화이관은 1,000년간 작동한 중국의 핵심 DNA였어요.

"중국 = 천하의 중심, 주변 = 오랑캐"

이 DNA는 송-명시대에 완성되어 청나라까지 이어졌습니다. 조공 체제를 통해 동아시아 전체를 지배했죠.


하지만 1840년 아편전쟁부터 모든 게 무너졌어요.

1842년 난징조약: 홍콩 할양, 배상금 2,100만 냥

1860년 베이징조약: 연해주 할양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 타이완 할양, 배상금 2억 냥

1900년 신축조약: 배상금 4억 5천만 냥

"천조상국"이 오랑캐에게 계속 무릎을 꿇었습니다.


더 치욕적인 것은 정신적 패배였어요. 화이관 자체가 부정당한 겁니다.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 제1조에서 강요한 문구:

"清國認明朝鮮國爲完全無缺之獨立自主"

조선이 독립국이라는 선언은 곧 중국이 더 이상 천하의 중심이 아니라는 뜻이었어요.

화이관 DNA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 100년간 증명된 겁니다.


▌[당시의 목소리] "數千年未有之大變局" (수천 년 없던 큰 변화) - 이홍장, 「이홍장전집」


마오쩌둥: 화이관 해체가 아닌 재설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많은 사람들은 중국이 화이관을 버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산주의는 국제주의 이념이니까요. 민족주의와 반대되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마오쩌둥은 달랐어요.

그는 화이관을 재설계했습니다.


1단계: 중화민족 재정의

16화에서 본 것처럼, 청말 강유위·양계초가 "중화민족" 개념을 만들었어요. 한족만이 아니라 만주족·몽골족·회족·티베트족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었죠.

마오쩌둥은 이것을 공산당 이념으로 체계화했습니다.

1949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강령」:

"中華人民共和國境內各民族一律平等" (중화인민공화국 경내 각 민족은 일률적으로 평등하다)

겉으로는 평등이지만, 실제로는 한족 중심의 위계였어요. 소수민족은 "중화민족"이라는 우산 아래 통합됐습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화이관의 현대판입니다.

과거: 한족 = 화, 이민족 = 이

현재: 중화민족 = 화, 외국 = 이

구조는 똑같아요. 중심과 주변. 교화하는 자와 교화받는 자.


2단계: 항미원조 - 공격적 DNA의 첫 시험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습니다.

마오쩌둥은 "항미원조(抗美援朝)" - 미국에 맞서 조선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참전했어요.

겉으로는 사회주의 형제 지원이지만, 본질은 달랐습니다.

이것은 중화질서의 부활 시도였어요.

전통적으로 조선은 중국의 조공국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을 도운 것처럼, 이제 중화인민공화국이 북한을 돕는 거죠.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과거 화이관: 방어적 응전 (이민족 침입에 대응)

항미원조: 공격적 도전 (국경 밖으로 군대 파견)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이 시작된 겁니다.

펑더화이(彭德懷) 원수는 미국과 맞서 싸워 무승부를 이뤘어요. 이것이 중국에게 큰 자신감을 줬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당하기만 하는 나라가 아니다."


▌[당시의 목소리] "打得一拳開 免得百拳來" (주먹 한 방으로 백 방을 막는다) - 마오쩌둥, 1950년 10월


덩샤오핑: 경제력으로 중화사상 준비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시작했습니다.

"韜光養晦" (도광양회) - 빛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

겉으로는 조용히 경제 발전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실제로도 그랬고요.

하지만 덩샤오핑의 진짜 목표는 힘을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경제력 = 미래 중화사상의 물질적 기반


1989년 천안문 사건 후, 덩샤오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冷靜觀察 穩住陣腳 沈著應對" (냉정하게 관찰하고, 진지를 지키며, 침착하게 대응한다)

서방의 제재에도 흔들리지 않고 경제 발전을 계속하겠다는 뜻이었어요.

30년간 중국은 GDP 세계 2위로 올라섰습니다. 외환보유고 세계 1위, 제조업 세계 1위...


덩샤오핑 시대는 잠복기였어요. 화이관을 중화사상으로 전환할 힘을 비축한 시기였죠.

하지만 이 기간에도 중화사상의 씨앗은 자라고 있었습니다.

1992년 덩샤오핑 남순강화(南巡講話):

"發展才是硬道理" (발전이야말로 확실한 진리다)

이 말의 숨은 뜻은 명확했어요. 강해지면 다시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


시진핑: 중화민족 대부흥 - DNA 변신 완성


2012년, 시진핑이 집권했습니다.

그가 첫 연설에서 제시한 키워드:

"中國夢" (중국몽) = 中華民族偉大復興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이제 숨길 필요가 없어졌어요. 중국은 공격적 중화사상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1단계: 역사 재해석

시진핑 정부는 "중화문명 탐원공정"을 시작했습니다.

"중화문명은 5,000년 유일무이한 문명이다."

이것은 화이관을 넘어선 주장이에요. 세계 4대 문명(메소포타미아·이집트·인더스·황하) 중에서도 중국만 유일하다는 거죠.

고구려·발해·고조선도 "중국 지방정권"으로 규정했습니다. 이것이 동북공정이에요.

왜 이렇게 할까요? 중화사상의 역사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입니다.

과거 화이관: 중국이 문화적으로 우월

현재 중화사상: 중국이 역사적으로도 모든 것의 기원


2단계: 일대일로 - 현대판 조공 체제

2013년, 시진핑은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발표했습니다.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부활시켜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연결한다는 거예요.

겉으로는 경제 협력이지만, 본질은 현대판 조공 체제입니다.

중국이 자금을 대고, 개도국이 인프라를 건설하고, 그 대가로 중국에 정치·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구조예요.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구: 빚 못 갚아서 99년 조차

파키스탄 과다르 항구: 중국 해군 기지화

캄보디아·라오스: 사실상 중국 경제 식민지


전통 조공 체제: 조공품 바침 → 책봉 받음 현대 일대일로: 빚 못 갚음 → 종속됨

구조는 똑같습니다. 중심(중국)과 주변(속국).


3단계: 군사력 투사 - 공격적 도전의 완성

2017년, 중국은 지부티에 첫 해외 군사기지를 건설했습니다.

2019년, 남중국해 인공섬에 미사일 배치했어요.

2021년, 타이완 방공식별구역에 전투기 150대 진입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공격적 도전입니다.

과거 화이관: 만리장성 안에서 방어

현재 중화사상: 국경 밖으로 힘 투사

덩샤오핑의 "도광양회"는 끝났어요. 이제 "奮發有爲" (분발유위) - 적극적으로 행동한다입니다.


▌[당시의 목소리] "東升西降" (동쪽은 올라가고 서쪽은 내려간다) - 시진핑, 2021년 중앙당교 연설


의식적 DNA 변신: 3단계 전략


중국 공산당이 70년간 실행한 전략을 정리하면:


1단계 (마오쩌둥 1949-1976): 화이관 재설계

중화민족 재정의 (한족 중심 위계 유지)

항미원조 (방어→공격 전환 시작)

공산주의 + 민족주의 결합


2단계 (덩샤오핑 1978-2012): 힘의 축적

도광양회 (잠복)

경제력 세계 2위

중화사상의 물질적 기반 완성


3단계 (시진핑 2012-현재): 공격적 중화사상

중국몽 (중화민족 대부흥)

일대일로 (현대판 조공 체제)

군사력 투사 (공격적 도전)


이것은 세계 역사상 가장 의식적인 민족 DNA 변신입니다.

일본의 확장 DNA는 고대부터 일관되게 유지됐어요. 변하지 않았죠.

한국의 홍익인간 DNA도 1,600년간 응전→도전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달라요.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전략적으로 DNA를 변환시켰습니다.

화이관(방어적 응전) → 중화사상(공격적 도전)


세 나라의 갈림길: 21세기


같은 시기, 한국과 일본은 어떤 길을 택했을까요?


한국: 이타적 도전

19화에서 본 것처럼, 김구의 문화 강국론이 K-문화로 현실이 됐습니다.

강제 없는 자발적 확산. 타민족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문화로 기여하는 이타적 도전이에요.


일본: 확장 DNA 재발현 시도

1945년 패망 후, 평화헌법으로 확장 DNA가 억압됐습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어요. 독도·센카쿠 영유권 주장, 야스쿠니 참배, 평화헌법 개정 시도...

확장 DNA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다음 회에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중국: 이기적 도전

중화사상을 전 세계에 강제로 확산시키려 합니다.

일대일로로 개도국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군사력으로 주변국을 위협하며, 역사를 왜곡해서 문화적으로 침탈해요.

이것은 이기적 도전입니다. 타국을 불행하게 만들면서 자국만 잘 되려는 전략이죠.


중화사상의 본질: 강제와 위계


중국의 DNA 변신이 왜 위험한지 명확히 봐야 합니다.


강제성

한국의 K-문화: 자발적 수용 (좋아서 본다, 듣는다)

중국의 중화사상: 강제 주입 (빚 때문에 따른다, 협박에 굴복한다)


위계성

한국의 홍익인간: 평등 (널리 이롭게)

중국의 중화사상: 위계 (중심과 주변, 교화하는 자와 교화받는 자)

전통 화이관이 방어적이어서 덜 위험했다면, 현대 중화사상은 공격적이어서 더 위험합니다.

과거: 조공 오면 받아줌 (수동)

현재: 일대일로로 적극 확장 (능동)


이것이 19세기 일본 확장 DNA와 닮았어요. 타민족을 지배하려는 이기적 도전이라는 점에서요.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의 선언은 단순한 신중국 수립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중국 민족 DNA의 의식적 변신 시작이었어요.

화이관(방어적 응전) → 중화사상(공격적 도전)


70년간 3단계 전략으로 완성했습니다.

마오쩌둥은 화이관을 재설계했고, 덩샤오핑은 경제력을 키웠으며, 시진핑은 공격적 중화사상을 실행하고 있어요.

일대일로, 중화민족 대부흥, 군사력 투사... 모두 현대판 조공 체제입니다.


이것이 한국의 이타적 도전, 일본의 이기적 도전과 다른 점이에요.

중국의 이기적 도전은 의식적이고 전략적이라는 겁니다.


[다음 회 예고] 제5장 21화: "일본 확장 민족 DNA의 억압과 재발현" - 1945년 패망 후 맥아더의 평화헌법은 일본 확장 DNA를 제도적으로 봉쇄했습니다. 하지만 DNA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경제 침략, 영토 분쟁, 역사 왜곡, 평화헌법 개정 시도... 1,500년 확장 본능이 어떻게 우회적으로 재발현하는지 추적합니다.


[용어 해설]

중화사상: 중국을 세계 중심으로 보는 사상. 전통 화이관(방어적)과 달리, 공산당 이후 공격적으로 변신. 일대일로·중화민족 대부흥 등으로 타국에 강제 주입하려는 이기적 도전


일대일로: 2013년 시진핑이 발표한 육해상 실크로드 구상. 겉으로는 경제 협력이지만 실제로는 현대판 조공 체제. 개도국을 빚 덫에 빠뜨려 경제·정치적으로 종속시킴


도광양회: 덩샤오핑의 외교 전략. "빛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 경제력을 키우며 중화사상 실행을 준비한 잠복기. 시진핑 시대에 분발유위(적극 행동)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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